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는 대표적인 안보관광도시이다. 북한의 수도 개성과 가장 인접한 접경지역으로 북한이 파놓은 1,635m의 땅굴인 제3땅굴, 한국전쟁 이후 남북포로교환이 이루어졌던 자유의 다리, 남쪽 최북단역인 도라산역 등 곳곳에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통일전망대, 임진각, 제3땅굴 등 파주의 대표적 안보관광지에 2012년 한 해 동안 다녀간 관광객 수가 700여만 명이었다. 이중 외국인 관광객만 160여만 명에 이른다.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대한민국의 현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인 까닭이다. 어느덧 그렇게 지내온 세월이 60년이 되었다. 그 사이 전쟁세대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나버렸고 우리의 삶도 너무 빨리 변해버려 전쟁의 기억은 아주 먼 과거의 일이 돼버렸다. 1년에 두어 차례 기념일이 아니고선 대부분 잊어버리고 사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여기 남과 북의 분단된 현실을 일상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마을이 있다. 비무장지대 내에 자리한 유일한 마을, ‘자유의 마을’로 더 잘 알려진 대성동 마을이다. 공동경비구역에 위치해 외지인은 신분증 검사 없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고 마을 내 군인이 주둔하는 등 남과 북의 대치 상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400m 떨어진 대성동 마을에선 북한 군인이나 주민의 모습이 빤히 보일 정도다. 대성동 마을은 또한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청정 지대다. 남과 북 어느 쪽도 함부로 할 수 없던 까닭에 생태계가 살아 있는 순수의 땅으로 남겨졌다. 이처럼 정치·사회·문화적 특수성과 비무장지대의 청정 자연을 간직한 대성동 마을이 최근 평화생태마을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비무장지대에 들어선 자유의 마을
1953년 7월 27일 비무장지대 내 판문점에서 국제연합군 총사령관과 북한군 최고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 사령원 사이의 역사적인 정전협정이 맺어진다. 전쟁이 끝났다는 의미의 ‘종전’이 아닌, 잠정적으로 전쟁을 중단한다는 의미의 ‘정전’은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사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를 설정하고 여기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에 따라 남에는 ‘자유의 마을’ 대성동 마을이, 북에는 ‘평화의 마을’ 기정동 마을이 들어서게 된다. 두 마을 사이의 거리는 불과 800m 정도이다. 대성동 마을에선 북한 기정동 마을 주민들의 생활 모습과 개성 송악산의 전경, 개성공단이 선명하게 내다보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체재경쟁이 극에 치달았던 1970, 80년대 남과 북 정부는 서로의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 양쪽 마을의 주택 개량과 도로 정비 등 현대화 작업을 서둘러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남과 북의 체재경쟁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 국기게양대다. 대성동 마을에 48m의 국기게양대에 태극기가 걸리자 기정동 마을은 더 높게 인공기를 매달았고, 이러한 높이 경쟁은 1982년 대성동 마을 99.8m, 기정동 마을 160m에서 끝이 났다.
대성동 마을의 가장 특이한 사항은 정전협정 조항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보다 유엔군 사령부의 통제권이 우선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마을 주민이 범법 행위를 하면 일단 대성동에서 추방되는 형식을 거친 후, 대한민국 법률에 의해서 처벌을 받게 된다. 마찬가지 이유로 국민의 4대 의무 중 병역 및 납세의 의무가 면제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을 주민 중 남성이 외지인과 결혼을 하면 상대 배우자는 마을에 들어와 살 수 있지만, 여성이 외지인과 결혼을 하면 배우자를 따라 마을을 떠나야 한다. 마을에서 나고 자란 주민이라 할지라도 1년 365일 중 280일 이상 거주하지 않으면 주민 자격이 박탈된다. 매일 밤 10시경 주민들은 JSA 부대원과 함께 점호를 받으며, 밤 11시 30분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통행도 금지된다. 이장 선출과 같은 마을의 대소사와 관련해서도 유엔군 사령부에 알리고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마을 주민이 농사를 짓기 위해 군사분계선 인근으로 가게 되면 어김없이 무장을 한 군인들이 따라붙는다. 불편할 것 같다는 질문에 대성동 마을 김동구 이장은 손사래를 친다.
“오히려 고맙죠. 우리가 위험할까봐 경호해주는 거잖아요. 군부대에서 하루 전부터 동선을 짜고 당일에는 무전을 쳐서 우리가 가는 길목마다 지키고 서 있어요. 부대원들과 서로 얼굴도 다 알고 하니까 거의 한 마을 주민이나 다름없습니다.”
대성동 마을은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마을 전체 경작 면적은 483ha로 한 농가당 평균 11.23ha를 경작하며 기계화가 잘 이루어져 있다. 인구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고령화가 심각한 대부분의 농촌 마을과 달리 20~40대 인구가 50%에 육박하는 젊은 마을에 속한다. 대성동 마을의 유일한 교육시설로 대성동초등학교가 있다. 학생 수가 줄어 한 때는 없어질 위기도 겪었으나 지금은 원어민 강사와 각종 특별활동을 교육청에서 지원해줘 파주, 문산, 금촌 지역 등 외지에서 통학하는 학생도 생겨났다.
농촌체험마을, 우리도 할 수 있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 탄생한 대성동 마을. 마을 설립 초기에는 국가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 각종 혜택을 누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빠르게 발전하는 바깥세상과 달리 마을은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외지인들이 쉽게 드나들 수 없고 군부대가 마을 안에 주둔하다보니 변화나 발전에 걸림돌이 많았다. 이에 따라 지역민들의 소외감 또한 높은 실정이었다. 마을에서는 타개책 마련에 고심하던 중 접경지역특성화마을 특별법에 의한 특성화마을 조성사업에 신청하였고 행정안전부의 실사 평가를 통해 2011년에 선정될 수 있었다. 북한 땅을 지척에서 조망할 수 있다는 안보관광을 무기로 비무장지대의 청정 자연에서 자란 무농약 쌀과 콩, 태양초 고추 등을 통해 농업소득 증대를 꾀한다는 것이 사업 방향으로 정해졌다. 김동구 이장을 추진위원장으로 영농조합법인을 구성하고 노인회·청년회·부녀회 등 마을 임원진이 주축이 된 평화생태마을 조성사업 추진위원회가 꾸려졌다. 사업초기 주민들은 마을 사업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마을 추진위원회의 경험부족으로 인한 어려움도 겪었다. 그러나 추진위원회가 차차 자리잡아가며 주민들 설득에 나서고 마을 사업이 진행된 다양한 농촌 마을을 수차례 견학하며 사업의 이해도를 높였다. 이러한 주민역량강화 교육을 통해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대성동 마을의 경우 주민의 협조 이외에 고려사항이 하나 더 있었다. 마을을 관리·통제하는 유엔군 사령부의 동의와 협조다. 최근 연평도 포격, 북한의 군사도발 등 대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안보 문제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어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 중앙부처(안전행정부), 경기도, 파주시, 군부대 및 유엔군 사령부 등이 서로 충분한 동의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개발의 규제가 강화되고 분위기가 위축되는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관련기관 간의 지속적인 협의와 의견 교류를 통해 사업을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우리 마을 영화관에서 최신 영화를
사업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국비 20억 원과 지방비 5억 원, 총 25억 원의 예산으로 진행된다. 2012년에는 그 1단계로 6억2500만원을 들여 마을의 숙원사업이던 마을회관 리모델링과 국기게양대 보수·보강 사업이 완료되었다.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자투리 시간을 보내는 마을회관은 주민들의 사랑방이자 마을의 중심시설이다. 지어진 지 15년이 넘어 노후화된 마을회관의 내·외벽 마감재를 교체하고 화장실도 깔끔하게 보수했다. 겉모습만 바뀐 것이 아니다. 2009년에 조성된 마을회관 2층 52석 규모의 영화관에 롯데시네마와 MOU를 체결, 최신 개봉작을 정기적으로 상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달에 두 번, 영화가 무료 상영되는 토요일은 마을 주민들뿐 아니라 JSA부대원들이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날이 되었다. 지난 해 높은 인기를 끌었던 영화 <건축학개론>이 일반 개봉을 앞두고 이틀 전에 대성동 마을 영화관에서 먼저 상영되기도 했다. 마을 출입이 자유롭지 않아 상대적으로 문화적 빈곤에 시달리던 주민들에겐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국기게양대는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높이 99.8m의 국기게양대에 걸린 가로 18m×세로 12m의 대형 태극기는 마을 어디서도 볼 수 있는 대성동 마을만의 랜드마크다. 그런 국기게양대가 꽤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다. 김동구 이장이 마을 사업의 1순위로 생각한 것이 국기게양대 보수 및 보강 공사였다. 외관상 좋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마을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기 때문이다.
“볼 때마다 기분이 영 안 좋더라고요. 그렇다고 마을에서 부담하기에는 금액이 만만치 않고…. 저희가 공무원들한테 아주 여러 번 얘기했습니다. 국기게양대가 이렇게 깔끔해지니 제 속이 다 후련합니다.”
녹슬고 칠이 벗겨진 국기 게양대가 새로 옷을 갈아입고 1m의 H빔으로 더욱 튼튼하게 보강하며 위풍당당한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사실 대성동 마을에선 이런 공사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외부의 공사인력이 오갈 때 늘 엄중한 신분증 검사가 이루어지고 정해진 시간 외에는 공사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무사히 공사를 마쳤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무적일 수밖에 없다.
최고의 평화생태마을을 꿈꾸다
대성동 마을의 변신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1단계 사업의 성공적인 진행으로 마을 주민들은 자신감을 얻었다. 2013년에는 마을 농업소득 증대를 위해 2단계 사업으로 특산물 가공시설과 특산품 홍보판매장, 작물재배 체험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여기에 사업비 12억 5000만원이 투입된다. 특산물 가공시설은 관광객들의 실내 체험장이자 마을공동작업장이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멧돌 체험, 장단콩 메주만들기 체험 등을 진행하며 마을 주민의 희망사업인 참게장·고춧가루·토종우렁이 통조림 가공사업 등이 이루어진다. 마을의 논·밭을 활용한 작물재배 체험장에선 장단콩, 고추, 유기농 벼의 재배 체험이 진행되고 참게와 우렁이 잡이 체험도 함께 할 예정이다. 여기에 원두막과 초가집도 설치해 농촌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생각이다. 특산물 홍보판매장은 마을회관 1층 입구에 들어선다. 또한 대성동 마을이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마을 바깥, JSA 부대 앞에 특산물 판매장을 별도로 마련한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2014년에는 사업비 6억 2500만원으로 태극기 공원, 안보체험길 등을 조성해 안보관광을 보다 강화할 예정이다. 마을의 상징물인 국기게양대 주변에 조성되는 태극기 공원은 2,300㎡의 면적에 파고라, 벤치 등을 설치해 마을 주민과 방문객이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장소로 재탄생한다. 안보체험길은 마을 끝에서 팔각정까지 향하는 4m 도로 위에 조성된다. 팔각정은 북한을 망원경 없이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장소로 기정동 마을과의 거리가 불과 400m이다. 낡은 팔각정을 새로 정비하고 폭 1.5m, 길이 300m의 안보체험길에는 소망의 벽, 역사의 벽 등 전시물로 꾸민다는 계획이다.
접경지역의 특수한 상황에 놓인 마을이 비단 대성동 마을만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군사지역의 폐쇄성 및 개발 제한이라는 제약과 다양한 안보관광 자원, 우수한 자연환경이라는 경쟁력은 접경지역 마을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다만, 이러한 약점과 강점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 곳이 대성동 마을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대성동 마을의 향후 행보는 평화생태마을 조성사업의 가능성과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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