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 집중화 전략으로, 머물고픈 매력만점 산청으로

    조회수 3793

    • “줄을 서시오.” 드라마 「허준」에서 감초 역할로 큰 웃음을 줬던 배우 임현식의 유명한 대사다. 이 대사는 그만큼 허준의 의술이 뛰어나 그의 진료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허준이 누구던가! 뛰어난 의술 하나로 박애를 실천한 민족의 ‘의성(醫聖)’이자, 신분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신화적 인물이 아니던가! 또한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의보감」의 저술자가 아닌가! 그런 그가 스승인 신의 류의태 선생과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의술을 펼친 곳이 있다. 바로 민족의 영산, 지리산의 품에 안겨 있는 산청이다.


      산청은 하늘이 내린 약초 고을이란 명성에 걸맞게 1,000여 종의 약재가 자생하는 한방약초자원의 본고장이다. 이곳은 허준을 비롯해,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의 첫 재배지이자 「마진편」을 저술한 유이태, 「진양신방」을 저술한 초삼·초객 형제 등 수많은 명의가 의술을 펼친 곳으로 예로부터 한방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이러한 역사적·지리적 유리한 입지 조건을 갖춘 산청은 2011년 6월, 경상남도와 함께 한방엑스포 개최지로 선정되며, 지난 4월 행정안전부로부터 지방재정 투·융자 중앙심사 승인을, 7월에는 기획재정부로부터 국제행사 개최 승인을 취득했다. 이로써 경상남도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공동 조직위원회를 출범하는 등 본격적인 엑스포 준비에 착수하고 있는 곳이 산청이다.

      하지만 이런 성장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산청하면 낙후된 오지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6년 전만 해도 그랬다. 이재근 군수가 처음 부임하고 났을 때 늘 듣던 이야기가 오죽하면 “거기 뭐가 있는데?”, “거기서 뭘 할 수 있는데”였다고 하겠는가! 당시 이 군수는 이런 결심을 했다고 한다. 절대 우리만 할 수 있는 것, 산청에서만 할 수 있는 것, 우리만의 주특기를 만들어 산청을 살리고 알리자.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한 사업이 어서권역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었다. 사업 초반만 해도 이곳은 농림식품부에서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들 정도로 낙후된 지역이었다. 그만큼 별 기대감도 없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 군수의 “내가 한번 해보겠다”는 열정과 열의 그리고 뒤에서 믿고 따라주는 사람들에 의해 어서권역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다른 지역의 모범 사례로 등극, 이곳을 벤치마킹하겠다며 그 전략과 노하우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제 산청군은 당당하게 외친다. “마을을 특화시키고 발전시킨 그 비결을 알고 싶다면 줄을 서시오, 줄을....”

      낙후 지역에 사업 지연까지 갈수록 태산
      산청군의 농촌종합개발사업은 사업 초기만 해도, 별다른 진전이 없어 농림부로부터 부진 지역으로 낙인 찍혔던 곳이었다. 중앙정부의 농림부 담당과장이 수시로 찾아와 한탄을 금치 못한 지역이기도 했다. 다른 지역에는 있는 추진위원회조차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지역주민의 참여의식 결여로 사업공감대 형성도 어려웠다. 서로 사업비에만 욕심을 내며 마을별 나눠먹기식 의식만 팽배해 있었다. 사업시행 초기라 해당 직무를 맡은 담당 공무원들도 본 사업에 대한 이해와 정보가 부족했다. 주민의 의견과 결정에 휘둘리기 일쑤였다. 자연스레 각 마을별로 사업비가 분산되고, 사업 계획도 분산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김일곤 농축산과 과장과 권영환 계장은 답답함을 느꼈다. 두 사람은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하고, 이 사업을 먼저 시작한 권역들을 찾아나섰다.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에 대한 이야기, 실패 속에서 터득한 조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김일곤 과장과 권영환 계장은 지금까지 추진해 온 방향이 잘못되었고, 다시 원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상태였다. 이미 부지 선정을 끝내고 지역 주민들과 구두 계약까지 마친 상황이었다. 갑작스런 사업 변경은 지역 주민과의 마찰과 갈등을 일으킬 것이 뻔했다.

      시설의 집중화를 위해 처음부터 다시
      당초 계획상, 주요 시설은 친환경농업교육관, 민물고기전시관, 물고기체험장, 체험농원 등으로 마을별로 분산·설치되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 과장과 권 계장은 선진 지역 견학을 통해, 권역사업의 성공과 지속적인 운영관리를 위해서는 시설의 집중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고, 곧 사업을 전면 수정했다. 도농교류센터를 중심으로 시설을 집중 배치하는 방향으로 사업이 변경된 결과였다. 시설의 집중화가 이뤄질 곳은 생초면으로, 산청에 있어 낙후 지역이기는 했지만 일단 주변 자원이 훌륭한 곳이었다. 국내의 대표적인 민물고기 식당가가 주변에 산재해 있을 정도로 낚시하기에도 관광하기에도 좋은 맑고 깨끗한 청정지역이었다. 또한 박항서 감독 등 축구계에 종사하는 출향인사가 많았던 곳이다보니 축구장이 설치돼 있어 관련 관계자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기 쉬운 곳이 생초면이었다.
      하지만 예상했던대로 기존 예정부지 주민의 반발이 거셌다. 주민 개개인이 나름대로 계획과 계산을 다 세웠던 상황이라, 그것을 포기한다는 게 사실상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이를 설득하고, 사업부지 변경과 관리계획을 재수립하는 데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었다. 가뜩이나 사업이 지연돼 농림부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산청이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김 과장과 권 계장은 단언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확실히 보여드리겠습니다.”

      단호한 추진력으로 주민들을 설득
      김일곤 과장과 권영환 계장이 시설의 집중화를 주장한 건, 사업이 완료된 후를 가장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도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으면 유령의 집이 되는 건 불보듯 뻔한 일. 특히 시설들이 각 마을로 분산돼 있을 경우, 체계적인 관리는 물론 인건비도 많이 들다보니 주민들의 부담도 클 터였다. 일단 시설의 집중화를 위해 주민들을 설득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행정 실무자들과 마을 주민 간의 이질감을 조율해줄 추진위원장이 필요했다. 지역에 대해 잘 알고 열정적으로 사업을 끌고 갈 인물이 절실했다. 이때 추천된 인물이 박정수 추진위원장이었다. 당시 마을 이장이었던 박 추진위원장은 처음에 극구 사양했다. 본 사업을 담당하고 있던 김일곤 과장과 오랜 친구였던 관계로 권역사업이 쉽지 않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는 그였다. 거의 반 강제적으로 떠맡듯이 추진위원장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에게 맡겨진 일은 시설 집중화의 필요성을 각 마을의 주민들에게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것이었다. 박 추진위원장은 먼저 각 마을 14명의 이장들을 불러모아 이를 이해시키는 데 주력했다. 다음으로 활동성 있는 젊은 사람들을 주축으로 추진위원회를 조직화 시켰다. 그리고나서 마을 주민들 설득에 나섰다. 김일곤 과장과 권영환 계장과 함께 여러 차례 설명회도 열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고집을 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초강수가 필요했다.
      해당 사업의 행정 실무자들과 추진위원회는 각 마을의 주민들을 불러놓고 선언했다. “도농교류센터를 중심으로 시설을 집중화시키는데 계속해서 반대하시면, 이 사업은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대로 이 사업을 접어야 합니다. 앞으로 한 시간 드리겠습니다. 이 사업을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변경된 사업 계획을 따라주실 건지 결정해 주십시오!” 회의실 문을 잠궈놓고 주민들만 남겨 놓은 채 사업 추진단은 나와버렸다. 주민들 반대에 꺾여 기존 사업대로 간다면, 실패할 것이 뻔하다는 생각에 강하게 밀어부친 것이었다. 안에서 고함이 들리고, 몸싸움이 일어났다. 그렇게 한 시간 뒤, 주민들은 변경된 사업 그대로를 따르겠다는 찬성 의사를 밝혀왔다.

      6년을 한결같이 오늘도 임무 수행중
      권역단위 사업의 가장 큰 고충 중 하나가 실무자의 잦은 교체다. 권역 사업이란 게 사업에 대한 이해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을만이 갖고 있는 특성과 장점 그리고 단점까지 알아야 지역 주민들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므로, 단시간에 적응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그래서 산청군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의 일등공신을 논할 때, 모두 일초의 망설임없이 치켜세우는 이가 있다. 사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 사업과 함께해 온 권영환 계장이다.
      권 계장이 이 사업을 이끌어 오는 동안 해당 직무를 수행하던 담당 직원만 다섯 명이 바뀌었다. 업무가 고된 탓이었다. 대부분 일년도 못 채우고 다른 부서로 옮겨갔다. 사람들로 인한 스트레스와 억압이 상당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사업 계획 변경 발표와 함께 권 계장은 숱한 협박과 압력을 받기도 했다. 그의 집과 사무실로 협박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왔다. 사실 권 계장 역시 이러한 힘든 권역 사업 일에서 벗어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떠날 수가 없었다. 사업 기간 중에 담당자가 바뀌면 사업이 지연되는 것은 물론이요, 지역 주민들 또한 수많은 불편을 겪어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편의를 앞세우지 않았다. 그가 인내하면 인내할수록 사업은 순탄하게 진행되었고, 주민들은 편했다. 권 계장 스스로가 한 가지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서 척척 처리하니 구태의연하게 설명할 필요도 자잘하게 요구할 거리도 줄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마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다보니 그가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그의 일이 되었다. 하지만 권 계장은 힘들다는 표현도 생색도 내지 않았다. 늘 그 자리에서 우직하게 해낼 뿐이었다. 어쩌다 그리 일이 많으면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는 늘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재미를 붙이면 방향이 보이고, 방향이 보이면, 힘이 납니다. 저는 지금 이 사업이 알면 알수록 참 재밌습니다.”

      발로 뛰는 점퍼 군수의 아버지 행정
      권영환 계장의 이러한 노고를 가장 잘 알고, 가장 그를 지지하며 인정해 주는 사람은 이재근 군수였다. 이 군수 역시, 초반부터 이 사업을 함께 이끌어 갔기에 누구보다 권역 사업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권 계장이 마을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동안 이 군수는 예산 확보를 위해 농림부를 수시로 찾아다녔다. 그의 지론이 발로 뛰는 행정이다. 때문에 이 군수는 산청에서 점퍼 군수로 통한다. 양복을 차려입고 집무실에서 서류를 살펴보는 대신 편안한 점퍼 차림을 고집한다. 직접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무엇을 자신이 할 수 있는지, 해줄 수 있는지를 점검한다. 그가 지향하는 건 책임 행정이다.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지시하고 시키는 게 책임자가 할 일이 아니란 것이다. 이 군수가 말하는 책임자란, 예산이 떨어졌다고 하면 어떻게든 얻어다 주고, 일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검찰이든 어디든 뛰어가 막아주면서, 그렇게 끝까지 책임져 주는 것. 마치 부모가 아이 키우듯 끝까지 보호하고 책임져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군수 스스로가 모범을 보이는 건 당연지사! 책임져야 할 산청군 식구들이 많으니, 자신의 모든 시간을 군청 일에 쏟아 부었다. 군수로 부임하고 경조사를 한 번도 못갔다. 아니 안 갔다. 현장으로 뛰어다니기에도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이 군수는 소주 회의를 지향한다. 업무 시간에는 처리할 일들이 많다보니, 행정 식구들을 돌볼 틈이 없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새가 없다. 어쩌다 시간이 난다고 해도 사무실에서는 형식에 얽매인 딱딱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기 십상이다. 넥타이를 풀고 마음의 빗장을 푼 채, 소통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이 술 한잔 놓고 이런 저런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소주 회의였다. 그곳에서 그는 실무자들의 애환과 노고를 듣는다. 투정도 들어준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술 한 잔 그득 따라준다. 그 소주 잔에는 술만 담긴 것이 아니다. 격려와 칭찬 그리고 이 군수의 사람에 대한 진정성이 담겨져 있다.

      선택과 집중이 지역을 살린다
      수많은 권역들이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시 큰 돈을 들여 도농교류센터를 지어놓는다. 하지만 모양새만 잘 갖춰져 있을 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채 마을 주민들에게 부담만 안겨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산청군 생초면에 지어진 도농교류센터는 이러한 점을 처음부터 경계했다. 주변 환경을 적극 활용, 계절별 활용방안을 세웠다. 산청 생초면은 대한축구협회에 전국 읍·면 단위 중 가장 많은 선수들이 등록돼 있을 만큼 축구의 기가 흐르는 고장으로 유명하다. 이에 유소년 축구단 및 지역 축구단 등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유소년 축구단의 경우에는 부모가 동행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부수익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어준다. 도농교류센터를 선수들의 숙소로 활용하는 한편, 주변 문화 관광(민물고기 전시관, 민물고기 낚시 체험, 향토음식 체험 등)을 적극 활용하여 부모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체험거리를 만들었다. 이로써 1월과 2월은 동계 축구 훈련소로, 3월과 4월은 대·중소기업 및 동문회, 소규모 단위의 워크숍과 엠티 장소로, 여름 시즌은 주변에 래프팅 시설이 많아 늘 숙박시설이 부족한 점을 이용, 관광객들이 취사 및 숙박을 해결할 수 있는 장소로 이용하고, 가을에는 가족 단위 체험거리를 살려 도농교류센터 활용을 높이고 주변 사업(민물고기 식당가, 약초 및 농산물 판매 등)과 연계해 윈윈(win-win)시킨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지역 홍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산청 생초면의 잔디 축구장에는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자글자글한 주름, 흘러내린 뱃살을 가진 아줌마, 할머니들이 축구화 끈을 질끈 조여맨 채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생초 여성FC’ 축구단이다. 2008년 3월에 창단한 이 축구단은 2001년 태풍 셀마의 피해로 마을이 폐허가 된 후 복구된 동네에 잔디구장이 들어서면서 생겨났다. 마을을 홍보하고, 건강도 챙기기 위해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그 결과 본격 할머니 축구단이 창단된 것이다. 특색 있는 권역 자원을 활용한 독특한 축구단 덕분에 홍보 효과는 톡톡했다. 이외에도 약초축제를 통한 생초면 알리기와 함께 글로벌화·세계화를 대비해 어서권역 내 다문화 가정이 많은 점을 활용하여 지역 상품과 자원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유능한 관광 해설사 양성 교육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산청군 도농교류센터 운영을 통한, 2011년 한 해 권역 방문객 수만 6,500여명이 넘고 운영매출이 1억 5백만원을 넘고 있다(어서권역 기준). 여기에 일자리 창출과 인구증가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재근 군수도, 해당 사업 관계자들도 그 성공 비결에 대해 입모아 말한다. 지역 자원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한 덕분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적 자원을 잘 활용한 덕분이라고...
      리더는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앞에 있는 사람이며, 리더는 위에서 군림하기보다 맨 앞에 서서 따르는 사람들을 미래로 이끌고 나가야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산청의 권역 사업을 이끈 리더들이 그랬다.
      산청은 이러한 리더들이 다시 한번 합심하여, 생초면과 인접한 차황면, 오부면의 광역친환경농업지구를 본 사업권역으로 확대하여 전국 최대의 청정 친환경농산물 생산지역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와 함께 2013년 세계전통의약엑스포 개최지인 동의보감촌과 사업지역으로부터 5km이내에 위치한 생초박물관, 구형왕릉 등 가야시대 역사자원 및 생초조각공원 등 많은 문화자원을 관광 문화단지로 개발하여 지역관광을 활성화해 나갈 계획이다. 산청은 이제 제대로 멋지게 슛팅을 날릴 일만 남았다.

    댓글

    0/300
균형발전 우수사례집은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이에 대한 무단 복제·변경 및 배포·게시를 원칙적으로 금합니다.
첨부파일 정보 표로 첨부파일 목록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첨부파일

지자체장 소개 닫기


사업담당자 닫기


관련기사 닫기

지자체 홍보자료 닫기

지자체 홍보자료 이미지

관련사진 보기 닫기

로그인 닫기

아이디/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