[NABIS 뉴스레터 15호 커버스토리]
지역 창업 커뮤니티를 주목하라
윤준식
시사N라이프 편집장
목 차
1. 뜨는 골목에는 반드시 숨은 공신들이 있다.
2. 나주곰탕거리 외곽에서 만난 청년가게
3. 나주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청년 창업자들
4. 지역 창업에 공헌하는 컴퍼니빌더의 등장
5. 컴퍼니빌더가 하는 일
6. 지역 창업 커뮤니티가 발달한 곳에는 컴퍼니빌더가 있다
7. 귀촌 창업자를 돕는 지역 창업 커뮤니티
8. 창업 고도화를 통해 형성되는 지역 창업 커뮤니티
9. 창업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지역 창업 커뮤니티
10. 지역 창업 커뮤니티 정신: 덕업상권(德業相勸)
뜨는 골목에는 반드시 숨은 공신들이 있다.
“편집장님, 저희 나주의 청년 창업자들을 만나주십시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3917 마중> 남우진 대표는 다짜고짜 나주 취재를 요청했다. 그와의 인연은 지난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페이스북이었다. 페친이 맺어져 형식적인 인사를 던졌는데, 나주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나주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댓글이 돌아왔다. 그 후로도 그와의 소통은 항상 “나주에 관심 가져 달라”, “나주 청년들이 재주가 많다”, “나주에 오면 술 한 잔 대접하겠다. 많은 교류를 나누자”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대체 나주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짧은 전화통화를 통해 남우진 대표의 진정성이 전달되었고, 청년 창업의 열기를 느껴 나주로 달려갔다. 나주의 청정한 밤하늘의 별보다 더 영롱한 눈빛의 청년 창업가들을 만났고, 그들을 후원하고 육성하고 있는 남우진 대표의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나주곰탕거리 외곽에서 만난 청년가게
서울에서 반나절을 달려 나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시장하더라도 곧장 달려와 주면 좋겠다. 꼭 안내하고 싶은 청년가게가 있다”고 해 도착한 곳은 나주곰탕거리 외곽에 자리잡은 <청산옥>이라는 식당이었다.
만나자마자 인사를 나눈 직후부터 남 대표의 <청산옥> 자랑이 이어졌다. 곰탕으로 유명한 나주지만, 나주곰탕을 넘어서는 메뉴 개발을 목표로 청년들이 나섰다. 청년들 스스로 한우탕 레시피를 개발해 창업했고 나주곰탕과 경쟁하면서도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음식의 맛을 보기 전부터 가게, 유니폼, 메뉴판 등의 디자인, 고객서비스 등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경 쓴 면면이 눈에 띄였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나주곰탕거리의 국물 맛을 하루 아침에 뛰어넘긴 어렵지만, 한우라는 재료를 사용해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전통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이 그들의 점포에서 우러나고 있었다.
지극히 청년스러운 식당 <청산옥>의 브랜드이미지 (청산옥 인스타그램)
나주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청년 창업자들
나주시는 전주와 함께 전라도(全羅道)라는 명칭에 한 글자를 보탤 정도로 조선 말엽까지 번성하던 도시였다. 곡창지대인 나주평야와 영산강을 이용한 수운의 발달이 도시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조선의 국운이 저물며 조선의 지배세력인 양반 중심 도시였던 나주의 쇠퇴가 시작된다.
1895년 을미개혁 이후 단발령에 대한 반발이 강해지며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나주에 있던 관찰사가 광주로 옮겨가며 전라도의 중심 도시였던 나주가 위축되기 시작했다. 1896년 13도제 시행에 따라 전라도가 전라남북도로 분할되며 도청을 광주에 두게 되었고, 광주가 호남 지방 철도교통의 중심지가 되며 나주의 중요성은 점점 줄어들었다. 나주의 인구는 점점 줄어들어 2013년에는 8만 8천 명 아래까지 위축되었다. 다행히 혁신도시 조성으로 인구 구조의 극적 반전이 일어나 지금은 11만 6천 명을 넘어섰다.
그렇다면 혁신도시 조성이 나주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일까? 혁신도시가 인구 증가와 새로운 발전을 위한 동력이 된 것은 맞지만, 이는 혁신도시 지구에만 해당되는 것이지 여전히 원도심까지 그 효과가 파급되고 있다고 말하긴 애매하다. 이런 상황 속에 원도심에 위치한 청년가게를 만남 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역 창업에 공헌하는 컴퍼니빌더의 등장
4,000평 공간에 있는 7채의 고택을 재생한 공간 <3917 마중> (마중 페이스북)
이어 남우진 대표가 운영하는 <3917 마중(이하 ‘마중’)>을 방문해 그의 창업이야기를 들었다. 2017년에 나주에 내려와 4년간 했던 이야기가 이어졌다. 밤이 깊어지자 다음 날을 기약했는데, 다음 날 아침 그가 소개하고 싶어했던 청년 창업자들을 <마중> 카페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나주... 아니 <마중>을 중심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 3개의 청년기업 <니나노플래닝>, <바바프로덕션>, <돌빛나무>였다.
<마중>은 지금까지 특이한 로컬 스팟으로만 알려지고 있었다. 오래된 고택을 활용한 한옥스테이, 정원이 멋진 카페, 도시재생의 상징, 원도심 속의 복합문화공간, 귀촌창업 사례 등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남우진 대표가 4년 동안 했던 일의 결과는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달랐다.
버려진 고택을 재생해 새롭게 활용한 것, 수익창출을 위해 카페와 스테이를 운영한 것까지는 맞지만, 남우진 대표가 적극적으로 의도한 건 나주 원도심 내에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 조성이라는 소셜미션이었다. 전남 서남권의 관문도시인 나주의 위상과 혁신도시 조성을 통해 성장하고 있는 나주의 영향력을 주변 시군까지 확대해 더 큰 사회적 이익을 함께 꾀하자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청년 창업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4,000평 공간에 있는 7채의 고택을 재생한 공간 <3917 마중> (마중 페이스북)
남 대표는 전주에서 오랜 기간 컨설턴트로 사업해왔던 자신의 역량과 <마중>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인 ‘공간’을 기반으로 청년 창업자들과 협력하고 그들을 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강릉에서 나주로 향한 청년들이 세운 문화기획사 <니나노플래닝> 노건휘, 임재환 대표, ‘오지는 오진다’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중인 <바바프로덕션> 김현우, 정대준 대표, 담양에서 시작해 나주로 와 유럽식 석회미장 인테리어를 추구하는 <돌빛나무> 최현찬 대표가 <마중>과 함께하는 대표적인 크루들이었다.
컴퍼니빌더가 하는 일
<마중> 남우진 대표가 하고 있는 역할은 무엇이라 설명해야 적절할까? 이 뉴스레터의 독자에게 다소 생소한 개념일 수 있지만, 창업분야의 ‘컴퍼니빌더(Company Builder)’가 하는 역할과 유사하다. 컴퍼니빌더는 사업 아이템 선정부터, 팀원 구성, 사업 방향 설정, 투자 유치 시기 및 투자자 선택, 마케팅 전략 등을 함께 고민하며 실제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컴퍼니빌더 개념이 좀 더 익숙하다. 스타트업 육성을 주된 업으로 삼는 4가지 조직으로 액셀러레이터, 벤처캐피탈, 인큐베이터, 컴퍼니빌더를 꼽는다. 액셀러레이터는 초기투자, 벤처캐피탈은 자금지원, 인큐베이터가 창업공간 제공 위주로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다. 이들과 달리 컴퍼니빌더는 스타트업의 경영에 참여해 초기 기업이 갖는 미숙함의 공백을 메워 성장을 돕는다.
이렇게 보면 컴퍼니빌더의 존재는 이상을 꿈꾸게 하지만 성장할 경우 큰 폭의 이익을 낼 수 있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나 주로 활동하지 생계형 창업 중심의 소상공인 분야에서 활동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남우진 대표와 같은 선배 창업자의 존재는 비즈니스 경험이 부족한 청년 창업자에게는 큰 힘이 된다.
지역 창업 커뮤니티가 발달한 곳에는 컴퍼니빌더가 있다
필자가 다년간 창업자들을 취재하며 깨닫게 된 건, 지역 창업 커뮤니티가 발달한 곳에는 반드시 컴퍼니빌더가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컴퍼니빌더는 특정 개인인 경우도 있고, 기업의 형태일 때도 있고, 창업자들의 커뮤니티로 존재한다. 더 재미있는 건 컴퍼니빌더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 대부분이 자신이 컴퍼니빌더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극히 드물게는 다른 사람의 창업을 통해 자신이 돈을 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컴퍼니빌더가 된 경우도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창업이 활성화될수록 돈을 벌 기회가 많은 간판 가게나 인테리어 사무실이 간판 제작을 수주하거나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수주하기 위해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점포를 알선해주거나, 마케팅 활성화를 위해 디자인을 개선해주거나 하는 행위랄까?
그러나 대부분은 이들은 각각 함께 비즈니스를 할 동료가 필요해서, 자신의 시행착오를 다른 창업자가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선한 동기에서, 자신의 가치관에 의해, 자신이 구상하는 비즈니스 생태계를 완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컴퍼니빌더 역할을 하고 있다. 자신이 비즈니스하는 거리가 활성화되어 상권이 활성화될수록 유리하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처하며 장기적인 피봇을 위해서도 다양한 업종의 비즈니스 생태계가 조성되는 게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삼삼오오 청년인문실험’ 진행중인 니나노플래닝 (니나노플래닝 페이스북)
귀촌 창업자를 돕는 지역 창업 커뮤니티
첫 번째 유형으로 자신이 귀촌에 성공해 비즈니스를 안정시킨 다음 다른 귀촌 창업자들을 도우며 커뮤니티를 이루는 경우를 먼저 꼽아볼 수 있다.
우선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널티> 김신애 대표의 사례를 보자. 태백시가 고향인 김신애 대표는 목포를 거쳐 서울 생활을 하며 만화, 웹디자인, 게임디자인, 게임기획, 빅게임 등 문화기획자가 갖춰야 할 역량과 기회를 쌓아 왔다. 컴퓨터 디자인 서적의 저자이기도 하며 ‘제주 한 달 살이’ 경험을 기반으로 ‘태백 한 달 살이’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나고 자란 태백의 역사와 기억을 위해 '화광아파트 아카이빙'을 위한 <찰칵원정대 프로젝트> 등 마을과 사람에 대한 기록도 서슴없이 진행하고 있었다. 특히, 김대표와 같은 노마드족을 위한 공간이자 지역 청소년을 위한 문화공간인 <무브노드>를 만들고 독립서점 <막장책방>, 작은미술관 등 지역에 필요한 공간을 탄생시켰다.
<널티>가 조성한 코워킹스페이스 무브노드 (무브노드 홈페이지)
김 대표가 운영한 <태백 장성 한 달 살기 프로젝트>를 통해 창업한 사례가 있다. 지역자원을 활용한 게임 콘텐츠와 보드게임 개발하는 <안사람랩> 장호동 대표와 송아영 대표 부부로 연고가 없는 태백에서 메이커스페이스 <니노나>를 창업했다. 김 대표와 만나면서 삶터와 일터 모두 바뀐 사례이다.
보드게임 마니아들 중에는 일부러 태백을 찾아 <니노나>에서 밤새 보드게임에 심취하기도 하고, <니노나>의 메이킹 장비를 이용해 보드게임을 만들기도 한다. 즉석 보드게임 해커톤이 이루어지며 새로운 보드게임이 탄생하는 창의적인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순서만 보면 <널티>가 <안사람랩>의 창업을 이끌어낸 것은 맞지만, 이 두 업체는 그 이상의 끈끈한 비즈니스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었다. 김신애 대표가 창업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함께 일하는재단>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되었는데, 당시 송아영 대표가 매니저로 근무하며 김신애 대표의 멘토가 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김 대표가 <무브노드> 공간을 조성할 때 찾아와 벽돌을 나르기도 하고 비플러스를 통해 진행된 펀딩도 돕는 등 서로가 서로의 창업을 도우며 함께 공존하는 흐뭇한 사례이기도 하다.
독립서점 <막장책방> 전경 (막장책방 인스타그램)
지금은 청년마을 <자유도>의 운영주축인 충청남도 공주시 <퍼즐랩> 권오상 대표는 민간 주도 마을호텔인 <마을 스테이 제민천> 성공사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마을호텔이 작동하기 위한 컨시어지 서비스가 마을 전체에 정착하게 된 건 하루 아침에 이룬 성과가 아니라 함께 창업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지역 창업 커뮤니티 덕분이다.
권오상 대표는 오래된 한옥에 심취해 공주 이주를 결심해 한옥 스테이 <봉황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봉황재>에 숙박한 후 공주 정착과 창업을 결심한 첫 번째 사례가 독립서점 <가가책방>이다. 이후 <가가책방>을 중심으로 시작한 독서모임이 확대되며 귀촌과 창업을 돕는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었다.
창업 고도화를 통해 형성되는 지역 창업 커뮤니티
초기 창업자 입장에서는 창업 직후 브랜딩, 마케팅, 상품화 등 비즈니스 고도화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데, 이를 도와줄 대행업체를 찾기 마련이다. 이런 업무를 수행하는 대행업체 중에 컴퍼니빌더의 역할은 물론 지역 창업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와 KTX가 지나며 대전광역시와 세종특별자치시와 연결되는 충청남도 내륙권과 달리 당진, 서산, 예산, 보령과 같은 해안권은 인구가 적고 시장성이 약해 창업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약한 지역이다.
당진에 소재한 <팔미리>는 디자인과 브랜드 업무를 통해 창업기업을 돕는 일을 하는 기획사다. CI, BI 제작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다양한 사업화 전략을 제공하고, 유관기관을 연계하거나 협업가능한 다른 기업을 소개하며 지역 창업을 활성화하는데 기역하고 있다. 당진 뿐만 아니라 서산까지 활동영역을 넓히며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비즈니스 커뮤니티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청년 창업자들에게 다양한 정부지원사업을 안내하는 일도 <팔미리>가 하는 일 중 하나다. 청년 창업자의 사업 비전이나 사업 규모에 맞춰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 법인 설립 방법과 관련 업무를 도와주고 마케팅바우처사업, 청년창업사관학교, 로컬크리에이터 지원 사업 등 시의적절한 맞춤형 안내를 통해 창업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팔미리>와 인연을 맺은 지역 업체는 30여 개소나 되며 <팔미리>를 중심으로 창업 커뮤니티를 형성해가고 있다.
조금 특이한 사례도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세종시삼십분>이다. <세종시삼십분>은 <비스트로 세종>이라는 퓨전 레스토랑 운영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본질은 브랜드 상품 개발이다. 세종시를 지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세종시삼십분>이 개발한 하나 이상의 세종브랜드를 소비하거나 기억하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퓨전 레스토랑 운영 이외의 다양한 비즈니스에 과감히 도전하고 있다.
<세종시삼십분>의 장부 대표는 세종특별자치시에 가리워진 조치원 원도심의 회복과 청년일자리 창출, 원래의 지역 산업인 농업과 축산업 발전을 위해 기여하겠다는 강한 소셜미션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팝업스토어인 <연서 데어리>를 오픈해 세종시 목장에서 공급받은 원유를 재료로 한 요거트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나아가 <비스트로 세종>의 성공을 바탕으로 로컬푸드로 메뉴 개발을 원하는 다른 지역 창업자들에게 자신들의 노하우를 전하는 등 상품화를 지원하는 컴퍼니빌더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세종시삼십분>이 기획한 세종시의 로컬푸드 복숭아를 재료로 한 ‘세종피치에일’ (세종시삼십분 인스타그램)
창업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지역 창업 커뮤니티
<비채커피> 전경. 건물 측면으로 공방 클러스터가 조성되고 있다. (비채커피 인스타그램)
이렇게 개성있는 창업자들이 모이다보면 상가와 유사한 클러스터 형태를 이루기도 한다. 정부나 지자체가 주도해 만든 청년몰이나 창업보육센터와는 또 다른 차원의 조직이다. 충청북도 충주시에 가면 충주시 원도심 ‘관아골’과 충주시 노은면의 <비채커피> 2가지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충주시 원도심 관아골의 지역 창업 커뮤니티는 성내동 도시재생사업, 충주시의 청년가게 프로젝트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있어 모범적인 거버넌스 사례를 보이는 곳이다. 도시 재정비는 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하는 도시재생사업의 결과라 할 수 있지만, 활성화는 민간 영역의 자발적인 참여가 없다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앵커스토어인 <세상상회>를 중심으로 골목 안쪽으로 청년들이 운영하는 독특한 점포 서너 군데가 형성되며 원도심 활성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관아골의 청년가게들이 협력하며 자신들의 점포를 개방해 시작한 플리마켓인 <담장마켓>은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를 실시하기 전까지 14회를 지속해 왔으며 매 회 50여 팀의 셀러, 1,500명의 시민들을 이곳으로 끌어 모으고 있다. 관아골의 비즈니스 주체들이 사업화를 위해 연대한 <보탬 플러스> 협동조합을 주축으로 관아골 골목만이 제공하는 컨시어지 서비스를 형성하며 자연스런 집객을 이루어내고 있다. 또한 개별 점포가 할 수 없는 규모의 사업들을 수주하며 다양한 청년가게의 창업과 정착을 돕고 있다.
청년가게들이 점포를 개방해 시작한 <담장마켓>은 좁은 골목의 특징을 살려 매월 다른 테마로 운영된 플리마켓이다.
(세상상회 인스타그램)
충주로 진입하는 관문인 노은면 <비채커피>는 인터넷 커뮤니티 쇼핑몰 <꽃피는 아침마을>의 계열회사이기도 하다. 자주봉산 인근으로 이전한 <꽃피는 아침마을>의 웰컴센터 기능을 수행하면서 넓은 정원과 카페 공간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통해 충주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다.
<비채커피>는 넓은 부지를 활용해 공방거리를 조성하고 있다. 다양한 작가들이 정주하며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카페 내부의 갤러리를 활용한 작품 전시로 판매를 유도하고 있다. 현재 천연염색 공방, 팜슈가 공방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팜슈가는 <꽃피는 아침마을> 쇼핑몰을 통해 전국에 판매되고 있다.
<비채커피>는 공방 아티스트의 클러스터를 형성한다는 설명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꽃피는 아침마을> 커뮤니티와 쇼핑몰을 플랫폼으로 활용해 공방 창업자의 판로개척과 비즈니스 확장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웰니스 관광 플랫폼 형성을 위해서도 준비해 나가고 있다.
지역 창업 커뮤니티 정신: 덕업상권(德業相勸)
지금까지 필자의 시각에서 발견한 지역 창업 커뮤니티의 몇 가지 유형과 사례를 소개해 보았다. 글을 써나가면서 조선시대 향촌 사회의 자치규약이었던 ‘향약(鄕約)’의 4대 강목 중 하나인 ‘덕업상권(德業相勸)’이 떠올랐다. 어쩌면 향약과 같은 전통이 지역 창업 커뮤니티를 자연발생적으로 존재하게 한 정신을 형성한 것은 아닐까 연관지어 보게 되었다.
‘덕업상권(德業相勸)’은 좋은 일은 서로 권한다는 의미인데, 이를 지금 현재 지역 창업 커뮤니티와 겹쳐본다면 좋은 일을 의미하는 ‘덕업(德業)’은 ‘창업(創)’으로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자신의 생계를 위한 먹거리를 도모하는 것은 물론, 다른 이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창업이다. 이를 서로 권한다는 의미에서 ‘덕업상권(德業相勸)’을 재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서로 상(相)’자를 비즈니스를 서로 권한다는 의미로 ‘장사 상(商)’자로 바꾼 ‘덕업상권(德業商勸)’이라는 변형한 말로 지역 창업 커뮤니티의 속성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필자가 지역 창업 커뮤니티가 하고 있는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 스타트업 생태계 속의 컴퍼니빌더 개념을 차용했는데, 개념상으로만 컴퍼니빌더와 유사할 뿐 컴퍼니빌더가 하는 일이나 비즈니스 모델과 이들의 활동은 동일하지 않다. 창업생태계를 구성해간다는 점은 동일하다 볼 수 있겠지만, 컴퍼니빌더 또한 영리를 추구하는 사업체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설명한 창업 커뮤니티와는 성격이 다르다.
다른 이유라면 하나 더 있다. 지역 창업 커뮤니티의 구성원이 비즈니스맨으로만 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창업 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나 중간지원조직 관계자, 학자, 전문가, 지역의 활동가도 있고, 요즘 다방면에서 부각되고 있는 로컬크리에이터, 평범한 점포나 기업들까지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이들까지 컴퍼니빌더라는 말로 포괄하는 것은 애매하며, 이들을 어떤 명칭으로 정의하거나 표현해야 한다면 ‘지역 창업 코디네이터’, 또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통용되는 ‘로컬’이란 단어를 사용해 ‘로컬 비즈니스 코디네이터’ 정도로 지칭하는 것이 자연스런 이해와 소통에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사족이 될 수 있음에도 명칭이야기를 꺼낸 것은 결론을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 글은 균형발전과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지역 창업 커뮤니티가 일으키는 현상을 함께 관찰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이왕이면 정책관계자들이 지역 창업 커뮤니티를 작동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그들의 속성은 무엇인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용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의미를 명료히 함으로써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정확히 직시하고 각각의 지역에서 창업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는 주체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주었으면 좋겠고, 이들이 더욱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정책을 도출해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필자 또한 <시사N라이프>의 ‘지속가능한 창업’ 코너를 통해 각자의 지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다양한 비즈니스 활동상을 소개하도록 노력하겠다.
윤준식
시사N라이프 편집장
지속가능한 창업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어디든 갑니다.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저널리즘을 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