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ABIS 뉴스레터 2025-7호 ]
도시에 대한 권리 생각하기
오도영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및 자유전공학부 조교수
도시에 대한 권리 생각하기
도시에 대한 권리 주장하기
우리나라에서 도시에 대한 권리 찾기
나가며

도시에 대한 권리 생각하기
오늘날 도시 연구자들에게 ‘도시에 대한 권리(Right to the City)’는 익숙한 개념이지만, 아직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거나 받아들여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라는 개념 자체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도 18세기부터이니, 인류 역사 전체로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권리가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도시화가 전통적인 행정적·물리적 경계를 넘어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는 ‘행성적 도시화(Planetary Urbanization)’ 시대인 지금, ‘도시에 대한 권리’가 단지 도시 거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관점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개념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 측면에서도 접근할 수 있다. 이 개념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가 1968년 출간한 책에서 처음 제안하였다. 르페브르는 도시가 그 안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고 발전시켜야 할 공공재임에도 불구하고, 점차 소수의 엘리트 집단에 의해 만들어지는 ‘상품’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적이고 포용적인 도시를 조성하고, 자본 중심의 도시 구조에서 벗어나 공동체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르페브르는 도시를 만남과 교류의 장으로 바라보며, 주민들이 도시의 주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를 상상하였다.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도시에 대한 권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구체화할 수 있다.
첫째, 전유의 권리이다. 이는 시민이 도시 공간을 자신의 필요에 맞게 이용하고 변형할 수 있는 권리로, 소유의 개념과는 다르다. 전유는 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에 초점을 맞추어 도시를 활용하는 개념이다. 도시를 단지 소유하거나 거래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민 각자가 삶을 꾸려가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재개발 지역의 세입자는 오랜 시간 해당 지역에 살아왔음에도 새롭게 계획되는 공간에서 자신의 권리와 의견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장애인 권리 운동을 통해 널리 알려졌듯이 우리나라 도시에서 장애인의 이동권은 여전히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이러한 소수자의 권리는 때때로 예산 문제나 비장애인의 불편 등을 이유로 외면받기 쉽다. 이에 맞서는 전유의 권리를 통해 도시를 함께 만들고 발전시켜 온 다양한 시민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둘째는 참여의 권리이다. 이는 시민이 도시 공간의 생산과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도시계획 과정에는 주민 참여 절차가 포함되어 있지만, 형식적으로 운영되거나 주요 의사결정에서 주민의 입장이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외국인처럼 법적 지위가 불명확한 사람들은 지역 의사결정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이주 배경 인구가 총인구의 5%를 처음으로 초과하였고, 일부 지자체에서는 그 비율이 20%를 넘어서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손쉽게 혐오의 대상이 될 뿐, 이들의 참여권 보장을 위한 논의는 미흡한 실정이다. 참여의 권리는 다양한 도시 구성원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도시의 일원이자 주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적 기반이다. 이를 통해 도시 전체의 공동체적 소속감과 주인의식이 강화되고, 도시는 더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에 대한 권리 주장하기
우리가 인권을 명확히 정의하기 어려운 것처럼, ‘도시에 대한 권리’ 역시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따라서 ‘도시에 대한 관리’가 다소 급진적으로 느껴지거나 개념의 모호함 때문에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 권리를 구체화하고 제도의 일부로 확립하려는 시도는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이다.
2016년, 유엔 해비타트(UN-Habitat)는 에콰도르 키토에서 열린 ‘해비타트 III(Habitat III)’ 대회에서 ‘지속가능성과 모두를 위한 도시’를 주요 의제로 설정하고, ‘새로운 도시 의제(New Urban Agenda)’를 채택하였다. 이 과정에서 ‘모두를 위한 도시(Cities for All)’라는 개념이 핵심 가치로 주목받았다.
‘모두를 위한 도시’는 사실상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도시 의제’에서는 해당 개념을 ‘도시와 인간 정주지를 평등하게 이용하고 향유할 권리’로 정의하며, “모든 거주자가 정의롭고, 안전하며, 건강하고, 접근 가능하며, 경제적으로 부담 가능하고, 회복력이 있으며, 지속 가능한 도시를 생산하고, 이에 거주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일부 국가와 지방정부가 이러한 목표를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으로 법률, 정치적 선언, 헌장에서 명문화하려는 노력을 인정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세계지방정부연합(UCLG: United Cities and Local Governments)과 같은 국제 비정부 연합체들도 ’도시에 대한 권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이를 확산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브라질과 에콰도르 등 일부 국가에서 진행된 ‘도시에 대한 권리’를 법제화하려는 시도를 주목할 만하다. 특히 브라질은 전 세계 최초로 ‘도시법(Estatuto da Cidade)’을 제정하여, ‘도시에 대한 권리’를 명문화하였다. 이 법률은 도시 토지의 사회적 기능을 인정하고, 주거권을 보장하며, 지방정부의 도시계획 과정에서 시민 참여를 의무화하였다. 또한 유휴 토지에 대한 과세 및 강제 개발 명령을 통해 토지 투기를 방지하고 공정한 토지 접근성을 보장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법을 활용하여 일부 브라질 도시들은 ‘사회적 관심 특별구역(Zonas Especiais de Interesse Social, ZEIS)’을 지정함으로써, 비공식 주거 지역의 거주자들을 강제퇴거로부터 보호하고, 지역사회 주도로 도시 환경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였다.
에콰도르 역시 2008년 개헌을 통해 헌법 제31조에서 “모든 사람이 지속 가능성, 사회적 정의, 다양한 문화에 대한 존중의 원칙에 기반하여 도시와 그 공공 공간을 완전하게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여 ‘도시에 대한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야 할 기본 권리로 격상시켰다.
그밖에 캐나다의 몬트리올 시정부는 2006년 “몬트리올 시민권리 책임 헌장(Montreal Charter of Rights and Responsibilities)”을 제정하여 도시 거주자의 다양한 권리를 보장하는 시도를 진행하였다. 유럽과 북미의 일부 도시들도 이와 유사한 취지로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들이 당장 도시 내 취약계층의 권리에 급진적인 변화를 불러왔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도시를 향한 중요한 첫걸음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도시에 대한 권리 찾기
‘도시에 대한 권리’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과연 완전히 새로운 개념일까? 한국의 역사와 제도 속에서도 도시 거주자의 참여권을 보장하고 공동체적 권리를 지키려는 노력이 오랜 기간 지속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조선 시대에는 ‘두레’나 ‘계’ 같은 공동체 조직이 존재했다. 오늘날에도 형태와 방식은 다소 다르지만, 이러한 전통이 일부 유지되고 있다. 이후 1960~70년대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정부는 도시빈민 수용을 위해 일부 판자촌을 조성했고, 종교계와 지역 사회는 공동체 운동을 전개하여 도시 내 취약계층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시작하였다. 1980년대 들어 정부 주도의 하향식 도시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대규모 철거민이 발생했으나 이에 대응하여 도시 주거권 운동이 본격화되었고, 도시빈민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이 점차 확대되기 시작했다. 당시 ‘도시에 대한 권리’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노력이 다양한 도시 구성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오랜 기간에 걸쳐 도시에 대한 권리를 실천하려는 노력이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도시에 대한 권리’가 단순히 도시빈민의 문제가 아니라, 소상공인과 일반 시민들의 기억과 문화까지 포함하는 도시 생활 자체에 대한 권리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2009년 용산참사를 계기로 도시 공간에서 거주민이 가져야 할 기본 권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공론화되기 시작했고, 국회에서는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이태원과 홍대 등에서 임대료 급등으로 인해 원주민과 소상공인이 삶의 터전을 잃고 지역에서 밀려나는 현상이 두드러지자, 이를 막기 위한 시민사회의 연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다. 서울시 성동구와 같은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하여 소상공인을 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1980년에 개업한 을지OB베어 호프집은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백년가게’*로 지정되었음에도, 건물주와의 갈등으로 인해 철거 위기에 처했다. 이에, 가게를 오랜 기간 이용했던 시민들과 주변 상가의 세입자들, 문화 예술인들이 함께 연대하여 강제 철거를 막기 위한 노력이 5년간 이어졌다.
* 백년가게: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점포 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 받아 공식 인증받은 점포 (출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백년가게·백년소공인 홈페이지)
참여의 권리와 관련한 사례로 우리나라에서 2011년부터 의무화된 지방자치단체의 주민참여예산제를 들 수 있다. 1989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시작된 주민참여예산제는 브라질의 다른 도시뿐만 아니라 프랑스 파리, 영국 맨체스터 등 유럽의 도시들과 미국의 시카고, 뉴욕 등의 북미 도시로 확산되었으며, 오늘날 전 세계 다양한 도시에서 유사한 제도가 정착되었다. 그 결과, 시민들이 직접 정부에 사업을 제안하고 예산 편성, 집행, 결산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광주 북구에서 전국 최초로 주민참여예산제가 도입된 이후, 2023년 10월 기준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 중 105개 단체가 관련 조례를 정비하여 주민들이 도시의 의사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확대하고자 하였다. 물론 이러한 제도가 실제로 주민의 참여를 어느 정도 보장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주민참여예산제는 ‘도시에 대한 권리’가 단순히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질적인 정책을 통해 우리 주변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나가며
'도시에 대한 권리'는 이제 단순한 개념적 논의를 넘어 도시 거주자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르페브르가 제시한 이 개념은 도시를 상품이 아닌 공공재로 보고, 주민들이 도시 공간을 형성하고 향유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도시에 대한 권리’는 법과 정책, 사회운동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구체화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그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도시 개발 과정에서 원주민이 내몰리는 문제, 소수자의 배제, 형식적인 주민 참여 구조 등 개선해야 할 과제 역시 남아있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선언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실천이 동반되어야 한다. 도시 공간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제도적 장치가 강화되어야 하고, 모든 거주자가 도시의 정책 결정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도시는 특정 집단이 소유하고 통제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형성하고 누릴 권리를 가진 곳이어야 한다. 이 원칙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노력이 계속될 때 도시는 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만남과 교류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도영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및 자유전공학부 조교수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에서 지역 및 도시계획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홍콩 링난대학교와 부산대학교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자유전공학부에서
도시인문학 전공 조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저술로는 LSE Press에서 2022년 출판된
COVID-19 and Southeast Asia가 있으며,
ities, Geoforum, Journal of Urban History와 같은
내외 저명 학술지에 논문을 출판하였다.
주요 관심사로는 동아시아 도시의 정치경제학, 포스트콜로니얼 도시화 등이 있다.
<참고문헌>
르페브르 앙리, 2024, 『도시에 대한 권리』, 이숲
박인권, 2024,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도시를 향한 한국의 여정」, ≪국토≫, 511호
박세훈, 2016, 「해비타트III와 새로운 도시의제」, ≪국토≫, 4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