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ABIS 뉴스레터 2025-18호 ]
무대는 지역이고, 배우는 우리가 되었다
: 한경면 프로젝트에서 균형을 다시 그려본 시간들
곽효정
제주로컬매거진 〈sarm〉 편집장
지역, 다시 사는 법
인구 소멸 위험 진입 단계, 한경면으로 가다
우리가 만드는 제주로컬브랜드 스토리
우리 삶이 예술이며, 터전이 무대라는 것
지역, 감각, 균형

지역, 다시 사는 법
우즈베키스탄 소도시 페르가나에 살면서 처음으로 '지역'이란 단어를 실감했다. 이전의 나는 중심을 향해 달리는 삶을 살았고, 떠나온 곳은 그저 배경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중심에서 지역을 배운 이야기다.
페르가나는 반경 4km 안에 시장, 학교, 공원, 도서관, 마트까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는 작고 조밀한 도시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쳤고, 걸어서 학교까지 가도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길에서 학생들을 자주 마주쳤고, 여름이면 아이들이 직접 기른 과일을 비닐봉지에 담아 찾아오곤 했다. 그 안에서 벌레가 기어 나올 때면 오히려 유기농 같아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서울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삶이었다. "선생님, 집에 있어요?" 하고 묻는, 친구이자 이웃이 함께 있던 시간이었다.
우즈베키스탄 도서관에서의 수업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나도 모르게 그곳의 생활 방식에 스며들고 있었다.
외국어 수업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 "취미가 뭐예요?"에 우즈벡 아이들은 하나같이 "산책입니다"라고 했다. 왜 취미가 다 똑같지? 싶었지만, 1년쯤 지나고 나니 나도 저녁을 먹고 함께 일하는 선생님과 한두 시간 산책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삶이었다.
그즈음, 내가 지나온 장소들을 자연스레 돌아보게 됐다. 들과 평야로 이어지는 페르가나는 도시라기보단 하나의 커다란 동네 같았다. 변화는 느렸지만, 가능성은 많아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한국어가 인생을 바꿀 거라 믿었고, 나는 그곳에서 오히려 가장 평화롭고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나는 처음으로 어디에서 살아갈지를 고민하게 됐다. 페르가나에서 이웃이 친구이고 친구가 이웃인 삶을 처음 경험했고, 그 느슨하지만 단단한 연결 속에서 살아가는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음 삶의 무대는 그런 관계가 가능한 지역이면 좋겠다고, 생각은 막연했지만 그 바람만큼은 분명했다. '어디든 상관없어'가 아니라, '어디서 살아갈지'부터 묻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지역은 제주였다. 단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택배 두 상자, 그게 나의 입도 준비물이었다.
그때의 나는 아직 몰랐다. 그 섬에서 다시, 지역을 배워가게 될 줄은.
인구 소멸 위험 진입 단계, 한경면으로 가다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던 건, 언젠가 세계의 불균형을 마주하며 살아보겠다는 막연한 꿈 때문이었다. 그곳 아이들과 한국어로 소통하며, 언어를 매개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이번엔 멀리 나가지 않고, 내가 사는 '지역' 안에서 그 공존의 마음을 이어가고 싶었다.
마침 정부 지원을 받아 제주관광공사가 추진한 '삼춘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팀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삼춘'은 제주에서 어른을 부르는 말. 이 프로젝트가 서쪽 끝 한경면에서 열린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나는 직접 그 지역에 머물며 지원 준비를 했다.
그동안 여러 지역을 다니며 품었던 질문들, 그에 대한 나만의 상상과 응답을 담았다. 지역 주민의 평범한 삶이 곧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가 지역만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루지 못하더라도, 상상하고 시도할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인터뷰로 매거진을 만들고, 그 이야기를 연극이나 드라마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을 담았다. 그렇게, 아직 시도되지 않은 상상을 조심스럽게 꺼내보며 지원서를 냈고, 나는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었다.
<sarm> 초기 책자
이후 한경면에서도 가장 서쪽 마을인 고산리로 이사했다. 이 프로젝트는 정답이 없는 실험이었다. 국민 세금으로 진행되는 사업인 만큼, 단기 실적보다 시간이 지나도 의미가 남을 결과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우선 '그 지역의 사람'이 되기로 했다. 주민들이 모이는 곳엔 나도 함께했고, 무언가 열린다 하면 찾아가 보았다. 마을의 서점, 저녁이면 사랑방이 되는 펍, 옆 동네 게스트하우스, 계절마다 열리는 장터들. 그렇게 나는 마을에서, 이웃들과 시간을 보냈다.
도움을 준 이들은 대부분 제주로 이주해 정착한 이들이었다. 원래 그 마을에서 살아온 분들을 만나기 위해선 이장님의 소개가 필요했다. 대개 어르신들이었고, 나는 그분들을 '삼춘'이라 부르며 이야기를 들었다. 몇 년을 살아도 몰랐을 지역의 이야기들을 한평생 그곳에 살아온 이들에게 들으며, 조금씩 그 지역 사람이 되어감을 느꼈다.
<sarm> 초기 책자
계절이 바뀌자 나는 마을의 작은 조력자가 된 듯했다. 한경면 곳곳을 누비며 자주 이웃들과 인사를 나눴고, 1장짜리 종이로 시작한 작은 매거진은 점점 두꺼워졌다. 내가 기록한 한경면 사람들의 이야기도 점점 쌓여갔다.
한경면은 '인구소멸 위험 진입 단계' 지역이다. 어르신은 많고, 출생아는 적다. 그런데도 마을 구석구석에는 자기만의 가게를 열고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관광객도, 동네 사람도 자주 찾지 않는 거리에서, 그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착 중이었다.
나는 그 가게들을 연결해 작고 느린 여행 동선을 만들고자 했다. 결과물을 위한 기획이 아니라, 그런 삶의 방식들이 '살고 싶은 지역'을 함께 그리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우리가 만드는 제주로컬브랜드 스토리
어릴 적 우리는 이름 있는 제품을 '메이커'라 불렀다. 부잣집 아이들이 입는 메이커 옷을 갖고 싶어 조르면, 부모님은 "그건 그냥 이름값일 뿐이야"라고 하셨다. 시간이 흐르며 그 '이름값'은 '브랜드'라는 말로 바뀌었고, 그 의미도 달라졌다. 브랜드는 이제 상표를 넘어 '내가 어떤 물건을 쓰는 사람인가'를 통해 나를 드러내는 언어가 되었다. 선택과 취향, 태도를 표현하는 방식. 결국 브랜드는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또 다른 언어다.
이 단어에 관심이 생긴 건 프리랜서가 되면서부터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정리해야 했고,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일이라 생각했다. 삶의 방향과 태도에서 비롯된 고유한 인상이 브랜드였다.
한경면에서 만난 소상공인의 가게도 저마다의 색을 지니고 있었다. 단지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 또한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 왔고, 가게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뿐이었다.
'삼춘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마지막 챕터는 '로컬브랜드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간 만들어온 로컬매거진의 분량을 늘려 절반은 브랜드 이야기를, 나머지는 주민의 삶을 담기로 했다. 마을별로 브랜드 스토리를 함께 만들어갈 소상공인을 모집하고, 그들을 컨설팅할 마케터도 섭외했다. 조건은 단 하나, 이 지역의 특성과 처음 창업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것.
유명한 마케터라 해도, 소상공인 브랜딩을 잘할 거라 단정할 수 없다. 다른 지역의 성공 사례를 그대로 가져와도 같은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각자의 삶, 지역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경면의 로컬브랜드는 이 지역 안에서,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고산리 거리의 작은 가게
한편, 장사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가게, 공연하는 공간을 꿈꾸는 옷 가게 사장님, 연극판에서 일하다 목공을 시작한 예술가, 서울의 책방 직원에서 제주 책방지기로 변신한 이, IT업계에서 일하다 농사를 택한 젊은 농부 등, 모두 7명의 소상공인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개월 동안 강의와 컨설팅을 통해 각자가 진짜 하고 싶은 일,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 이 지역을 선택한 이유를 함께 들여다봤다. 백여 개의 질문을 주고받으며, 왜 이곳에서 살아가려 하는지를 함께 물었다. 그리고 충분한 고민 끝에 그들의 생각을 브랜드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다.
그 모든 과정을 담은 결과물이 <로컬매거진 한경Xsarm>이다. 해녀 삼춘, 한경면장님을 비롯한 이웃들의 이야기와 함께, 각 가게의 브랜드 정체성도 담겼다. 완성된 매거진은 언론에도 배포되어 '지역의 작은 가게가 곧 지역의 정체성이자 브랜드가 될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알렸다.
2019년 겨울,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조촐한 출판 기념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약 1년 동안, 동네의 작은 책방에서 이 매거진은 베스트셀러 1위였다.
우리 삶이 예술이며, 터전이 무대라는 것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그때의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동네에서 알게 된 사진작가에게 매거진 사진 촬영을 의뢰하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처음 만든 매거진은 종이 한 장에 불과하지만, 이게 언젠가 책이 되고 삶의 기록이 될 거라고 믿었어요." 그는 그 약속을 믿고 마지막까지 함께했고, 나중에 진짜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된 매거진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는 점차 깨달았다. 무언가를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힘은, 로컬과 사람들 사이에 있는 아주 단순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사람과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믿고 손을 내밀어주는 이들의 존재. 그렇게 생각하고 둘러보면, 모든 지역에는 그곳만의 콘텐츠가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 이야기로 엮는 일이야말로, 지역이 자기 목소리를 갖게 되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머문 한경면 고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 곳이었다. 이곳엔 연주를 듣거나 공연을 볼 수 있는 장소가 없었다. 문화는 늘 '밖에서' 찾아야만 했다. 밤 9시가 되면 상점 불이 모두 꺼지는 거리, 그 한가운데 아주 작은 펍이 생겼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이 공간은, 시골의 밤이 지겹거나 외로울 때 종종 맥주 한 잔을 마시러 들르던 곳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옆자리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말을 트게 되는, 도시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친밀함이 있는 곳이었다.
언젠가 이곳을 무대로 이야기들을 펼쳐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마음에 맴돌았다. 그래서 펍 사장님께 조심스레 전했고 우리는 '제주문화예술재단'의 다원예술 분야 공모에 지원하기로 했다. 사실 사장님은 이미 비슷한 공모에 한 차례 떨어진 적이 있었다. 공연 장소가 '펍'이라는 이유만으로 다시 고배를 마실 가능성도 컸다. 반면 삼춘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위해 만든 '협동조합'은 자격 조건은 갖췄지만, 공연을 올릴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두 곳의 이름을 함께 넣기로 했다. 하나는 무대가 되고, 하나는 주체가 되는 방식으로.
삼춘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때 썼던 기획서를 다시 꺼내 들고, 그 안에 담았던 아이디어들을 총망라해서 정리했다. 그중 지역 사람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포함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이게 진짜 이뤄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이 아이디어를 함께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