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ABIS 뉴스레터 2022-15호 ]
환대의 문화도시
유승호
강원대학교 영상문화학과 교수
지방이 소멸하고 있다. 수많은 대책들이 있어 왔지만, 예외 없이 모두 소멸의 길로 가고 있다. 반전을 꾀할 수 있는 묘수는 없는 듯하다. 지난 50여 년간 지역발전에 성공한 곳은, 즉 일자리가 창출되고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지역으로 성공한 곳은 서울 강남과 경기도 신도시뿐이다. 이들 ‘성장한 지역’을 보면 어떻게 해야 지역이 발전하는가는 명확하다. 이들 지역은 공공적 자원, 인프라적 자원, 교육적 자원, 문화적 자원의 대규모 투자라는 ‘탑다운 빅푸쉬 정책’으로 놀라운 성장을 했다. 반면 그 이후는 이렇다 할 예가 없다. 공공 자원을 쏟아부었던 혁신도시조차도 그러지 못했다. 빅푸쉬라고 할만한 것도 없었고, 있었다 해도 영역과 지역이 한정되거나 분산되었다. 이제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탑다운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빅푸쉬 정책은 기대조차 어렵다.
그래서 새로운 대안으로 거버넌스가 등장했다. 지역주민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취지다. 소통과 합의를 전제로 지역주민과 조직들이 주체가 되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발전의 동력이 되자는 상향식 발전전략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문화도시 정책이 그러한 거버넌스적 지역발전의 대표적 사업으로 나섰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의 사업으로 주민들 사이의 연대가 강화되는 효과를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소멸의 경향은 꺾일 조짐이 없다.
그래서 이제 다른 시각들이 생겨나고 있다. 지역주민들끼리의 소통과 연대로부터 지역 외부의 사람들에게로 시각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관계인구, 생활인구 등의 개념으로 외지인들, 이방인들을 환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움트기 시작했다. 외지인들을 관광객으로만 취급하고 우리 지역에서 돈이나 쓰고 가는 사람들로 보는 시각이 아니라 우리 지역과 연결되어 지식과 정보 그리고 경험과 체험을 공유하는 ‘관계인구’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문화도시 정책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외지인은 지역과 네트워킹하고 또 지역에 체류도 하며 지식을 순환시키는 핵심 인력으로 포용되기 시작했다. 워케이션부터 메타버스까지 외부인과의 지속적 네트워크를 위한 새로운 사업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개방성과 관용성이라는 환대의 인프라가 현대의 경쟁력 있는 도시가 갖춰야 할 핵심 요소로 부각된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우리가 이를 오랫동안 외면해왔을 뿐이다. 지방이 가진 그나마 작은 파이를 외부인들과 나누는 것을 꺼리는 제로섬적 사고에 갇혀있었고, 지식과 경험의 순환을 통한 ‘창조의 퍼서티브섬’은 없었다.
리차드 플로리다가 오래전 창조도시론에서 지적했듯이, 개방성과 창의성을 갖춘 새로운 창조계급은 도시 성장의 핵심이다. 물론 플로리다의 외재적 도시발전론은 내재적 발전론자들로부터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오히려 그의 주장은 그가 유망한 창조도시로 꼽았던 시애틀, 포틀랜드, 오스틴 등이 세계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도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하면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개방성과 이동성이 높은 창의적인 인구 집단이 도시 성장의 원동력으로서 지역 발전을 견인해 온 것이 확인된 것이다. 고급 지식과 기술력, 그리고 체험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집단이 포용성과 개방성을 상징하는 문화적 인프라(문화적 매력도)가 풍부한 도시들을 선택했고 그런 도시들이 지속적인 성장을 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서구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문화자본을 갖춘 고급 인력들이 폐쇄적 성향보다는 개방적이고 경험 지향적인 옴니보어(omnivore)적 속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으며, 이들은 다양성과 개방성을 특징으로 하는 대도시 및 수도권 지역에 비중 있게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석승혜 외, 2019). 지역의 여가 및 문화자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도권은 여가활동에 있어 ‘옴니보어적 동네’로 진화하고 있다. 반면, 이러한 옴니보어 인구 집단의 수도권 편중으로 다양성과 관용성의 지역별 격차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역사적으로 배타적이고 긴밀히 연계된 공동체가 유리하다고 생각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이론가들은 그런 긴밀한 연대가 오히려 손해라고 주장한다. 사회적 자본은 실제 두 가지 방향으로 모두 작용하며, 종종 그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소속감과 공동체를 강화시키는 반면, 그만큼 새로운 참여자를 막고 진입 장벽을 세우며 혁신을 지체시킬 수도 있다. 한 집단의 구성원을 도운 바로 그 강한 연대가 외부인을 배제하기 위해서도 작용한다.......그래서 사회 자본이 지역의 경제성장을 초래한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할 수 없다.(Florida, 2008:49)
사회적 자본이 갖는 끈끈한 유대성이 가져온 긍정적 결과보다는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 결과인 폐쇄성이 지역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제이콥스도 지적했지만, 도시의 발전은 세 영역의 어우러짐으로 달성된다. 그 지역에 거주하는 ‘거주자’와 그 지역에 거주하지 않지만 그 지역에서 생계를 꾸리는 ‘상인들’, 그리고 ‘방문객’이다. 제이콥스는 이들 세 부류들이 역동적으로 엮이는 이상적 도시모델로 ‘장인형 도시’를 구상했다. 즉 저마다의 탁월한 기술을 갖춘 작은 가게들이 거리마다 넘쳐나서 다양성을 역동하게 만드는 도시이다(남기범, 2014). 도시의 발전은 거대 자본과 거기에 봉직하는 봉급 노동자와 하층 계급으로 나뉜 불평등적 도시보다는 개방적이고 체험지향적인 새로운 계층, 즉 창조계급에 의해 도시의 발전이 이끌려진다. 창조계급은 제이콥스의 장인 계층에 상응한다. 제이콥스의 장인 계층에 의해 세 영역이 자유롭게 거리에서 엮이는 ‘인도의 발레 sidewalk’s ballet’가 발생하는 것처럼, 창조계급은 개방적인 체험성으로 도시의 새로운 중간층을 구성한다.
도시의 역동성을 불러일으키는 창조계급의 특징은 관용성이다. 구체적으로는 경험의 추구와 새로움에 대한 개방성이다. 정보혁명이 몰아친 1990년대 이후 나이키, 파타고니아, 벤앤제리 등 대안적 라이프스타일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개방성과 관용성을 중시하는 하위문화 기반 브랜드들이 부상했다(Holt, 2012). 이들 브랜드 모두 미국의 대도시보다는 관용성이 높은 중소도시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새로운 성장의 공식은 개방성과 관용성을 중심 가치에 두는 새로운 지식 엘리트층의 대두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 우리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개방성과 관용성의 지역별 격차가 더 커지고 있다. 취향소수자들은 관용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도권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방인과 주인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그 사회의 권력 관계에 따라 수시로 그어지는 경계가 만들어내는 구분이라고 생각해본다면, 경계에 대한 의식이 높고 많은 경계의 기준을 갖고 있을수록 끊임없이 중심과 주변의 위계화가 생겨나고 차별과 배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차별과 배제를 없앤다는 것은 이러한 경계의 조건을 낮추는 일이 될 것이다.
이제 문화도시에 이방인에 대한 포용, 외지인에 대한 환대라는 관계인구 개념이 확산되고 있다. 이를 위한 다양한 실험과 정책들이 시도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이제야 돌아 돌아 길을 제대로 들어섰다는 느낌이다. 지역이 선도적으로 다양한 문화와 가치를 공존시키고 서로의 경계와 문턱을 낮추는 실험을 실천한다면 지역에서부터 역동성이 생겨나고 결국 ‘지역들의 발레’로 창의적인 국가가 완성될 것이다.
유 승 호
강원대학교 영상문화학과 교수
현재 강원대학교 영상문화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사회학박사로,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한국정보화진흥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재직하였으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교수, USC 애넌버그스쿨 방문학자를 역임하였다.
최우수강의상, 학술연구성과 교육부장관표창 등 강의와 연구 관련 다수의 수상을 하였다.
저서로는 「문화도시」, 「취향의 경제」, 「서열중독」, 「아르티장」, 「스타벅스화」 등이 있다.
자료 출처 및 참고문헌
김남옥·유승호·김문조·장안식·석승혜(2017). 마이너리티 차별과 인정 갈등: 서울시 자치구 비교를 중심으로, 사회사상과 문화, 20(2), 209-25.
김진·강혜진(2019), 사회 자본과 사회적 관용:단체 참여와 유형별 소수자에 대한 관용의 관계, 한국정책학회보, 28(4), 111-144.
남기범(2014),창조도시 논의의 비판적 성찰과 과제,도시인문학연구, 6(1), 7-30.
원숙연(2017), 이주외국인과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관용’의 구조와 정책적 함의: 탐색적 비교연구. 한국행정학보, 51(3), 225-256.
유승호·박인영·장안식(2022), 한국인의 여가활동과 문화자본, 문화경제연구, 25, 105-131.
이곤수·송건섭(2007), 지방정부의 시민접촉에 대한 사회 자본의 영향, 한국행정학보, 41(1), 133-152.
이명진·최샛별·최유정(2010), 다문화사회와 외국인에 대한 사회적 거리, 조사연구, 11(1), 63-85.
조아현(2021), 옴니보어의 동네: 서울특별시 소재 레스토랑의 특징과 공간적 분포에 관한 연구, 서울도시연구, 22(2), 55-76.
신성희(2007), 도시창조지수 및 창조집단의 분포 특성으로 본 도시재생 전략의 방향, 서울연구원
김정혜(역), 컬트가 되라, 더글라스 홀트, 더글라스 캐머런(2012), 지식노마드
박조원 외(역), 문화경제의 창의성과 혁신, 앤디 프랫, 폴 제프컷(2010),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원호 외(역), 도시와 창조계급, 리차드 플로리다(2008), 푸른길.
임창호, 안건혁(역), 내일의 도시, 피터홀(2019), 한울아카데미
최종철(역), 구별짓기, 삐에르 부르디외(2005), 새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