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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농촌도 배워야 사는 시대가 됐다. 농민들을 위해 정부가 자원해서 농업마케팅을 배우기를 권고하기도 한다.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농업인의 의지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배움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 농업인 스스로가 농촌의 문제점을 생각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농업마케팅이자 역량강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강원도 횡성의 공근금계권역은 관광지가 될 만한 자연경관도, 특별한 특산품도 없는 일곱 개의 작은 마을들이 모인 지역이다. 권역에 사는 주민들은 하루하루 열심히 농사를 짓는 다른 농민들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새농어촌건설운동 등의 정부지원 사업을 유치하며 주민들의 인식은 달라졌다. ‘어떻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됐다. 주민들은 권역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발적으로 학습을 추진했으며, 우려 속에서도 투자를 감행해 소득사업을 실천했다. 지금 공근금계권역은 다른 마을들이 견학을 오는 선진지가 됐다. 평범한 일곱 마을이 어떻게 이런 발전을 이루게 되었는지, 지금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권역 사업의 핵심은 ‘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짰다 하더라도 각 마을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기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특히 공근금계권역은 주민들의 관심도가 높은 만큼 사업에 대한 요구사항도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이를 원만하게 수습하고 중재하는 이가 있다. 바로 권순근 공근금계권역 추진위원장이다. 그는 태어나고 자란 고향 공근리에서 2004년부터 이장을 맡으며 사업의 첫 단계부터 참여한 사람이다. 공근금계권역의 사업을 위해 일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8년이 됐다.
각기 다른 마을의 요구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정책 사업을 유치하고, 그 과정에서 마을 간의 이해관계를 중재하는 일. 그것이 추진위원장인 그가 하는 일이다. 말이 많을 수밖에 없는 권역사업을 이제껏 끌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 뭐냐고 물으니 ‘술’이라고 답한다. 사업회의를 마친 후 참여한 이들과 반드시 술을 마시며 친목을 다진다고 한다. 일종의 소통의 시간인 셈이다. 술을 마시며 동네 이장들과 사업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마을의 요구사항과 주민들의 피드백을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권역사업은 이장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한 사업이다. 이장이야말로 마을의 사정과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업을 8년이나 진행하다보니 이장이 바뀌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그때 전 이장이 현 이장에게 인수인계를 잘해야 사업도 차질 없이 계속 진행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사업이 진행되고 나서 그가 알게 된 이장은 총 23명. 권순근 위원장은 지금도 그들 모두와 계속 연락을 유지하며 연결고리를 끊어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올해에도 새로 취임한 이장들을 위해 제주도로 2박3일간 견학을 다녀왔다고 한다. 권역사업의 성공 여부는 ‘지속적인 소통’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처음 사업 계획 단계에서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계획을 몇 차례나 수정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행정과 마찰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시세를 보아 맞지 않으면 아이템을 바꾸는 일은 당연하다”며 행정을 설득했다. 그는 무엇보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며 학습과 그에 따른 의식변화를 강조한다. 정부주도의 사업은 사업기간이 끝난 후 행정이 손을 떼면 애물단지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민들의 자립의지를 행정이 체계적으로 지원해 주는 것, 그것이 권역 사업의 성공 열쇠라고 그는 말한다.
이제 마을 경영도 기업 방식으로!
또 한 명, 이 사업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김명웅 사무장이다. 권순근 위원장이 대외적인 일을 하며 마을 간의 연계에 힘을 쏟아 붓는다면, 그는 권역 안의 살림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권순근 위원장은 제대로 된 사무장이 있어야 권역이 순탄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고 대학기관에서 김명웅 사무장을 보고 그를 점찍었다. 그 후 위원장은 1년 동안 농촌관광대학을 다니며 그에게 공근금계권역의 사무장을 맡도록 권유했다.
횡성으로 오기 전에도 김명웅 사무장은 다른 지역의 사무장을 역임한 경험이 있었다. 거기에서 그는 정부의 무작정인 지원보다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지는 사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제의를 바로 수락한 것은 아니었다. 그즈음 다른 권역에서도 횡성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사무장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돈보다 자신을 정말 필요로 하는 곳을 원했다. 권순근 위원장의 끈질긴 설득에 정부지원사업을 제대로 수행해서 농촌지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해보자는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그의 가족은 모두 횡성으로 귀촌하게 됐다.
그 후 김명웅 사무장은 권역 내의 재정 관리를 도맡으며 회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독학으로 회계를 공부하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회계장부를 기록했다. 그는 “돈을 정확하게 맞추기 위함이 아닌, 통계를 위해 장부를 적는다”고 한다. 누룽지의 경우 주문량에 따라 재료가 얼만큼 필요한지, 그리고 미리 얼마의 양을 도정해놔야 하는지가 회계를 통해 나온다는 것이다. 통계는 경영을 훨씬 수월하게 만들었고 미래의 경영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됐다. 권역에 마을경영이 아닌 기업경영 방식을 도입시킨 것도 그다.
김명웅 사무장은 앞으로 권역 내에 있는 영농조합법인을 묶어 합자법인화를 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보통 농촌마을사업은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공근금계권역의 경우 권역 차원이 아닌 마을이 영농조합을 운영하고 있다. 각 마을마다 어울리는 사업 아이템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추진위원회는 사업성 검토 등 커다란 윤곽을 잡아주는 일만 했다. 수익분배 때문에 잡음이 많아 권역사업이 제대로 환기되지 않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명웅 사무장은 회사법인은 상법 기준을 받는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무한책임사원은 채권채무에 대해서 무한책임을, 유한책임사원은 자신이 출자한 지분만큼만 책임을 진다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영농조합법인은 출자금에 상관없이 1인1표가 돌아가기 때문에 사업 추진에 있어서 여러 갈등이 생기기 쉬웠다. 즉 자신이 일하고 투자한 만큼 책임과 수익분배가 돌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최대한 공평하게 주민들에게 수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그는 계속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권역사업의 선진지로 거듭나다
공근금계권역은 사업 초기부터 하나의 목표에 충실하게 달려왔다. 바로 친환경농업을 바탕으로 한 활기찬 농촌 만들기다. 친환경 농산물의 생산에 그치지 않고 2차 가공과 판로를 확보해 소득을 증대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였다. 마을이 활성화되어 확실한 기반을 다지면 도시 사람들이 자연스레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결과로 나타났다. 현재 공근금계권역의 인구수는 384가구 1,103명으로, 2007년 사업에 착수했을 당시와 비교해 16가구 28명이 증가한 것이다. 농촌의 위기가 닥치고 그 존폐여부마저 입에 오르고 있는 시점에 공근금계권역의 인구수 증가는 미미하지만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쯤 되자 다른 지역에서는 공근금계권역의 성공 요인을 궁금해 했다. 2011년만 해도 123단체, 2,400여 명이 권역을 방문했다. 권역사업의 선진지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놀라운 발전을 이룬 공근금계권역을 보고 횡성군은 주민 개개인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꼈다고 한다. 군 차원에서 사업을 추진했을 때, 마을의 역량과 주민들의 의식이 맞지 않으면 성공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다. 고석용 군수는 앞으로도 자립심이 강한 주민들에게 맞는 사업을 유치할 수 있도록 군에서도 리드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한다.
7개 마을이 따로 또 함께하며 발전해 온 공근금계권역은 현재 사업이 안정화된 단계에서도 고민이 많다. 홍보마케팅, 새로운 가공품 개발 및 판로 개척, 관리운영 기금 확보 등 지속적인 자립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계속 연구 중이기 때문이다. 무작정 베껴하기 식의 사업이 아닌 자신들의 역량에 맞는 사업을 찾아 달려온 공근금계권역. 앞으로도 쉬지 않을 그들의 진정한 성공 스토리는 이제부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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