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군 팔영산의 8개 봉우리는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 변화무쌍한 점이 마치 고흥군의 여러 모습을 담고 있는 듯하다. 고흥군은 청정바다와 숲, 산과 다수의 관광명소까지 단조롭지 않은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고흥반도의 바다를 수놓은 섬들도 마찬가지다. 섬 전체가 하나의 공원 같은 소록도, 우주센터로 유명한 우주의 섬 나로도, 남해안의 수려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거금도 등 모두 저마다 다른 역사와 정취를 지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 매력을 직접 느끼고자 육지에서 바다를 건너 섬에 다다른다. 요즘은 전파를 타고 많은 섬들이 브라운관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존재가 된 것이다. 관광객들이 늘어나며 섬도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가 필요했다. 지금 고흥군에서는 섬에 사는 사람과 섬을 찾는 사람 모두를 위한 사업이 추진 중이다.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번 사업은 제3차 도서종합개발 10개년 계획에 근거한 것으로, 소득기반시설 확충을 통해 각 섬이 자립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2011년도의 사업내용은 득량도 관문어항 정비, 시산도 석금도로 정비, 하화도 추억의 섬 정비, 거금도 청석산림욕장 정비, 거금도 익금해수욕장 해안경관 조성사업, 거금도 오천종합수산물가공유통시설, 우도 가족의 섬 정비사업 등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사업의 대상은 고흥군 6개면 13개 도서인데, 작년에는 왜 유독 거금도에 집중 투자를 한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2011년 12월에 녹동과 거금도를 잇는 거금대교가 준공됐기 때문이다. 거금대교는 육지 사람들을 자연스레 섬으로 이끌었다. 고흥군은 거금대교 준공에 맞춰 이유 있는 투자를 감행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거금도 오천 종합수산물 가공유통시설’은 지역특산물인 미역과 다시마의 가공·유통을 범위를 확대시키고 판매를 촉진했다. 뿐만 아니라 100여 명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주민소득도 크게 증대했다. 1석2조의 효과를 본 미역가공공장의 사업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자.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국내에는 비상이 걸렸다. 한동안 절대 비를 맞으면 안 된다는 소문과 함께 미역이 방사능에 좋다는 근거 없는 말이 떠돌았다. 방사능에 효능이 있다는 말은 낭설이지만 그만큼 해조류가 우리 인체에 이롭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미역은 몸속의 노폐물을 제거하고 중금속 등을 흡착 배설하는 해독 작용을 하며, 다시마에는 멸치나 우유보다 더 많은 양의 칼슘이 함유되어 있다. 그야말로 바다에서 나는 최고의 건강식품인 셈이다.
거금도 오천지역의 주민들은 대부분이 미역 양식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섬 여기저기에서는 미역을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금도의 청정바다에서 나는 다시마와 미역은 녹갈색으로 윤기가 흐르고 두께가 두꺼워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하지만 상품화가 늦어져 브랜드 가치는 그리 높지 않았다. 국내 미역 총 생산량의 48%나 되는, 절반에 가까운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더 안타까운 실정이었다.
하지만 더 답답한 일은 따로 있었다. 주민들이 양식한 미역과 다시마는 공장이 부족해 가공할 방법이 없었다. 마땅한 판로도 개척하지 못해 미역 원초는 대부분 타 지역으로 팔려갔다. 원초가 다른 지역에서 제 값에 팔리는 것도 아니었다. 생미역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아무리 헐값을 불러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파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외상으로 가져가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며 부도가 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수산물 유통시설이 마을에 들어서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었다.
오천리는 동촌마을과 서촌마을로 이루어진 지역으로, 308가구 705명이 살고 있다. 이 중에서 3분의 2 정도가 미역 양식업에 종사하고 있다. 미역대금을 받지 못하는 경험을 겪고 난 뒤, 주민들은 옆 마을 명천지구의 미역가공공장을 눈여겨봤다. 명천마을은 2007년도에 이미 미역가공공장을 운영해 주민 소득이 크게 증대된 바 있었다. 이를 본 이병재 동촌이장과 김형남 서촌이장, 김용암 어촌계장과 박승남 추진위원장을 주축으로 사업이 계획됐다. 이들은 평생 동안 미역 양식업을 해왔으며, 사업이 끝난 후 은퇴해 현재는 아무런 직책이 없다. 앞으로 자신들과 똑같은 불이익을 당하는 누군가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업을 구상한 것이다. 직접 사업 계획을 세운 후 군에 건의를 했고, 군에서는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매년 원초가 타 지역으로 반출되는 상황이 군에서도 결코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마침내 오천 종합수산물 가공공장은 ‘제3차 도서종합개발사업’ 계획에 반영되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공사가 진행됐다. 총 사업비는 국비 2,324백만 원과 지방비 996백만 원으로, 총 3,320백만 원으로 추진됐다. 하지만 이중 토지매입비, 설계비, 감리비 등은 마을에서 자부담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그만큼 주민들에게는 수산물 유통시설이 절실했던 것이다. 그 절실함이 있었기 때문일까. 사업에 있어서 크게 장애가 되는 요소는 없었다. 주민들은 사업이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체계를 강화했다. 동·서촌의 주민대표와 추진위원회를 주축으로 여러 번 모임을 가졌다. 사업추진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을 강구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열의가 대단했던 만큼 사업진행 시 의견이 분분한 경우도 많았다. 대표적으로는 가공 범위에 대한 것이었다. 미역을 1차 가공인 염장과정만 거쳐서 판매를 하자는 의견과 2차 가공으로 포장까지 진행하자는 의견으로 나뉜 것이다. 하지만 고흥미역은 품질이 좋아 브랜드 가치가 충분했다. 결국 2차 가공 후 판매하는 것으로 의견이 좁혀졌다. 그 다음은 설치 기계에 관해서였다. 일부 주민들은 명천마을처럼 거대하고 본격적인 설비를 원했다. 명천마을의 미역가공공장은 폐교를 활용해서 만든 곳으로, 규모가 제법 커 상품의 대부분이 대기업에 납품되거나 수출용으로 쓰였다. 하지만 명천마을의 설비를 똑같이 갖추기엔 예산이 부족했다. 마을 주민들은 주어진 예산 안에서 금액, 성능, 유지·관리 등 모든 조건을 꼼꼼히 살펴보고 가장 적합한 것으로 결정했다. 착공이 되던 날에는 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기공식을 거행해 축제 분위기가 고조됐다고 한다. 이렇게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 속에 오천 종합수산물 가공유통공장은 무사히 사업이 진행될 수 있었다.

매년 오천지역에서 생산되는 미역의 양은 연간 5만 톤이다. 하지만 가공공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그중 2만 톤이 타 지역으로 팔려나갔다. 이번 사업으로 가공공장이 들어서며 오천지역 주민들은 5만 톤 전부를 자체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종전에는 20억이었던 주민소득도 50억으로 늘어났다. 또한 냉동건축창고 설치로 미역과 다시마의 원초 보관이 가능해져 일자리가 생겨났다. 공장이 지어지기 전에는 미역의 원초 생산시기가 끝나는 6월부터 사실상 농한기에 접어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일자리가 없어 소비활동만 하는 생활이 이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공장의 연중가동으로 약 100여 명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앞으로 오천지역은 일본 등 해외수출과 함께 전국 대도시에 내수 판매를 하기 위한 판로를 개척할 계획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현재 갖춰진 가공공장 설비도 미역생산량을 따라오지 못한다며 공장을 증설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고흥군은 향후 ‘미역가공공장 클러스터’를 구축해 군내에서 생산되는 미역을 모두 가공하여 판매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원초가 반출되는 것을 막고 주민 모두가 정당한 소득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고흥미역의 지명도를 높이고 부가가치를 증대하기 위해 앞으로도 지속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다.
오천지역 주민들은 박병종 군수를 ‘촌사람’이라고 부른다. 촌사람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이해해 준다는 것이다. 이런 일화도 있다. 한참 공장을 짓고 마무리에 들어갈 무렵과 미역·다시마 생산이 완료된 시기가 일치하게 됐다. 하지만 공장이 완벽하게 준공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해 미역은 전과 똑같은 형태로 판매될 형국이었다. 이에 박병종 군수는 건축물 임시사용승인허가를 받는 일이 있더라도 공장을 가동시킬 것을 당부했다. 주민들에게는 그해 소득이 달린 아주 중요한 일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순전히 자신들을 위한 일인 것을 알기에, 주민들은 더욱 박병종 군수를 신뢰했다. 앞에서 폼만 잡는 다른 군수들과는 다르다며 고흥을 위해 직접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세일즈맨’이라고도 한다.
박병종 군수는 “복지는 가족이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것이 아닌, 한 지역에 모여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국가에 부담을 주지 않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이 최고의 복지라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충분한 기반조성이 필요했고 오천 종합수산물 가공유통공장은 그에 딱 부합하는 사업이었다. 그는 기본만 투자해도 황금을 캐낼 수 있는 잠재력이 깃든 곳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군내에도 서로 다른 다양한 특색이 있으며 그걸 파악한 기초자료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2010년 말 고흥군 내 모든 농가의 경지면적, 경작품목, 상품가치, 소득 등을 샅샅이 조사한 것도 그 일환이다. 앞으로 그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지역에 맞는 사업을 발굴하고 안정적인 판로를 개척하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이라 한다. 지역경제 활성화의 기반을 탄탄히 다지고 그가 말했던 진정한 ‘복지’를 실천하기 위함이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땅. 얼핏 일렁이는 바다 위를 떠다니는 듯해도 섬은 늘 그 자리에 오롯이 서있다. 굽이치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아도, 섬은 육지 가까이로 오는 법이 없다. 어쩌면 사람이 섬을 찾는 것은 섬이 우리를 부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육지까지 연결하는 다리가 생기고 수시로 드나드는 배가 생기며 섬은 우리에게 가까운 존재가 됐다. 섬이 발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고흥군은 이를 놓치지 않고 섬의 발전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섬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기 위해 마을 곳곳을 수리하고, 안전을 위해 자연재해를 대비하는 설비들이 들어섰다. 문화복지시설도 빼놓을 수 없다. 육지에 비해 섬은 상대적으로 문화적 혜택이 적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앞으로도 고흥군의 섬들은 다양한 변화를 겪고 사람들과 더욱 친근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 변화는 섬을 찾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섬에서 떠나지 않을 사람들 모두가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섬이 제 발로 설 수 있는 밑바탕이 되어줄 것이다. 고흥의 수많은 섬들이 어떻게 발전해갈지 그 모습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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