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ABIS 뉴스레터 2025-13호 ]
연대와 결속의 균형발전 실천 주체, 프랑스 제3의장소(Tiers-lieux)
권인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프랑스 제3의장소의 형성과 확산
균형발전을 위한 프랑스 지역결속 정책과 제3의장소 지원
커뮤니티마다의 하이브리드 모델 운영
맺음말

프랑스 제3의장소의 형성과 확산
프랑스에는 ‘제3의장소(Tiers-lieux)’라 부르는 곳이 수천 곳 있다. 주민들은 각자의 이유로 내가 살고있는 지역의 제3의장소를 찾고 그곳에서 내가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한다. 제3의장소는 그 이름이 가진 느낌처럼 명확히 정의하기 어려운 공간으로, 사람들이 일과 생활의 ‘중간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함께 하는 공간이다.
지역 곳곳에 위치한 제3의장소는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존재하면서 생태 전환, 디지털화, 로컬 제조, 공공재 생산, 문화·예술, 지속가능한 식생활, 사회적 연결과 참여 등 해당 지역사회의 당면 이슈에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하며 실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사회적 연결과 교류, 자유함(emancipation)의 토양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공동의 실험과 실천이 펼쳐지는 장소로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들고 있다.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는 프랑스 제3의장소 (출처: ANCT(2021))
프랑스에서 제3의장소는 시민사회를 포함한 지역의 공동체, 사회적경제 주체 등이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던 다양한 실천에 기반하여 2000년대 후반부터 생겨나고 있었다. 이들 제3의장소는 창작, 생산, 교육, 디지털 접근성 등 목적을 가지고 지역의 필요와 특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정부는 프랑스 사회 곳곳에 10년 가까이 형성되어 온 제3의장소의 의미에 주목하고, 그러한 활동 기반을 토대로 2019년 제3의장소 지원을 위한 ‘새 장소, 새 연결(Nouveaux Lieux, Nouveaux Liens)’프로그램을 런칭하였다.
‘새 장소, 새 연결’은 노동, 교육, 문화, 지역·도시개발, 경제 등 관련 부처들이 공동 런칭한 프로그램으로, 프랑스 정부가 해당 섹터의 관련 주체들과 함께 수립한 것이다. 정책지원 과정에서는 전국단위 협회인 ‘프랑스 제3의장소’(France Tiers-Lieux)¹가 정책 파트너로서 정부와 제3의장소 간의 중간지원조직 역할을 수행하면서 제3의장소 생태계를 전문화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¹ 2019년 6월 프랑스정부(ANCT, 지역결속청) 주도하에 설립된 전국단위 협회(association nationale)이다.
이처럼 프랑스정부는 지역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제3의장소를 정책의 범위로 포함시키고 제3의장소 생태계가 심화·확장되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제3의장소의 발전·확산을 위한 정책지원에 힘입어 제3의장소는 프랑스 전역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2018년 약 1,800개였던 제3의장소는 2021년 2,500개, 2023년 3,500개로 증가했으며, 2025년까지 5,000여 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균형발전을 위한 프랑스 지역결속 정책과 제3의장소 지원
프랑스 국가정책에서 추구하는 균형발전의 가치는 '균등(equilibre)'에서 '지역 간 평등(egalite)'으로, 다시 평등에서 현재는 '지역 간 결속(cohesion des territoires)'으로 변화해왔다. 이러한 변화는 인프라 분산 등을 통해 균등을 추구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의 자율성과 자생력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적 연대(solidarite)'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한 것을 의미한다.
물적 인프라 중심의 공간정책에서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성을 형성하는 공간정의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하는 흐름 속에서 제3의장소는 지역결속 정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지역의 실천 주체로서 강조되고 있다. 프랑스 제3의장소의 59%는 코뮌(commune), 52%는 지자체 간 협력체(intercommunalite)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45%는 레지옹(region), 42%는 데파르트망(departement), 38%는 중앙정부, 16%는 유럽 차원의 협력 관계를 가지고 있다.¹ 특히 코뮌, 지자체 간 협력체 등과 같이 지역사회에서 제3의장소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정책을 '함께 만들어가는(co-construction)' 중요한 파트너로서 제3의장소와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한다. 지방자치단체는 보조금 등 재정 지원 외에도 공간 지원, 기술·행정 지원, 거버넌스 참여 등의 방식으로 협력하면서 제3의장소의 지속적 활동을 지원한다.
¹ 그 외에도 8%는 페이(pays)나 지역·농촌균형폴(Pole d’equilibre territorial et rural), 6%는 레지옹 자연공원(parc naturel regional)과 협력 관계를 가지고 있다.
코뮌당 제3의장소 수(2023년) (주: 2023년 기준 3,500개 제3의장소 현황, 출처: France Tiers-Lieux(2023) 자료(www.horizonspublics.fr/, 검색일: 2025.4.21.))
제3의장소는 특히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지역사회 역량을 강화하고 창의적 해법 모색과 자발적 실험을 지원하는 사회·경제 거점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2023년 기준 약 3,500개 제3의장소 중 62%가 대도시권(메트로폴)이 아닌 농촌지역(34%)과 중소도시(28%)에서 운영되고 있다. 대도시권이라 할 수 있는 메트로폴(Metropole)¹ 외부에 위치한 제3의장소 비중은 2018년 46%, 2021년 55%에서 2023년 62%로 계속 증가해왔다.
¹ 메트로폴은 일정 규모(일반적으로 인구 40만 명 이상)의 중심도시와 그 주변 자치단체들이 협력하여 경제 개발, 도시계획, 교통, 환경 등 주요 정책을 통합적·광역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든 지자체 간 협력체이다.
또한 프랑스정부는 정책지원의 하나로 제3의장소 중 일부를 지역제작소(Fabriques de territoire)로 지정하여 재정적·기술적 지원을 제공하는 인증제도를 운영한다. 지역제작소는 2024년 기준 전국에 407개소가 지정되어 있는데, 도시 중에서도 상대적 취약지역인 QPV(도시정책우선관리구역), 그리고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에 주로 분포한다. 지역제작소는 지역 단위 제3의장소 네트워크의 자원센터로서 제3의장소의 전문화, 교육, 역량강화 등과 관련하여 지원·협업한다.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고 디지털 취약계층의 사용능력을 높이도록 지원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커뮤니티마다의 하이브리드 모델 운영
제3의장소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해당 지역사회의 필요에 따른 다채로운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제3의장소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활동을 살펴보면, 절반이 넘는 55%의 제3의장소에서 공유 오피스(Bureaux partages/coworking)를 운영하고, 31%는 문화적 제3의장소로서 예술·공연·전시 등 문화·예술 활동을 전개한다. 28%는 제작 활동(Fablab/Makerspace/Hackerspace)을 수행하는 제3의장소로, 디지털 제작도구나 수공구 등을 활용해 주민들이 직접 ‘만드는 공간’으로서 기술 기반의 창작 활동이 이루어진다. 또 다른 ‘만드는 공간’으로서 장인·예술가들이 공간과 도구를 공유하는 공방으로 기능하는 제3의장소(16%)도 있다. 제3의장소 중 15%는 시민과 관련 주체들이 함께 지역의 문제를 정의하고 실험을 통해 해결책을 찾는 사회혁신 플랫폼으로서 리빙랩 및 사회혁신 실험실(Living Labs/Laboratoires d’innovation sociale) 역할을 하고 있다. 제3의장소의 10%에서는 지속가능한 식생활 실천과 농업(도시농업, 공동텃밭 등 포함) 활동을 수행하며, 6%는 공유 주방(Cuisines partagees)을 운영하며 요리를 매개로 한 커뮤니티 활동이나 창업 실험 등을 지원한다.
제3의장소에서 추진하는 활동 유형 (출처: France Tiers-Lieux(https://observatoire.francetierslieux.fr/donnees/))
활동 유형에 따라 제3의장소 유형이 구별되는 것은 아니며, 하나의 제3의장소에서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인구 2천 명이 되지 않는 파리 근교 작은 코뮌(Gometz-la-Ville, 고메츠-라-빌)의 제3의장소 '보드르빌의 온실(Les Serres de Beaudreville)'은 농업을 중심에 두지만, 양봉에 기반한 비즈니스와 커뮤니티 가드닝 등 활동 외에도 지역예술가에 대한 레지던시 사업, 창업 지원¹, 숙박서비스(에어비엔비 숙소 운영)에 이르는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진다. 주민들이 모여 요가를 하는 등 여가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곳을 찾기도 한다.
¹ 전문적 수준의 창업 지원은 아니지만, 아이디어를 실행 가능한 최소한의 제품으로 만들어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전적 인큐베이션(pre-incubation) 기능을 수행한다.
다른 예로, 누벨-아키텐 레지옹의 인구 1만 5천 명이 사는 코뮌(Gueret, 게레)에 위치한 제3의장소 '철물점(La Quincaillerie)'은 주민들의 창작·제작 공간인 패브랩(Fab lab), 코워킹하는 공간, 동네 라디오 운영 공간, 주민들의 디지털 접근 공간이자 만나고 교류하는 공간, 주민들의 작품 전시 공간 등으로 운영된다.
다양한 주민 활동이 이루어지는 제3의장소 ‘철물점(La Quincaillerie)’ (출처: Societe Numerique(Youtube 채널), “Hyperliens #1 - La Quincaillerie - Un Tiers Lieu En Creuse.”)
제3의장소는 유연한 실천 모델로서 장소마다 다양한 조직형태를 보이는 점도 특징적이다. 각각의 제3의장소가 취하는 조직형태는 그 장소만의 운영 철학, 파트너십 방식, 재정 조달 방식 등과 관련된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인 비영리 협회는 전체 제3의장소 중 51%로 과반 이상을 차지한다. 제3의장소의 19%는 SARL, SAS 등 기업 법인의 형태로 운영되는데, 이는 코워킹, 창업, 디지털 제작소 등의 수익형 모델과 관련된다. 5분의 1에 가까운 제3의장소를 민간 사업체가 운영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사회적경제 조직(SCIC, SCOP 등)이 운영하는 곳이 9%이며, 지방자치단체¹(Collectivites)가 제3의장소를 직접 운영하거나 적극 관여하는 공공 운영 형태가 11%이다.
¹ 지방자치단체로는 코뮌(Commune), 데파르트망(Departement), 레지옹(Region), 특별지위 지방자치단체(Collectivite a statut particulier) 등이 있다.
이처럼 제3의장소마다 목적과 형태가 다르고 하나의 장소에서도 여러 활동 유형이 공존하기 때문에 제3의장소를 일률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다만 지역사회에 기반하여 발현되는 기업가정신, 실험과 창조(사회혁신), 협력과 자유로운 기여, 활동·소득의 하이브리드화, 개방과 호의(convivialite) 등과 같은 특징적 요소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제3의장소에서 나타나는 특징적 요소들 (출처: FRANCE TIERS LIEUX(2021)를 바탕으로 작성한 권인혜(2023)에서 일부 수정)

맺음말
프랑스의 제3의장소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사회 전환의 동력으로서 이전과 다른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새로운 실험이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위에 생태 전환, 디지털화, 지속가능한 식량 생산과 소비, 로컬 단위로의 제조 이동, 공공서비스 전달, 문화 실천의 향상 등 현시대의 당면 과제에 대해 제3의장소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제3의장소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지역 주체들의 네트워크와 역량이 지역사회의 창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커뮤니티 역량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의미있게 생각해볼 점이다.
제3의장소가 만들어내는 여러 긍정적 효과들에도 불구하고 도전과제도 존재한다. 여전히 상당수 제3의장소가 재정적 안정성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3년 기준 제3의장소 예산의 49%가 공공보조금에 해당해¹ 상당 수준 정부 지원금에 의존적인 구조라 할 수 있다.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면서도 자율적 운영 모델을 만드는 것은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 이 역시도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해법이 아니라 각 제3의장소마다의 여건과 특성에 맞는 모델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¹ 프랑스제3의장소(France Tiers Lieux) 협회 제공 자료(설문조사 결과)
제도와의 균형 있는 관계 설정 문제도 계속 고민해가야 할 부분이다. 제3의장소가 갖는 자율성과 창의성, 혼종성이라는 속성과 제도화를 위한 규율 사이에 긴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제3의장소 접근이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변화해야 할 필요성에 따른 프랑스정부의 정책 실험을 담고 있지만, 하이브리드 프로젝트에 대한 수용성, 칸막이 구조, 필요 이상의 행정적 요식 등 관련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프랑스 주민의 새로운 일상이 되고있는 제3의장소는 지역의 주체들이 지역사회 현안에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하여 실험하고 실천하는 기반 공간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제3의장소를 지원하는 정책이 공간 조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리적 공간 중심 정책에서 공동체성과 사회적 관계 형성을 중심에 두는 정책으로 균형발전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하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각각의 지역 안에서, 그리고 각 지역들 간에 사회적 관계를 조직화하는 방식을 통해 커뮤니티의 연대와 결속을 이끌어내고, 결과적으로 국토결속으로서의 균형발전을 이루어가겠다는 접근이다. 그러한 지역결속 정책의 실행 주체로서 제3의장소가 갖는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권인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대학교에서 도시계획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근무하며 농촌지역 발전을 위한 다양한 주제에 걸쳐 연구해왔다.
현재 농촌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부정책 지원 활동과 더불어
농촌재생 모델 개발·실증, 도시-농촌 상생을 위한 관계인구의 연결과 확대,
주민참여적 농촌공간계획 제도 운영 등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더 많은 사람들이 농촌지역에서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실현할 수 있는,
그래서 농촌지역이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삶의 공간으로 지속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하고 있다.
참고문헌
권인혜, 2023. “프랑스의 제3의 장소 지원정책과 보드르빌의 온실(La Serres de Beaudreville) 사례”, 세계농업 제251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수진·차미숙·이혜민, 2022, 균형발전의 가치 변화와 공간정책: 프랑스 사례를 중심으로. 국토연구원.
ANCT, 2021, L’Etat s’engage en faveur des tiers-lieux - 29 nouvelles fabriques labellisees.
ANCT, 27 AOUT 2021, L’Etat engage aupres des tiers-lieux, Dossier de presse.
ANCT, 2024, LE SOUTIEN DE L’ETAT AUX TIERS-LIEUX SUR LES TERRITOIRES RECHERCHE EVALUATIVE SUR LES ENJEUX, IMPACTS ET DILEMMES DES FABRIQUES DE TERRITOIRE.
Dagonneau, M., 2022. Les tiers-lieux en France, laboratoires de nouvelles solidarites socio-spatiales?. Bulletin de l’association de geographes francais. Geographies, 99(99-3).
FRANCE TIERS LIEUX, 2021, NOS TERRITOIRES EN ACTION: Dans les tiers-lieux se fabrique notre avenir! RAPPORT 2021.
FRANCE TIERS LIEUX, 2023, GUIDE TIERS-LIEUX & COLLECTIVITES - COMMENT FAIRE ENSEM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