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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이 총부리를 맞대고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한 마을에서 남쪽과 북쪽의 군인이 만난다. 마을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난 줄도 모른 채 양쪽 군인을 모두 반겨 주고, 이들의 환대 속에 남과 북이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이야기.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줄거리다. 영화처럼 그렇게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이 있을까? 경북 군위군 고로면에 동막골과 꼭 닮은 마을이 있다. 경관 개발로 산간 마을의 새로운 비전을 찾는 화산마을을 찾았다.
이런 곳에도 마을이 있을까. 화산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산길로 이어진 좁은 도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도 도무지 인적을 볼 수 없었던 까닭이다. 언제까지 올라가야 할까, 이러다 산 하나를 꼬박 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군위군 고로면 화북4리, 화산마을에 닿았다. 해발 800미터에 위치한 이 마을은 사방이 확 트여 있다. 서애 유성룡 선생이 화산의 아름다음을 칠언절구로 지어 바위에 새겨 놓았을 정도로 천혜의 경관을 품은 곳이 바로 화산마을이다.
“저 아래가 3리이고, 2리는 저쪽에 있습니다.”
마을 한쪽에 위치한 전망대에서는 산아래 이웃 마을들이 한 눈에 보인다. 화북리라는 이름을 같이 공유하고 있지만 너무 멀어 쉽게 오가지는 못한다. 주민의 이야기를 들으니 차량을 타고 올라온 그 길이 마을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란다. 고개를 넘어가는 중간에 마을이 생긴 것도 아니고, 특별한 생산물이 있어 마을이 형성된 것도 아니다. 막다른 산골에 마을이 형성되기까지는 우여곡절 어려운 일이 많았다.
화산마을 절반은 귀농귀촌 가구다. 마트나 슈퍼는커녕 구멍가게 하나 없고 택배도 오지 않는 곳이지만, 사람들은 아침 운무와 저녁노을에 매료당했단다.
마을의 역사는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의 산지 개간 정책에 따라 180여 가구가 집단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해발 800여 미터, 화산을 터전으로 삼았기에 화산마을이라 이름 지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을 주민이 직접 손으로 개간하여 마을의 기틀을 닦았다. 이주해 온 주민들은 모두 가진 것이 별로 없는 가난한 이들이었다. 산골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농사를 지어도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였다. 그나마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지급받은 임야가 그들이 가진 작은 희망이었다.
옛 화산마을 1962년, 정부의 개간 정책에 따라 180여 가구가 집단 이주해 형성된 화산마을. 화산이 있는 해발 800여 미터 터전에서 주민들은 허허벌판을 개간했다 . 모두 가진 것이 별로 없는 가난한 이들이었다. 당시 화산마을을 누빈 아이들이 한껏 멋을 부리며 카메라 앞에 섰다
희망도 잠시, 1968년 육군3사관학교 유격 훈련장이 들어서면서 많은 주민이 마을을 떠나야 했다. 고작 20가구 정도만 남아 마을의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활기가 넘치는 마 을 이 되 었 다 . 현 재 마 을 인구는 63가구 106명이다. 고작 100명이 조금 넘는 숫자이지만 마을 입장에서는 고무적인 변화다. 한때 마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까지 느꼈지만 지금은 걱정을 덜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귀농귀촌인구가 많다는 점이다. 27가구나 되니 마을 인구의 절반 정도가 귀농귀촌 가구인 셈이다. 마트나 슈퍼는커녕 구멍가게 하나 없는 마을, 택배도 오지 않는 이 마을을 거주지로 삼은 것은 어째서일까?
주민들은 마을의 아름다운 경관이 중요한 이유라고 입 모아 이야기한다. 높은 산꼭대기에 위치한 까닭에 아침저녁으로 여느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경관이 펼쳐진다. 아침이면 운무가, 저녁이면 노을이 장관이다. 구름과 바람, 그리고 산속 자연이 선물하는 여유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이 마을의 새로운 주민이 되었다.
지난 5년간 화산마을의 인구는 크게 증가했다. 인구 감소로 고민하는 여느 시골 마을과는 다른 풍경이다. 이는 귀농귀촌 가구의 증가세 때문이다. 2014년 17가구였던 귀농귀촌 가구가 2019년에는 27가구까지 늘었다. 새롭게 유입된 귀농귀촌 가구는 마을에 활기를 불어 넣었으며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고 왔다.
귀농귀촌 인구가 많은 농촌 마을의 경우 원주민과 새롭게 유입된 주민 간에 갈등을 겪는 일이 자주 있다. 일차적인 원인으로는 농촌의 생활 방식과 도시의 생활 방식이 서로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도 원주민들의 텃세, 이주민들의 무분별한 개발 등이 갈등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화산마을은 그런 갈등을 겪지 않았다. 일차적으로는 원주민이 귀농귀촌 주민의 유입을 크게 반겼기 때문이다. 마을의 존폐를 고민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주민의 유입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유입된 귀농귀촌 주민의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하여 마을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았다. 마을의 자연 경관을 자산으로 삼아 마을 관광지로서의 변화를 시도하게 된 데도 귀농귀촌 가구 주민의 역량이 큰 도움이 되었다.
“장에 나가려면 새벽부터 일어나 산을 내려갔습니다. 한참이나 산길을 내려가서 장에 나가 물건을 팔고 그 돈으로 이것저것 사오곤 했지요. 그때의 고생을 이야기하면 눈물 없이는 듣지 못합니다.”
이종은 이장의 말이다. 이종은 이장은 화산마을 정착민 1호 주민이다. 1962년 마을에 정착하던 그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세 칸 오두막에서 온 가족이 지내며 척박한 불모지를 개척했다. 젊은 시절 그 역시 여느 청년들처럼 도시로 떠났다. 산골의 삶이 지긋지긋하기도 했고.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했던 까닭이다. 서울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업가로 성공하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 2014년, 다시 화산마을로 돌아왔다.
원주민이기도 하고, 귀촌민이기도 한 이종은 이장은 화산마을에 돌아온 이후 마을의 미래를 설계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데 큰 힘을 쏟았다. 지금까지는 고랭지 채소를 주요 마을의 생산물로 삼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마을의 미래를 그리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FTA 등 경제환경 변화로 농산물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 고령화로 생산율까지 점점 저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머리를 맞대고 마을의 변화를 골몰했다. 부녀회가 주축이 되어 고랭지배추를 단순히 생산·판매하던 데서 벗어나 절임배추사업을 추진하였다. 농가에 새로운 소득을 가져다주었으며 주민이 어울려 함께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2018년에는 마을 주민 40여 명이 모여 군위군 제1호 예비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화산벌’을 설립했다. 산나물과 배추, 사과 등 마을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가공하고 유통까지 함께 진행하여 마을 소득을 크게 향상시켰다. 협동조합에서는 특히 고령자와 장애인을 다수 고용해 취약계층까지 아우르는 지역사회 공헌형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사회적경제 조직으로 헤쳐나가고 있다.
마을 공동급식이 여러 활동의 큰 거름이 되었다. 화산마을에서는 2015년부터 마을 공동급식 사업을 진행하여 매일 점심, 저녁 두 끼씩 주민이 함께 모여서 식사를 같이 한다. 마을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재료로 삼아 만들고 주민들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2020년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잠시 쉬고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고랭지배추 생산을 넘어 절임배추 사업을 하고, 주민이라면 누구나 점심과 저녁을 해결할 수 있는 공동급식을 시작했다. 원석과도 같은 경관을 인터넷에 자랑하며 관광산업도 고민 중이다.
함께 모이는 시간이 많으니 자연스레 주민들이 참여하는 활동도 늘어났다. 귀농귀촌 주민의 재능으로 다양한 활동이 구성되었다. 주민이 함께 마을 연극을 만들기도 하고 마을 이야기를 바탕으로 ‘화산 아리랑’이라는 마을 주제곡을 만들기도 했다. 블로그나 SNS를 하고 있는 주민들은 마을 풍경을 인터넷에 소개하기도 했다.
입소문을 타며 화산마을의 풍경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찾았다. 마을 경관을 마을의 자산으로 새롭게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람이 불고, 운무가 끼고, 해가 뜨고 지는 일은 마을 정착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늘 있었던 자연 풍경이었지만 귀농귀촌민의 아이디어를 통해 마을 경관이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 주민들은 마을 경관이 원석과도 같다고 표현한다. 이를 잘 다듬어 보석 같이 만드는 것이 화산마을 주민의 바람이다. 주민에게는 일상인 풍경이 누구에게는 치유와 힐링을 선물해 준다는 사실은 화산마을의 주민들에게는 반가운 선물이었다.
마을 전경 마을 주민들에게는 일상인 풍경들. 바람이 불고, 운무가 끼고, 해가 뜨고 지며 석양이 내리는 풍경들은 주민들에게 쉼을 선사했다. 다른 사람들과 이 쉼을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주민들 가슴이 설렌다.
최근 들어 화산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크게 늘었다. 2019년에는 약 8,500여 명이 방문하였다. 100명이 조금 넘는 마을의 주민 숫자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방문객이 마을을 찾은 셈이다. 인터넷을 통해 마을의 경관이 소개되고, 언론에도 보도가 되고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점점 방문객의 수가 늘었다. 주민들은 방문객의 편의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주차장을 정비하고 도로를 보수했다. 또한 확 트인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풍차전망대와 포토존을 설치해 두었다. 산골 마을의 풍경과 풍차전망대가 어우러진 모습은 이국적이면서도 소박한 멋을 자아낸다
구름과 바람, 넓게 트인 마을 풍경과 어울리는 경관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주민들은 해바라기를 심기로 했다. 마을 부지 3,000여 평을 주민들이 직접 고르고 다져 커다란 해바라기 꽃밭을 만들었다. 해바라기 모종도 주민들이 일일이 직접 손으로 심었다.
“여기가 꼭대기다보니 물을 끌어 쓰는 게 쉽지 않습니다. 주민들이 하나씩 모종을 심고 물을 주며 키웠어요. 커다란 해바라기가 꽃을 피우니 장관이었답니다. 올해도 가꿀 계획입니다.”
이종은 이장의 말이다. 2019년 7월 말 해바라기 잔치 한마당 축제를 벌였다. 주민들의 손으로 가꾼 해바라기 밭에 꽃이 핀 것을 기념으로 포토존을 만들고, 마을의 특산물을 시식하고 판매하는 부스를 만들었다. 2019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2020년에도 마을 경관을 가꾸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작은 마을에 방문객에 몰려들다 보니 작고 큰 문제도 여럿 있었다. 방문객의 차량으로 주차장이 부족하기도 하고, 많은 차량이 좁은 길에 오가는 바람에 교통 체증이라는 낯선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방문객들이 늘면서 쓰레기가 늘고 마을의 자연이 훼손되는 일이 가장 큰 문제였다. 방문객 숫자의 증가는 ‘습격’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주민들에게 버거운 사건이었다.
최근 SNS나 언론에 소개된 아름다운 마을을 탐방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일부 마을에서는 방문객이 급증하여 주민들이 생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한다. 일상을 영유하기도 힘들 정도로 스트레스가 커서 주민 스스로 마을의 경관을 파괴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례로 서울 낙산 이화 벽화마을이 그렇다. 벽화를 보러 오는 방문객이 너무 많아 생활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부 주민들은 래커로 벽화를 훼손하기도 했다. 일부 마을에서는 특정 요일을 정해 외부인의 방문을 제한하기도 한다. 화산마을 주민들의 선택은 어땠을까?
화산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미래를 위해 일단은 감내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을의 경관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 마을의 성장 동력으로 삼은 이상 방문객을 막을 수 없지 않느냐는 의견이다. 대신 주민들이 솔선하여 마을의 경관을 지키기로 하였다. 매월 첫째 주 월요일을 ‘화산마을 경관 가꾸기의 날’로 삼고 주민들이 함께 마을 경관을 보살피기로 했다. 주민들은 스스로를 경관활동가라고 생각한다
해바라기 밭 따스한 햇살을 바라는 해바라기 꽃 같은 마음을 모아 주민들은 해바라기 꽃밭을 만들었다. 가까이서도 멀리서도 노란 물결이 굽이치는 아름다운 산골이다.
주민들이 마을 본연의 가치를 지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아름다운 경관으로 관광지가 된 곳 가운데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매력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난개발로 인한 환경파괴, 지나친 상업시설의 범람 등으로 경관을 해치고 결과적으로는 방문객이 급감하기도 한다. 화산마을의 주민들은 이러한 가능성을 처음부터 막고자 마을 고유의 자연환경을 가능한 보전하고자 하고 있다.
화산마을 고유의 경관을 보전하면서도 방문객들을 맞아들일 수 있는 마을이 되는 것, 이 균형점을 어떻게 찾는가 하는 것이 현재 화산마을 주민의 고민이다. 이 고민을 담아 마을경관규약을 만들었다. 마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규약이라 강제성은 없지만 앞으로는 협약 수준으로 더욱 구체화할 예정이다. 또한 지속적으로 행정과 협력하여 난개발이나 지나친 상업화, 환경파괴와 같이 화산마을의 매력이 사라지는 일을 막고자 한다.
방문객 숫자가 마을 경제에 실제적인 이득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상업시설이나 숙박시설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방문객의 유입이 마을 주민의 실제적인 소득 증대로 잘 이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이 문제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고자 한다. 마을의 경관을 활용한 치유, 힐링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자연에서 나온 재료를 가지고 만드는 요리체험,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화산밥상’ 등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관광 상품을 개발할 예정이다.
2019년 농식품부 행복마을만들기 콘테스트에 나가서 경관·환경 분야에서 전국 1위, 금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마을 주민이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땀을 흘리며 함께 준비하고 열정을 쏟아 참여한 결과였다. 주민들은 이같은 일련의 경험으로 자부심과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현재 화산마을에서는 한때 존폐를 걱정하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주민들의 노력이 구체적인 성과와 변화를 이끌어 내었기 때문이다. 이런 성과와 변화를 거둔 것은 원주민과 귀농귀촌인 간의 협업, 마을 이장 및 청년과 부녀회 등 주민 조직의 적극적 참여도 있었지만 행정의 도움도 컸다. 마을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이를 개발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행정이 도와준 탓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어느 마을이든 고령층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의 순수한 역량만으로 마을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설사 마을에 관심이 많고 능력과 열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는 모르는 경우도 많다. 행정의 작은 관심과 도움이 생각보다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 스스로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주민이 마을 사업의 주체가 되지 않으면 사업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는 까닭이다. 관 주도사업은 언젠가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거두더라도 장기적인 마을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화산마을은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마을의 비전을 그리고 꾸준히 마을의 변화를 견인해 나가고자 한다. 역사로만 치면 여느 시골마을에 비해 턱없이 짧지만 주민들은 남부럽지 않은 마을, 다른 마을에 귀감이 될 수 있는 마을이 될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마을에 부는 바람은 치유의 바람, 공기는 휴식의 공기다. 솔바람길, 바람언덕길, 억새바람길만 걸어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군위군은 화산마을의 경관자원을 활용한 ‘웰빙체험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여러 연계 사업을 발굴·추진하여 마을의 지속 가능한 관광사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또한 ‘쾌적하고 즐거운 100세 건강 자연치유마을, 화산’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마을 주민들의 쾌적하고 즐거운 마을살이를 통해 100세 건강마을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다. 도시민 등 방문객들을 위한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운영하여 국민 모두에게 열린 ‘건강마을, 치유마을, 힐링마을’로 널리 알려지고자 한다.
주민들은 마을에 부는 바람이 휴식과 치유의 바람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을의 주요 장소를 잇는 둘레길을 만들어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화산마을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그래서 코스마다 바람 이름을 붙였다. 솔바람길, 바람언덕길, 억새바람길이다.
새벽 운무 화산마을에서는 나도 신선이다. 새벽 운무와 저녁노을에 가슴이 절로 트인다. 이곳에 사는 신선들은 마을 풍광을 잘 보존하며 동시에 잘 나누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화산 마을은 작은 산간 마을이지만 주민이 가지고 있는 열정과 역량은 여느 마을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주민 스스로 마을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쏟는 만큼 마을은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마을을 돌아보면 어느 집 마당 한쪽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을 볼 수 있었다. 100여 명 마을 주민이 모두 어르신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지레짐작일 뿐이었다. 이 아이들은 차를 타고 아랫동네 어린이집과 초등학교에 다닌단다. 화산마을에 자연과 어울리며 자라는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면 화산마을은 또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맑은 바람이 불고 아름다운 구름이 가득한 마을이지 않을까? 마을 주민이 자랑으로 삼는 아름다운 풍광이 그때도 소중한 자원으로 간직되기를 바라며 화산마을의 미래를 응원한다.
☞마을존폐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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