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ABIS 뉴스레터 2023-2호 ]
사라져가는 것들이 만들어내는 지역의 가치, 터무니
이수경
충청대학교 교수
터무니 대표
목차
1. 사라져가는 것들
2. 공유문화로 하나 되는 따뜻한 세상
3. 지속가능한 지역의 가치, 터무니
1. 사라져가는 것들
길을 걸을 때면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과 언젠가 맡아본 듯한 냄새가 바삐 내딛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공부와 직장생활로 20대 초중반을 서울에서 보낸 나에게, 청주로 들어오는 고속버스 차창 밖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의 풍경은 고향 집 어머니가 두 팔 벌려 반기는 모습인 양 정겹고 푸근하였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정책으로 만들어진, 도시재생을 위한 곳곳의 움직임은 우리의 정겨운 추억도 파묻어버렸다. 과연 내가 머물던 고향이 이곳이었는지, 저곳이었는지도 모를 풍경을 자아내며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지역 발전, 노후화, 재생 이런 식의 문구들은 도시재생 어느 구역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작 우리는 재생이라는 이슈 속에서 정말 소멸시켜선 안 되는 중요한 것들에 대한 기억마저도 잊은 채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를 따라가기도 벅찬 사람들은 아날로그 감성을 지닌 옛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으로 복고에 빠져든 ‘레트로’나, 과거의 향수를 현재의 감성에 맞게 재해석한 ‘뉴트로’ 등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런 수요를 반영해 만들어진 공간은 명소로 떠올라 문전성시를 이룬다.
도시가 개발되면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공간과 함께한 추억은 건설이란 명목에 묻혀 더는 증명할 수 없는 옛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장소가 없어진다는 것의 의미가 때론 사람과 공간에 대한 존재감의 상실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방관한 채 목적에 따라 물건을 찍어내듯 공간을 부수고 새롭게 만들어낸다.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지역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그 지역만의 ‘~다운’ 정서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찍어낸 포장된 종이상자 속 역사책 같은 모습은 참 아쉬운 일이다.
2. 공유문화로 하나 되는 따뜻한 세상
터무니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수직의 사회구조와 계산적인 사람들에게 지쳐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맘 편히 열중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마음먹었을 때 제일 먼저 필요했던 건 공간이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원도심의 폐가를 잠들어있던 시간을 깨우기라도 하듯, 쓸고 닦고 매만져 놓고 보니 너무나 많은 우리네 부모님 시절의 이야기들이 그 속에 숨을 쉬고 있었다.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다는 듯, 터무니 안에 돌아다니는 티끌까지도 잘 버무려 공간에 담아놓았다.
독거어르신이 많이 사는 원도심은 저녁 8시가 넘으면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낡은 풍금을 하나 사서 어릴 적 배웠던 “고향의 봄”을 밤마다 온 마음을 담아 연주했다. 어르신들이 혼자 사시는 썰렁한 공간에서 홀로 내는 숨소리가 외롭지 않게, 어릴 적 기억하는 음악 소리가 익숙해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흥얼거림으로 채울 수 있길 바라며 동네 사람들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