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0년 전만 해도 우리 선조들은 대부분 나무로 지어진 집에서 살았다.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대청마루, 나뭇결이 살아 있는 대들보, 손 때 묻은 기둥에선 마치 숨을 쉬는 생명체처럼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도시가 커지고 건물을 더 높고 화려하게 짓기 시작하면서 목재를 사용하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다. 어느덧 회색빛 콘크리트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나무는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가 되었다. 차가운 콘크리트나 유리 소재와 달리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고 자연친화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목재를 이용한 내·외장재, 가구, 장난감 등에 대한 수요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또한 환경호르몬으로 인한 아토피 질환자가 증가하면서 플라스틱 문화에서 목재 문화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현대인의 요구에 발맞추어 산림청에서는 2004년부터 목재의 특성과 이용 방법을 알리고 다양한 목재 제품을 손수 만들어 볼 수 있는 목재문화체험장을 전국적으로 설립·운영하고 있다. 전남 장흥의 우드랜드가 대표적이다.
2011년 울창한 편백나무 숲에 문을 연 장흥 우드랜드는 다양한 목공예 체험 프로그램과 삼림욕, 통나무집 숙박 등 차별화된 콘텐츠가 전국적인 인기를 끌며 지난 한해 69만 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여기에 탄력을 받은 전라남도에서는 다른 시·군에도 목재문화체험장 조성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최근 전남 영암에 또 하나의 목재 문화체험장이 건조한 도시의 일상에 지친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막 마쳤다.
왕인박사와 도선국사를 배출한 마을
남도의 젖줄 영산강과 명산 월출산을 품고 있는 영암은 전통문화와 역사가 살아 있는 고장이다. 그 중심에 구림전통마을이 있다. 월출산 주지붕에 감싸인 구림전통마을은 장장 2,2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유서 깊은 마을이다. 고즈넉한 돌담길을 따라 12곳의 누정과 700여 채의 전통한옥, 울창한 송림과 죽림이 어우러져 옛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비둘기 구(鳩), 수풀 림(林)을 쓰는 마을 이름은 우리나라에 풍수사상을 도입한 도선국사(827~898년)의 탄생설화와 연관이 있다. 마을의 한 처녀가 빨래를 하다가 샘물에 떠내려 오는 참외를 먹고 잉태를 하여 아기를 낳았다. 이를 부끄럽게 여겨 마을 숲속 바위 위에 버렸는데 며칠 후 다시 가보니 비둘기들이 아기를 감싸고 있는 것이었다. 범상치 않음을 느낀 처녀는 아기를 다시 집으로 데려와 키웠다고 한다. 그 아기가 훗날의 도선국사다. 아이를 버린 바위가 지금껏 내려와 국사암으로 불린다. 월출산 자락의 도갑사는 도선국사가 통일신라시대 때 창건한 절이기도 하다. 구림전통마을은 2009년 팜스테이마을 및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어 한옥민박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또한 전통예절교육, 전통혼례체험, 한지공예체험 등 다양한 전통체험을 진행해 우리 옛것을 접할 기회가 적은 어린 학생들에게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영암이 배출한 또 한 명의 걸출한 스타가 있으니 바로 왕인박사다. 왕인박사의 인기는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에서 더 높다. 백제의 뛰어난 유학자였던 왕인박사는 1600년 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들에게 한자와 유학을 가르쳤다. 또한 함께 간 도공, 대장장이, 직조공 등으로부터 백제의 앞선 기술을 일본에 전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마을 입구에는 그 당시 일본으로 가기 위해 왕인박사와 여러 백제의 기술자들이 배를 탔던 상대포가 남아있다. 이러한 문화전수를 통해 왕인박사는 7세기경 일본 정치·경제·문화·예술이 꽃 피웠던 아스카 문화의 시조로 추앙받고 있다. 넓은 잔디공원에 왕인박사 위패를 모신 왕인사당, 왕인박사를 상징하는 계곡 성천, 2.75m 높이의 왕인석상 및 전시실이 등이 자리한 왕인박사유적지에는 매년 일본인을 비롯해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뛰어난 역사·문화·관광 콘텐츠를 지니고 있는 영암이지만 이를 하나로 묶어줄 만한 요소가 부족했다. 전라남도에서 추진하고 있는 목재문화체험장이 하나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목재 건축의 결정판이랄 수 있는 전통한옥이 밀집한 구림전통마을과 연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왕인박사유적지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즐길 만한 콘텐츠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영암 목재문화체험장 조성사업에 국비 41억 5400만원, 군비 10억 3860만원으로 총 51억 9260만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목재문화체험장 조성에 관한 예산집행과 행정절차 이행은 영암군 산림축산과에서 진행하고 건축 시공은 도시개발과에서 추진했다. 마을 주민의 건의사항을 듣거나 관련 전문가의 자문이 필요할 시에는 부서에 상관없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반영했다.
최고의 목재건축, 한옥
한옥은 우리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매개체이다. 나무, 흙, 돌로 지어진 친환경 건축으로서 바람을 끌어들이고 추위와 더위를 조절하는 등 기능적으로도 완벽하지만 부드러운 처마 곡선과 적재적소에 낸 창호는 외관상으로도 지극히 아름답다. 이러한 한옥이 점차 사라지고 잊혀가는 현실을 되돌아보고 한옥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대한민국한옥건축박람회가 영암군에서 개최되고 있다.
2012년 2회를 맞아 10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개최된 대한민국한옥건축박람회에서 영암 목재문화체험장이 첫선을 보였다. 목재와 황토로 지은 전통한옥 구조의 전시관·교육관·체험관과 야외체험활동을 위해 회랑으로 둘러싸인 너른 마당이 조성되었다. 여기에 서면 월출산의 웅장한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간 한옥박람회는 주로 서울이나 대도시의 컨벤션 센터나 전시실에서 일회성의 관람 위주로 진행되었다. 이에 반해 영암 목재문화체험장은 왕인박사유적지와 구림전통마을 등 살아 있는 전통 문화유산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고 각종 전통체험과 한옥민박을 연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외 관람객들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한옥건축박람회의 콘텐츠는 그대로 목재문화체험장에서 활용될 예정이다. 체험행사로 진행된 전통 목조건축모형 결구, 한옥 퍼즐 맞추기, 목재조립, 참살이 목공예, 청정 황토 흙놀이, 흙벽돌 상징물 모자이크, 한옥민박 등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영암은 목재문화체험장 조성 과정에서 예상되는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기본구상·설계·시공·운영 등 전 과정에서 지역의 목재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다양한 계층이 즐길 수 있는 전시 및 교육,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인근 구림전통마을과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는 만큼 주민들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연계사업을 더욱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다. 특히 향후 운영 및 관리, 수익사업 등에 대해서는 목재문화체험장의 성공적인 사례가 되고 있는 장흥 우드랜드를 벤치마킹해 효과적인 방안을 강구해나갈 예정이다.
5개 시·군구, 예산 조정을 이뤄내다
목재체험장 조성과 관련하여 전라남도 5개 시·군에 투입된 2012년 총 사업비는 23억 원이다. 2011년 사업이 종료된 장흥을 제외하고 화순·광양·구례·고흥·영암 지역에 단계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화순의 경우 당초 2011년 사업이 종료되어야 했으나 설계 변경 등의 이유로 해를 넘겨 2012년 사업비는 따로 책정되지 않았다. 이에 반해 초기 단계인 광양과 구례에는 각각 5억원, 진행 단계인 고흥과 영암에는 각각 6억 5000만원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영암군이 개최하는 2012년 대한민국한옥건축박람회에 목재문화체험장을 주 전시공간으로 사용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전국에서 10만 명의 방문객이 몰리는 만큼 목재문화체험장을 널리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 예산으로는 그 전까지 공사를 완료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전라남도가 나섰다. 아직 실시설계 단계인 광양과 구례는 설계 심사 등 행정절차에 따라 사업지연이 예상되었다. 이에 광양과 구례를 설득해 각각 5억 원에서 2억 원으로 예산을 조정하고 여기서 발생한 차액 6억 원을 영암에 전격적으로 투입한 것이다. 이미 예산이 다 확보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를 다른 군에 양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전라남도의 확고한 사업의지와 추진력이 빛났다. 다른 지자체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합리적인 조정이 이루어져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했다. 이로써 영암 목재문화체험장은 기한 내에 순조롭게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음은 물론 도내 전체 사업의 집행률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목재 ‘문화’를 넘어 목재 ‘산업’으로
건강과 힐링, 친환경이 현대인들의 주요 관심사로 자리 잡으면서 경쟁력 있는 관광자원으로서 전라남도가 목재문화체험장에 거는 기대는 크다. 공사가 완료된 시설을 잘 운영하고 앞으로 지어질 목재문화체험장에 대해선 더욱 완성도를 높일 계획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목재를 문화의 영역이 아닌 산업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목재산업 복합센터의 조성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산림청, 전라남도, 장흥군이 협력하여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장흥 우드랜드 내 22,300㎡의 부지에 1,100억 원 규모로 추진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국내산 목재 연구개발, 세계적인 수준의 목제품 개발 및 판로지원 등 목재 산업화를 통해 지역 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한 재원 확보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동안 우리는 나무를 개발과 발전을 저해하는 방해물로 여겨왔다. 건물을 짓고 도로를 내기 위해 잘려나간 나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최근엔 체험하고 즐기고 보존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앞으로 목재가 더욱 가치 있는 미래 자원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중앙부처, 시·도, 관련 전문가, 주민들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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