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BIS 뉴스레터 19호 커버스토리]
지방소멸의 원인은 떠나는 청년이 아닌, 청년이 살 수 없는 환경
권기효
사회적 협동조합 menTory 멘토리 이사장
전)연세대학교 해부학교실 연구원 / (사)아름다운배움 대외협력팀장
현)경북 의성군 창업허브센터 컨설팅 총괄/ 세경대학교 자문위원
목차
1. 외부 청년 유입에 혈안이 된 지자체
2. 지역엔 미래세대가 남을 수 없다
2-1: 대학을 목표로 모두 떠나보내기
2-2: 지역에 남은건 패배자라는 인식
3. 지역에 필요한건 유능한 스타가 아닌 보통의 청년들
가속화되는 청년인구의 유출과 '지역소멸위험지수'가 발표된 이후로 지방의 소도시들은 청년들을 유입시키는 일에 혈안이 되어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책과 방향은 '외부의 유능한 청년'을 데려와 '정착'시키려고 많은 예산과 노력을 쏟고 있다. 하지만 지역에 청년이 '제로'가 아닌데, 여전히 지역의 청년이 될 청소년의 숫자는 3자리수 이상인데, 지역이 힘을 쏟아야하는 부분은 외부 청년을 데려오는 것이 아닌, 지역의 청소년을 키워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1. 외부 청년 유입에 혈안이 되어있는 지역들
우리나라 226개 시군구 중 ‘청년’을 마다하는 곳은 없다. 특히 농산어촌으로 분류되는 100여개의 소도시들은 더욱 절실하다 말한다 하지만 그 중 단 한곳도 지역의 청년을 키워내기 위한 장기 비전이나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오로지 유능한 외부 청년이 와주길 바라고 있다.
1.1 외부 청년만을 위한 다양한 지원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는 기간에도 지역은 외부청년의 유입만은 멈추지 않았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지역살이는 강화에서 부터 제주까지 강릉에서 부터 남해까지 내륙과 섬 모두에서, 2주에서 길게는 100일에 이르기까지 진행되며, 참여하는 청년들이 “지역을 알아가고, 해보고 싶은 일들을 찾아보고, 또래간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은 지역의 청년들에게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홍보도 하지 않고, 참여를 독려하지도 않는다. 바로 옆동네에서 지원한 청년이 지원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우리 동네에는 저희 부모님이 사셔서 여기에 지원했습니다”. 모두가 웃으며 넘어갔지만 이 이유는 지역에서 청년이 머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지역살이보다 더 크게 쳥년들의 실험을 지원하는 ‘창업지원’사업은 아예 지역 청년과 외부청년을 구분해서 지원하고 있다. 지역별 조례에 따라 19세~49세까지를 대상으로 주거(공동주택,기숙사,리모델링 등)와 독립된 사무공간, 창업자금을 1년~3년간 지원한다. 외부 청년들에게 돌아가는 창업자금은 3천만원에서 1억까지의 규모지만, 지역주민인 청년들을 위한 주민공모사업은 1~2천 규모로, 할 수 있는 일에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런 매력적인 프로그램은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외부 청년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우리 지역에 주민등록을 둔 창업자의 경우 타 시,군 청년을 50% 이상 팀 내에 포함시켜야 참여 가능” 이라는 제약을 걸어두고 있다.
이런상황이 지속되다보니 지역 청년과 외부 청년의 갈등도 시작되고 있다.
1.2 외부 청년만을 위한 다양환 도전의 기회
지원의 차별성 만큼이나 지역의 청년들과 외부 청년들이 할 수 있는 도전의 폭은 다르다. 창업을 비롯한 청년들을 필요로 하는 일들에 있어, 외부 청년들에게는 ICT기술, 4차산업, 관광 등 다양한 부문과 유형의 창업을 장려하지만, 지역의 청년들에겐 1차 산업과 관련한 직무교육이나 지원정도에 그친다. 각각의 예산 규모는 비슷하지만 수혜자의 숫자는 크게 차이난다. 이유는 4-H나 JCI등 기성세대화 한 지역의 청년단체들과 기존 산업들의 영향력이 크다보니 일부에게만 지원이 몰리고, 다양한 도전을 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원래 거주해온 청년들이라고 해서 먹고 살 방법에 대한 고민이 없을 리 없으며 미래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돼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지역살이 프로그램들이 주로 외부 청년을 중심으로 선발한다고 해서 선발시 거주지 제한을 두지는 않는다. 그러나 외부 이주 청년들에게 맞춤형으로 제공되는 프로그램 성격 때문에 원주민들이 참여하는 건 쉽지 않다. 방식이 이들에게 맞지 않으니 그에 대한 관심도 적을 수밖에 없다.
공무원들에게 제도 시정을 물으니, 현행 제도 운영에 형평성 문제와 지역 내 부정수급의 사례 등 어려움을 토로한다. 하지만 이들의 속내 저편엔 ‘동네 청년에게 줘봐야 성과를 내겠어?’ 하는 편견이 숨어 있음을 느낀다.
이들에게 역으로 묻고 싶다. 그럼 현 제도 운영으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가? 지역 청년들의 자립을 위해서도 부모의 소득 규모, 주소지의 위치와 관계없이 주거, 창업, 살이 등 똑같이 독립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게 맞다.
청년들이 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식들과 싸워야 한다. 외부의 청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지역에 녹아들어가기 위해 ‘외부인’이라는 인식과 싸우기 위한 힘을 기르는 것이라면, 지역 청년들은 지역에 남게 된 ‘패배자’라는 인식에 맞닥뜨리게 된다.
마을 공동체가 청년들에겐 오히려 정착과 도전을 가로막는 인식의 벽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선은 공동체성이 강한 마을과 가족 친구에게서 잠시 떨어져 숨을 고르며 지역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분리’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지역을 더 알아가는 것도, 실험과 도전도 여의치 않다. 일부 지역 유지 자제들을 제외한다면, 남은 청년들에겐 “대학 진학도, 취업도 못했다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지역 청년은 그 편견에 당당히 맞서는 일만 해도 버겁다.
2. 지역엔 미래세대가 남을 수 없다.
우리는 지역의 문제를 청년이 떠나서가 아닌, 이처럼 지역의 청년이 머물 수 없는 것을 원인으로 삼고, 지역의 청소년을 성장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솔루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약10년간 지역의 청소년들과 다양한 도전을 해오고 있지만 지역에 미래세대들이 정착하기란 쉽지 않아보였다.
전남 고흥에서 만난 한 친구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순천, 광주, 서울로 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 친구는 많은 이들의 응원 속에 ‘지역 인재’라는 칭송을 받으며 도시로 떠났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도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 이 친구를 바라보는 지역의 시각은 ‘지역을 등진 괘씸한 청년’으로 바뀌었다. 지역 소멸의 지표에서도 이 친구는 고흥의 인재에서, 위기를 가속화시킨 한 사람이 되었다.
아래 그림은 사회적협동조합 멘토리가 농산어촌 중학교 2학년 3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농산어촌과 도시에 대한 청소년들의 인식이 확연히 대비된다. 이 결과는 그간 어른들이 만든 지역에 대한 이미지가 반영된 결과다.
(멘토리 청소년 크루 315명, 2020)
강화에서 만난 친구들과 ‘지역 소멸’에 대해 긴 시간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생각은 이랬다. “잘 모르겠어요. 이런 문제는 전 국민이 모두 고민해야 하는 문제 같아요. 여기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것 아닐까요?”
농산어촌의 청소년들과 나눈 경험이 쌓여가면서 지역에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지역 청년들이 고향을 떠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불편을 느끼게 됐다. 농산어촌의 청소년들은 지역의 삶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지만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해 지역의 누구도 함께 고민해주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자연스럽게 기회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 소멸의 원인을 청년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청소년과 청년들을 떠나보내고 있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 해결책을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2.1 대학을 목표로 모두 떠나보내기
우리는 지역이 청년을 위한 투자의 핵심을 청년들을 위한 창업지원이나 정착지원이 아닌,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보통 지역에서는 ‘장학제도’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청소년, 청년들의 이탈이 문제라는 소멸 위험 지역 모두가 장학제도를 통해 지자체의 돈을 쏟아 부어서 청년들을 외부로 떠나보내고 있다.
(강원,경북,경남,전남 13개 군 장학제도, 멘토리 2020)
현재 지역의 장학제도는 대부분 공부 잘하는 청소년, 청년들을 선정해 좋은 대학에 보내주는 것이다. 중학생부터 뽑혀 지역인재가 되면 해외연수, 학습지도 등 도시와 견줘도 부족하지 않을 혜택을 받으며 서울의 명문대에 입학해 지역을 떠난다. 대학을 졸업하면 대기업에 취업하고, 도시에서 가정을 꾸려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잘못된 방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아이 기르기 좋은 도시를 표방하며 다양한 저출산대책으로 대통령,국무총리상을 받은 화천군의 경우, 화천 주민의 자녀가 대학을 갈 경우, 뉴욕 대학을 가던, 서울 대학을 가던 전액 등록금을 지급한다. 지역을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 이 장학금을 받은 청년들이 화천에서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장학기금은 지역에서 살아갈 청소년들에게 써야 한다. 공부가 재능인 친구들은 대학에 가고, 다른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재능을 살려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정책에 장학금을 써야 한다. 불합리한 장학제도를 고쳐보려고 나섰다가 장학생들의 엄청난 반발을 산 적이 있다. 이미 작은 기득권이 생긴 이 기금은 외부에서 풀어낼 수 없다. 진심으로 청년들이 필요하다면 장학기금의 운용부터 바꿔야 한다.
2.2 지역에 남으면 패배자라는 인식
지역의 청소년들이 지역의 청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하지만 기성세대들은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단순하게 일자리로만 매칭시킨다. 얼마 전 광주에서 만난 친구들과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광주형 일자리가 주제로 나왔다. 결론은 “참여하기 싫다”였다. 이유는 박봉이 아니라 제조업이 매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단편적인 사례에 불과하지만 청년들이 지역의 전통적인 일자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거철이 되면서 많은 후보들이 지역 일자리 정책을 내세우지만 여전히 제조업 중심 일자리에 불과하다. 지역에 일자리가 없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다양한, 양질의 일자리가 없을 뿐이다. 우리는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새롭게 상상하고 정의해야 하며, 이 중심에는 지역의 청년들이 있어야 한다.
공장 유치했으니까 지역에서 일해, 인건비 줄 테니까 지역 기업에서 일해, 3천만 원 줄 테니까 지역에서 창업해,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모든 것을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고 청년들은 그저 따라야 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지역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누구도 내놓을 수 없다면 그 답을 찾기 위해 당사자들과 기획 단계부터 함께해야 한다. 그렇게 지역은 청년들이 안심하고 도전할 수 있는 안전한 테스트베드가 돼야 한다.
“우리 동네에 자동차 공장이 들어선다면, 공장에서 일하는 수준으로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마 안 될 걸요. 여기 남아서 공장에서 일한다고 하면 제일 먼저 저희 부모님이 화를 내실 테니까요.”
“우리 동네에서 군청, 공기업, 공기업 하청 이 안에 들어가지 못 하면 사람 취급을 못 받아요. 동네 사람들이 ‘누구는 어디 취업(입학)했던데 너는 어디 갔니’라고 묻는데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까 그냥 도망치고 싶었어요.”
단순하게 청소년은 대학을 가기 위해, 청년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지역을 떠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아주 사소해보이지만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지역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인식’이다.
지역의 어른들은 청소년은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야 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번듯한 곳에 취업을 해야 하고, 결혼 적령기가 되면 가정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학에 갔는지, 취업을 했는지, 결혼을 했는지를 너무나 당연하게 묻는다. 그 한마디가 당사자들에게는 비수로 꽂히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심정을 지역 공동체분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아니, 이제 애들한테 말할 때도 눈치를 봐야 하네”라며 오히려 화를 냈다. 존중이라는 것은 나이가 많고 적음이 상관없고, 존중의 방식은 시대에 맞춰서 변화해야 한다. 지역의 청소년, 청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이런 사소한 배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3. 지역에 필요한건 유능한 스타가 아닌 보통의 청년들
지역 청년에 투자하는 ‘인내자본’이 필요하다.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온 외부 청년들이라면 당장의 역량 면에서 지역 청년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 내 생존의 문제를 놓고 본다면 지역의 현실과 삶의 환경을 속속들이 아는 지역 청년들의 강점도 적지 않다.
외부 청년들과 똑같은 지원을 한다고 하더라도, 외부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청년과 비교하면 자질은 차이가 없지만 당장 역량의 차이는 발생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자원을 가장 잘 알고, 활용 할 수 있는 경험과 역량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의 강점이 되어야 한다.
지역 청년들에게는 주로 지역이 보유한 산업과 관련한 전문 혹은 직무교육비, 역량강화비 등 지원이 이뤄져왔다. 그런데 바로 이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농촌이니까 농업, 공장이 있으니까 기술, 이렇게 단순한 스킬을 교육하는 과정이 아니라 창의적인 시각과 도전을 할 수 있는 실험 정신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요한 건 ‘실행과 경험’이다.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지원 대상을 청년에서 청소년으로 낮추고, 강의 수강/현장 견학식의 방식도 프로젝트 실행/외부와의 협업으로 바꿔야 한다. 몇 명을 교육했는지 숫자만 따질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는지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지원사업 평가 지표가 바뀌어야 한다.
이 같은 지원이 효과를 내기 위해 당장 정책의 효과에 집착하는 대신 긴 안목을 갖고 기다려주는 ‘인내자본’이 투입되어야 한다. 지역의 교육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예산의 산출 기대효과는 실제 높지 않다. ‘눈먼 돈’으로 바라볼 여지가 있지만 오히려 그러기에 새로운 정책 근거나 예산 투입 없이도 정책 변화를 꾀해볼 여지가 있다.
3.1 진짜 로컬크리에이터는 공모가 아닌 키워내는 것이다
지방의 작은 도시일수록 혁신 창업가, 이른바 로컬 크리에이터에 대한 갈망이 크다. 행정가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을 멋진 청년 창업 사례를 찾아 유치하려 애를 쓴다. 그런데 정작 멘토리가 꼽는 지역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역의 현실, 즉 지역 청년들이 뿌리박고 있는 ‘보통의 삶’이다.
예를 들어 보자. 지역 공동체의 일부분이었던 방앗간, 목욕탕, 세탁소, 전파사, 철물점, 구멍가게, 또 문방구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지역 청년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곳들이다. 지역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이고, 당장 문을 닫아야 할 만큼 수익성이 낮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받아 운영할 사람이 없기에 문을 닫는 것이다. 그렇게 남은 빈 가게를 외부의 로컬 크리에이터 청년들이 들어와 채운다. 그들이 만든 예쁜 카페와 식당의 성공 사례가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지역 경제에 뿌리내리는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부모님이 30년 간 운영해오던 세탁소 일을 이어받을 지 고민에 놓이게 된 청년 D. 벌이 자체는 나쁘지 않다. “성년이 되어 부모님이 하던 세탁소를 그냥 물려받는다고 생각하니 끔찍해요.” 답답함을 토로하는 그와 함께 서울의 이태원을 찾았다. 현재 이태원의 핫플레이스중 하나가 바로 청년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세탁소다.
원래부터 세탁소와 같은 공간은 속속들이 서로의 사정을 알고 나누는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해왔다. 그걸 모를 리 없으나 대도시에서 성공 사례를 확인한 뒤에야 용기를 낸 것이다. 그는 주간에는 부모님과 함께 세탁소를 운영하지만 야간에는 세탁물 건조 공간을 개조해 청년들을 위한 바를 운영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지역 현실에 뿌리내린 변화는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지역의 환경과 조건이 서울과 같을 수 없다. 똑같은 대도시 문화 이식이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이다. 목욕탕과 정미소, 철물점 공간이 천편일률적으로 카페로 변신하는 게 올바른 처방일 수 없다.
지역의 특색과 삶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터전 위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지역에 뿌리를 갖는 청년들이 그들의 삶을 기반으로 변화와 미래를 꿈꿀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귀농과 로컬 크리에이터의 성공적 이식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믿는다.
4. 사람을 키워내는 도시로의 전환
지금까지 정책 방향은 어떻게 외부 청년을 지역에 내려오게 할까에 집중돼왔다. 그 방향을 바꿔야 한다. 지역은 물론, 외부에서 들어온 청년들에게도 다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있다.
현지의 청년들은 미래가 없다며 너나 할 것 없이 도시로 떠나는 곳,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 외부 청년들의 유입이 주소 이전으로 이어지지 않는 곳에서 과연 소멸의 어두운 미래를 깨뜨릴 비전과 동력을 찾을 수 있을까?
신기술, 신문화로 무장한 도시 청년들에게 지역은 ‘로컬’이며 도전과 기회의 땅일 수 있다. 정작 지역에서 나고 자란 청소년, 청년들에게 지역은 스스로를 작아지게 만드는 현실의 땅이며, 벗어나고픈 ‘촌동네’로 인식된다.
우리 지역에서 나고 자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지역에서 해보고 싶은 일에 마음껏 도전하며 떠나려고 하지 않거나, 떠났다 돌아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는다면, 행복해지고 싶은 외부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우리 지역의 청년이 되고 싶다며 들어오려고 하지 않을까?
4.1 청년들을 위한 제대로 된 지원체계 구축
“청년이란 만 19세이상 만 34세 이하인 사람을 말한다.”
최근 제정된 청년기본법에 규정된 청년의 정의다. 하지만 열악한 현실의 작은 도시들은 조례를 통해 청년의 범위를 49세까지 확장하기도 한다. 법과 행정이 바라보는 청년의 정의부터 갈짓자인 것이다. 나이만으로 규정하는 관점부터가 가볍고 낡았다.
(멘토리 네트워크 93명, 2020)
지역 정착을 고민하는 청년 93명에게 ‘지역에 내려가 살게 되면 어떤 정책/지원이 필요한가요?’라는 질문을 했다. 20~30대를 연령 시기별로 6개 그룹으로 분류해보면 각각 필요로 하는 지원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청년이라는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연령대와 성별, 환경 등으로 세분화해 촘촘히 설계한 맞춤형 정책이 아니면 안 된다.
청년 포럼, 청년 참여 네트워크, 청년 위원회, 청년 센터 등에 이르기까지 ‘청년’을 붙인 보여주기식 사업이 넘쳐나지만 실상 시급히 필요한 건 청년과 관련한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창구를 만드는 일이다. 마음 바쁜 청년들은 여성가족과와 복지지원과, 지역경제과, 주민공동체과, 인구정책과 등 연관 부서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관련 업무에 대한 어려운 퍼즐을 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청년 업무의 사령탑이 생긴다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산개한 청년 정책들을 끌어모으는 일이다. 지자체의 외부청년 지원 사업이나 중앙정부 사업들은 당사자들에게 대대적인 홍보가 이뤄지는 반면, 지역 청년들은 지역에 어떤 정책이 있는지, 누구의 얘기를 들어봐야 하는지조차 막막한 것이 현실이다.
작게는 유명무실한 홈페이지를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개편하는 일, 중구난방인 정책들을 하나의 창구로 통합시키는 일이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지역의 미래는 결국 타지에서 이주한 청년이 아니라 그 지역의 청년에게 있다. 이들에게 당장의 지역 산업들을 지켜내라는 요구가 아닌, 지역에서 보통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새로운 모험을 시도해볼 수 있도록 응원하는, 우리 지역 청년에 대한 기대와 신뢰에 바탕을 둔 정책이 필요하다.
권기효
사회적 협동조합 menTory 멘토리 이사장
전)연세대학교 해부학교실 연구원 / (사)아름다운배움 대외협력팀장
현)경북 의성군 창업허브센터 컨설팅 총괄/ 세경대학교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