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생은 그 옛날 걸어서 장보러 가던 풍경이 그리웠습니다. 장날이면 이고 지고 싣고 왁자지껄 떠들며 걸어가던 사람들, 그들은 삶이 비록 고달팠지만 소외되지 않았습니다. 쫓기지 않았습니다. 그들 모두가 주인공이었습니다. 정생은 인간이 다시 위대해지기 위해서는 흙 속에 힘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동하는 인간이 존경받고, 푸른 대지 위에서 당당하게 주인으로 살아가는 노동자가 바로 농민이어야 했습니다.”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강아지똥별> 중 한 구절이다. 권정생 선생은 “농업은 사람이 살아가는 목숨이고 밥은 곧 하늘이니, 누가 뭐래도 이 지구상의 직업인 가운데 농사꾼이 제일”이라고 말한 분이다. 농사꾼, 이 푸른 대지의 주인공이라 칭해지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김천시 대덕면 화전리의 ‘농민희망제작소’에 들어섰을 때, 바로 이 농사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오이를 따다가, 누군가는 양파를 캐다가, 누군가는 토마토를 돌보다가 그 차림 그대로 흙냄새를 머금고 모여 있었다. 20여 명의 농사꾼들은 모두 닮아 있었다. 같은 햇볕에 탄 시커먼 얼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공유하는 것은 햇볕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함께 땀 흘려 일하고 공동의 수익을 창출해내는 운명공동체였다. ‘농민희망제작소’는 이번에 새송이버섯 종균배양시설을 통해 또 하나의 희망을 배양했다.
왜 버섯종균시설이 필요했나
“우리나라 농업이 겉으로는 좋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현장의 농민들은 많이 힘듭니다. 한 예로, 10~20년 전에 우리 어르신들이 농사지을 때도 쌀 한 가마니에 15만원 정도 했는데, 지금도 15~16만원 합니다. 10~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격이 똑같다는 것이죠. 소득 외형은 성장했어도 수익률은 엄청 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농민희망제작소의 초기 수장을 맡았던 박경범 씨의 이야기다. 억대 소득 농가가 1만 6000개가 넘는다지만 그것은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다. 더구나 대덕면처럼 중산간지역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산간지역에서는 대규모 경작이 가능한 작물을 할 수가 없고 대부분 직접 손으로 심고, 따고, 포장해야 하는 노동집약적 작물뿐이다. 오이, 양파, 토마토 등이다. 손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나마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새송이 버섯도 그중 하나였다.
김천은 국내 새송이 버섯 최대 생산지역이다. 수출에 있어서도 다른 지역보다 앞서 있다. 그만큼 재배농가가 많다. 그러나 최대 생산지역임에도 버섯종균을 100% 자체 생산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천에 있는 4곳의 종균배양공장에서 커버되는 양은 반 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경남 진주, 사천 등에서 종균을 사와야 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한 번 종균을 사 오는 데 물류비만 35만원씩 들었다. 매번 종균을 사다 날라야 했으니, 재배를 하더라도 다른 지역에 비해 수익률이 떨어졌다. 종균을 매입하여 버섯을 키우면 비수기 때는 오히려 적자를 남기는 상황도 발생했다. 종균배양시설이 있어야 버섯농가들에게 온전한 수익이 가능했다.
지금은 젊지만, 미래를 생각했다
새송이 종균배양시설을 짓자는 계획은 ‘농민희망제작소’의 주도 아래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2006년 박경범 씨를 주축으로 이뤄진 농민회가 농업과 미래를 고민하며 ‘농민희망제작소’를 만들었다.
농민희망제작소의 구성원은 모두 젊다는 것이 특징이다. 40대 중반부터 50대 중반의 2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여느 농촌 지역보다 힘쓰는 장정(?)들이 많다. 이중에는 귀농자가 반 이상이다. 10년 경력의 귀농인부터 2년 경력의 새내기 귀농인도 있다. 농민희망제작소는 2010년부터는 농산물 가공제품(칡즙, 양파즙, 포도즙)을 출시하여 인터넷 판매를 시작하였으며 점차 지역 내 특산물을 판매하는 농산물 전문 쇼핑몰 운영도 겸하고 있다.
농민희망제작소는 매달 둘째 주 월례 회의를 통해 농업과 관련된 의견을 나누고 서로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농민공동체이다. 이곳은 단순히 모여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매년 벼 수매 시마다 무료 봉사를 통해 나이 드신 농업인들을 돕고 있다. 그 외에도 젊은 농사꾼으로서 지역 농업인들에게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7년째 계속해 오고 있다. 이렇게 몸소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느끼는 바가 많았다. 특히 현재 농민희망제작소의 젊은이들이 65세 이상이 되면, 즉 농업 은퇴 이후에도 계속 농사를 지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새송이 버섯종균 시설 건축도 이러한 고민 끝에 나온 결실이었다. 농한기의 농민희망제작소는 여느 농촌과 같이 그저 놀면서 쉬기 편한 장소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시기는 길지 않았고, 농한기에도 산에서 칡을 캐와 칡즙을 내서 인터넷 판매를 하는 등 쉬지 않고 농업수익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일을 찾아가고 있었다. 우선 “노후에도 계속 할 수 있는 일을 찾자!”가 목표였다. 회원들이 각자 분야를 나누어 시장조사에 들어갔다. 의견이 모아지면 자료조사가 이어졌고 다시 열띤 토론이 이어지기를 1년. 최종적으로 버섯을 특화종목으로 가지고 가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버섯은 노동집약적인 농업이다. 배양된 버섯을 일일이 손으로 따서 포장을 해야 한다. 인력이 필요하니 고용창출은 당연한 수순이다. 농업 은퇴 이후 80살, 90살이 되어도 가능한 것이 버섯농업이다. 더구나 항상 18도를 유지해야 하는 작업장은 노후 농업인들의 건강에도 나쁘지 않다. 큰 소득이 되지 않더라도 회원들이
계속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 농민희망제작소가 버섯을 택한 이유다.
농민희망제작소는 2012년 ‘부자마을만들기’ 농수산물생산유통기반구축지원사업을 통해 총 10억 원의 사업비로 종균배양사(1,296㎡), 버섯재배사(840㎡)를 신축하였고, 종균배양시설 및 장비(19종) 구입, 가공 및 유통설비(8종) 구입하였다. 사업 공모 준비도, 사업수행도 빨랐다. 농민희망제작소 회원들은 여타 지역에 비해 공모사업에 대한 발 빠른 대처가 가능했던 것은 역시 젊기(?) 때문이라고 농담처럼 얘기한다.
함께 한 7년, 뭐든 할 수 있는 저력 생겼다
버섯농사는 해 봤지만 종균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농사꾼이라도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는 법. 시행착오는 어쩔 수 없었다.
“배지를 입병한 후에 100% 살균작업을 해야 합니다. 이 때 살균온도가 정확해야 합니다. 지금은 보통 123도에서 2시간씩 살균을 합니다. 이 적정 살균온도를 찾기까지가 말 그대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표가 나지 않다가 일주일 정도 후에 버섯곰팡이가 나올 때 확인이 가능합니다. 버섯곰팡이는 하얗게 펴야 하는데, 다른 색깔로 피면 살균이 잘못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게 색깔이 나오면 아까워도 다 버려야 합니다.”
한동안 빨간 새송이버섯, 보라색 새송이버섯이 무더기로 버려졌다.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전문가들의 도움을 요청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도 “버섯살균은 보편화된 기술이 없고 환경에 따라 종균배양 상태가 천차만별”이라고 얘기했다. 살균 시간을 조절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살균을 오래 하면 살균은 제대로 되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채산이 안 맞는 것이다.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 적정 살균온도를 찾아가는 것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었다. 살균 실무를 맡은 회원들은 교육과 실험을 동시에 이어갔다. 꾸준한 반복과 시간이 투입되자 새송이버섯이 자기 색깔을 찾고 하얗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데이터 작업을 꾸준히 한 끝에 회원
들은 이제 어느 정도 버섯살균 달인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재주 많은 농사꾼들이었기에 가능한 일도 있었다. 버섯재배사 시설 안에 들어가는 철골구조물은 모두 회원들의 작품이다. 회원들은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저녁 시간에는 용접공으로 변신했다. 이런 노동력은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런 노동력까지 계산된다면 자부담 출자금액은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농민희망제작소’ 건물은 바닥 포장까지 직접 회원들이 담당했다고 한다.
“현재까지 금전적인 성과는 없습니다. 지금은 돈이 되는 시기가 아니어서 약간의 경영적자가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회원들이 출자해서 메꿔 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기술적인 문제를 보강하는 시기였고, 그래서 기술적으로는 안정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됩니다. 지난 1년 동안은 유기농법에 대한 자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 부수적인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년에는 지역농가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갈 것입니다.”
새송이버섯은 이제 농민희망제작소의 새로운 희망이다. 협동하여 심혈을 기울인 만큼 회원들은 버섯이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땀 흘리며 생긴 저력은 분명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버섯배지 활용으로 농업순환체계 실험
농민희망제작소의 미래 구상은 이미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 바로 농업순환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미 1차년도 실험을 시행 중이다. 버섯종균배양시설이 들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인공은 버섯배지다.
버섯을 다 키우고 나면 배지가 남는다. 배지는 쓰레기로 버려질 것이 아니라 최고의 영양분이 담긴 퇴비가 될 수 있다. 배양했을 때 버섯이 소모하는 열량은 30%정도다. 70%정도가 남게 되는 셈이다. 이를 두 가지 형태로 활용할 수 있다. 하나는 유기농업을 위한 퇴비로, 다른 하나는 축산농사들에게 TMR사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버섯배지는 한 동에 4톤 분량이 나온다. 한 달이면 50톤, 1년이면 600톤이다. 이렇게 양이 많아지면 자원화가 가능하다. 배지는 엄격히 따지면 유기에 결격사유는 있다고 한다. 그러나 퇴비로는 완벽하게 사용될 수 있다. 가축사료에 버섯배지를 활용할 경우, 1마리당 8만원에서 10만원 정도의 사료비가 절감될 수 있다. 여기서부터 농업순환이 가능하다. 버섯사업이 안정화되면 이처럼 주변 사업들을 같이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버섯균이 접종된 배지를 부엽토, 사탄토와 결합시켜 실험적으로 하우스 농가에 1차적으로 사용해 보았다. 덕분인지 올해 농사가 굉장히 잘 되었다는 평가다. 예년보다 풍성하게 달린 토마토 알만 봐도 그 성과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공동체, 또 다른 이름의 미래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것은 상당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의미이지요. 우리나라가 전업농이 되면서 두레, 계, 품앗이 등 전통의 모습이 다 깨져버린 것이 안타깝습니다. 저희는 협동을 중요시 여깁니다. 가족농이나 소농경영으로 가야 협동이 살아납니다. 협동이 복원되지 않으면 지역의 농업을 풀어갈 수 없습니다.”
박경범 씨의 얘기 속에 농민희망제작소가 원하는 우리 농촌의 미래가 담겨 있다. 농민희망제작소는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조직이다. 젊은 농사꾼들이 모여 함께 우리 농업의 미래를 걱정하고, 말로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땅을 일구며 실제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혼자만 잘 살려는 것이 아니라 공동수익을 창출해 가며 공동의 미래를 위해 나아간다.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 농촌에 이런 젊은 공동체의 움직임이 반갑다. 농민희망제작소에서 배양되고 있는 ‘희망’의 미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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