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겨울 도시민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녹여주었던 영화 <워낭소리>. 평생 소를 부려 농사짓고 살아 온 우리 어버이들의 농촌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경북 봉화 7개의 산골마을로 구성된 한누리 권역은 바로 그 <워낭소리>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다. 고령화된 마을이지만 산골의 순수함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이곳 한누리 권역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가곡리, 운계리 그리고 하눌리의 7개 마을로 구성된 한누리 권역은 572가구 1,183명으로 구성된 작은 산골 권역이다. 특별한 관광자원이 없는 대부분의 농어촌 지역이 그렇듯, 한누리 권역의 7개 마을도 오랜 침체를 겪었다. 영화 <워낭소리>의 전례 없는 흥행으로 마을은 잠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고 매년 은어축제, 송이축제와 같은 크고 작은 축제들이 흥을 돋우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을 안에 위치한 시설물들이 낙후되어가고 주민들이 고령화되어가는 현실까지 어찌할 수는 없었다.
한누리 권역의 변화는 마을을 사랑하는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한 땀 한 땀 계획적으로 이루어졌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2년간에 걸친 예비계획이 2007년 2월 농식품부 신규 공모사업에 최종 선정된 후 이를 바탕으로 2008년 초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전체적인 사업 추진 방향과 시설물 운영관리 방향에 대한 틀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사업의 주춧돌을 닦은 한누리 권역은 이후 2010년 6월 준공된 권역전원생활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변화를 거듭하게 된다. 이제 한누리 권역은 ‘한누리 워낭마을’이라는 새 이름과 함께 우리 농촌의 미래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발돋움했다.
한누리의 심장, 권역 전원생활센터
2010년 6월 완공된 권역 전원생활센터는 명실상부 지난 3년간 한누리 권역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전초기지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센터와 함께 문을 연 전원생활학교가 한누리 권역 사업의 감초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역 전원생활센터에서는 기본 2박 3일 과정으로 연 8회 운영되는 전원생활학교와 다양한 농촌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이루어지고 있다. 귀농을 염두해 둔 도시사람들이 주로 참여하는 전원생활학교는 꼼꼼하고 세심한 교육과정과 믿을 만한 강사진으로 운영되고 있다. 덕분에 수료생 656명 중 81가구 243명이 실제로 봉화로 귀농하는 놀라운 성과를 기록하기도 했다. 도시민 체험프로그램 역시 단순히 농촌의 맑은 공기를 쐬고 돌아가는 단기 휴양형태의 체험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농사체험과 서각체험 등 우리 문화의 뿌리인 농촌 문화를 다양하게 체험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농촌체험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특히 농촌체험프로그램은 자연과 친하지 않은 요즘 아이들에게는 큰 깨달음을 줄 수 있는 교육 기회이기도 하다. 한누리 권역에 찾아오는 아이들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교재들과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아이들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도록 세심하게 돕는다.
“도시에서 온 아이들은 흙을 더러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흙은 좋은 것이고 깨끗한 것이고 생명을 자라나게 하는 원천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돕지요.”
최병호 운영위원장은 한누리 권역에 오는 아이들은 고구마를 ‘캐는’ 대신 ‘발굴’ 한다고 말한다.
“고구마를 캐 오라고 하면 경쟁적으로 고구마를 뽑아 오는 경우가 많아서 고구마가 중간에 끊어지거나 상처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유물을 발굴할 때 사용하는 대나무와 붓을 준비해 주었지요. 자, 이제부터 고구마라는 땅속의 보물을 발굴해 보는 거야, 하면 아이들이 아주 신나합니다. 하나도 상처나지 않은 예쁜 고구마를 보물처럼 소중하게 안고 옵니다. 이 땅에서 농민들의 피땀으로 자라난 농산물들도 고대의 보물과 다르지 않음을 인식시켜 주는 것이지요.”
기본적인 문화유산이나 독특한 자연관광지가 없는 한누리 권역에서 농사만으로 수익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특히 산지의 비중이 높아 친환경적인 밭작물 위주의 농업이 성행하고 있어 고소득 작물이나 농업규모를 키우는 것 또한 한계가 있었다. 운영진의 머릿속엔 이미 마을을 위한 사업 아이디어가 가득했지만 이 또한 기본적인 운용자금이 없으면 실현이 불가능했다. 권역센터는 이러한 상황에 뜻있는 탈출구가 되어주었다. 삶에 지친 도시민들에게 농촌의 문화를 다시금 깨우쳐 주는 한편, 한누리 주민들은 타지 사람들과의 반가운 교류를 통해 잃어버린 삶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직 3년 남짓된 센터 운영이지만 매출액은 놀랍게 성장하고 있다. 2011년 7천 8백만 원에 조금 못 미치던 총 수입은 1년 사이 1억 원을 넘겼다. 전년대비 35.6%의 성장이다. 지금은 입소문을 통해 중소기업들과의 연계까지 이루어지고 있지만 초반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특히 2010년 인근 안동을 기점으로 발생된 구제역 파동으로 도시민유치사업이 전면 중단되면서 사업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때는 도시민 유치 대신 워크북을 발간하고 농어촌공동체 회사지원 사업을 유치하는 방식으로 힘든 시기를 극복하기도 했다. 지금의 사업성과는 이렇게 슬기롭게 다져진 운영기반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시골 사람들이 변화한다
영화 <워낭소리>를 보면 재미있는 것 중 하나가 할머니의 푸념들이다. 평생 주인을 바라보고 일만 해온 소와 식구들을 지켜내기 위해 역시 일생을 쉴 새 없이 일해 온 할아버지. 그 사이에서 할머니는 ‘무뚝뚝한 영감 만나 평생을 아무것도 못해보고 죽게 생겼다’며 푸념한다. 영화에서 할머니의 푸념은 감초같은 역할을 하지만 현실에서 보면 바로 할머니의 말과 같은 것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삶이었다. 인생의 재미없이 평생을 허리가 낫처럼 휘도록 일했지만 여전히 쓸쓸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해 한누리 권역에서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파머스밴드에서 할아버지들이 공연을 위해 선글라스를 쓰고 오셨어요. 그런데 막상 밤이 되어 무대에 오르시니 깜깜해서 악보가 보이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결국 선글라스를 돋보기 안경처럼 코에 걸치고 연주하셨죠. 한누리 어버이 합창단을 조직했는 데 할머니들 허리가 휘어 있어서 노래 한곡이 끝날 동안 꼿꼿이 서 계시기도 처음엔 힘들어들 하셨죠. 계속 피나는 연습을 하셔서 다행히 공연 날엔 한 분도 빠짐없이 허리를 펴고 드레스 입고 노래할 수 있으셨어요. 평생에 처음 그렇게 무대에 서신 모습을 보고 가족들도, 사람들도 많이 울었죠.”
최병호 위원장은 “권역센터의 수익이 가치 있는 것은 달리 수익 창출을 기대하기 힘든 가난한 산골 마을에서 기존의 자원을 이용하여 상당한 수익을 거둬들였다는 것과, 그 수익이 온전히 마을 발전을 위한 기금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고령화된 마을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이러한 변화들은 마을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 찬 젊은 세대 귀농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중 가장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최병호 위원장이다. 위원장은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체험하고 보고 느끼며 스스로 변화해나갔기 때문에 사업을 이끌어 가는 것이 가능했고, 또 보람도 많이 느꼈다”고 한다. 최근에는 마을 취지를 알고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도시 사람들의 도움도 늘어나고 있다. 동국대·경희대 한의대에서는 주민들 무료 진료를 맡아 주기도 했고 지역 사진작가는 어르신들을 위해 장수 사진 촬영에 발 벗고 나서기도 했다.
사업 초창기부터 시작된 지역 어르신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한몫했다. 최 위원장은 한누리 권역 사업 초기에 많은 도움을 준 것도 주민 어르신들로 구성된 자문 위원회라며 지역 어르신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을 어르신들은 이론으로 배울 수 없는 노하우를 가지고 계십니다. 농업을 이론적으로 공부한 저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경험적 지식에 무릎을 탁 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지혜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저희 워낭마을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요.”
지역 주민들의 도움은 특히 오래된 지역자원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 특히 운계리에 있는 마을당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지역 어르신들은 손수 건축기자재를 나르며 도움을 주었다. 지역자원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권역리더들의 헌신
본인 스스로가 귀농인인 최 위원장은 특이하게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농사꾼이 꿈이었다고 한다. 판검사가 되기를 원하셨던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농촌 개혁가의 길을 택한 아들은 결국 돌아가시기 직전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냈다. 농촌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이기에 권역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고 무엇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도 머릿속에 확실했다. 대학 졸업 후 이런저런 사회 경험들이 지금은 사업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하는 그가 결국 귀농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종교인이기도 한 그는 수익이나 시설 면의 경영적인 변화보다는 기본적인 가치 변화를 지향한다.
“원래 우리나라 농촌 사회에는 두레와 향약 같은 소중한 가치들이 많이 있지요. 저는 그 정신을 다시 살리고 싶습니다.”
도시화의 영향으로 젊은 층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무너져간 농촌의 정신을 다잡아 사회운동으로 이끌고 싶은 것이 최병호 위원장의 평생의 숙원이다. 그가 생각하는 정신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공동체 가치’이다. 신념을 추구하다 보니 길이 열렸고 그러다 보니 큰 상도 주어졌다. 2011년엔 전국지역리더상 개인부분을 수상했고 대한민국 농어촌 마을대상 평가 리더부분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물심양면 봉화군의 도움도 컸다. 사업 추진금 마련을 위한 공무원들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사업을 끌고 오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공모 사업 등을 통해 유치비를 마련하고 사업 실현에 적극적인 도움을 준 것은 군의 공무원들이었다. 특히 초반 상운면의 산업경제담당이었던 김규하 씨는 권역 운영센터 활성화를 위한 전원생활학교를 개설하는 등 여러 가지 공헌을 하기도 했다. 사업 추진 전 2001년 1,405명이던 인구가 2006년 1,216명으로 급감하기도 했던 한누리 워낭마을은 귀농 등의 효과로 2011년 1,183명으로 조사되며 감소 추세가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인구 감소가 줄어들고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지역 어르신들의 생활이 바뀌자 사업은 자연스럽게 바퀴를 물린 듯 돌아가기 시작했다.
운영진들은 귀를 열고 주민들의 요구에 맞추어 사업계획을 수정하며 정비해 나갔다. 2012년 말 사무장 활동비 지급이 종료되자 안정적으로 사업이 정착되기까지 수익을 보류하는 방안을 만장일치로 결정해 개인의 손해를 감수하여 권역 재정 강화에 보탬을 주기도 했다. 주민들의 도움으로 유지 관리비가 절감되는 사례도 있었다. 농산품 가공이나 저장에 대한 지식이 없던 마을에 저온 저장고를 짓고 장류 가공시설을 정비하여 방문객에게 판매하는 시스템도 갖추게 되었다. 주민들은 이제 자기 밭이 잘 되기 위해서는 이웃의 밭도 잘 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차근차근, 공동체 정신이 보물처럼 쌓여가고 있었다.
미래의 농촌, 안심 마을!
한누리 권역 개발은 어느 한 분야에 치중 되어 있지 않고 전 방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그 강점이 있다.단순히 소득의 증대나 문화 복지, 관광 자원의 개발과 같은 하나의 프로그램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산골 마을을 살리기 위한 모든 요소가 총체적으로 연계되어 활용·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군의 노력이나 민간의 노력, 주민의 염원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마을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하나 된 결과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이러한 마을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권역센터 앞에 있는 조형물이다. 앞에서 보면 사람이 지구를 향해 다가가는 역동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 조형물은 위에서 보면 태극 모양을 띄도록 설계되었다. 지역 미대생들의 아이디어와 기술 도움을 받아 만들어진 이 조형물은 한누리 권역 정신인 ‘공생’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귀농하신 분들 중에 암환자가 두 분 계세요. 현재 마을 사업에서도 아주 주도적인 역할을 해주고 계십니다. 그 분들을 보면서 생각한 것이 있어요. 바로 ‘안심마을’ 입니다. 좋은 공동체란, 내가 병들어 죽어도 남은 가족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마을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신뢰하고 보듬어 주고 또 함께 위기를 헤쳐나가서 ‘내가 죽어서도 안심할 수 있는 마을’이요.”
‘안심마을’은 최병호 위원장이 꿈꾸는 한누리 권역의 미래이다. 고령화된 농촌 마을이었던 한누리 권역. 평범한 ‘과거의 마을’이었던 이 곳이 미래 지향적 가치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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