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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래섬에서 피어난 3백만 송이 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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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섬과 바다다. 에메랄드 빛 망망대해에 점점이 박힌 섬은 자연이 빚은 하나의 예술작품 같다. 쉽게 갈 수 없기에 늘 그립고 하늘과 바다를 온전히 품을 수 있어 낭만적인 곳, 우리나라 섬의 4분의 1이 몰려 있는 신안군이다. 전남 무안군의 섬 지역만을 모아 1969년 새로운 무안이란 뜻의 신안군이 탄생했다. 유인도 72개, 무인도 932개 등 모두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신안군에는 ‘천사의 섬’이라는 별칭이 더해졌다. 가까이는 압해도에서 저 멀리 가거도까지 크고 작은 섬에는 바다와 더불어 사는 신안군 사람들이 있다. 바다너머 섬 밖 세상을 꿈꾸던 소년들은 가슴 속에 저마다의 불꽃을 키웠으니, 우리나라 추상화의 거장 김환기 화백과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대통령이 나고 자란 섬도 이 가운데 있다. 거친 바람과 파도, 작열하는 태양은 특이한 식생과 감탄이 절로 이는 절경을 선사하기도 한다. 섬 곳곳의 기암괴석이 탄성을 자아내는 홍도, 멸종위기종 1급인 수달과 매가 살고 있는 장도, 조각한 듯한 수직기둥의 주상절리로 유명한 만재도 등 살아 숨 쉬는 원시의 자연을 만날 수 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신안군의 여러 섬 가운데 최근 뜨고 있는 섬이 있다. 신안군 최북단에 위치한 임자도다. 인구 3,000여 명의 조용하고 소박한 섬마을은 매년 4~5월이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임자도 튤립축제 때문이다. 푸른 바다와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을 배경으로 알록달록 튤립이 한 가득 피어나 어여쁜 자태를 뽐낸다. 섬과 꽃, 두 가지의 매력적인 조합이 전국의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임자도와 튤립, 우연이 필연으로
      임자도에서 처음부터 축제를 목적으로 튤립을 재배한 것은 아니다.그보다는 튤립 구근 판매를 통해 농가의 소득을 올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여기서 구근(알뿌리)이란 다음 해에 꽃을 피우기 위해 생육에 필요한 양분을 줄기 또는 뿌리에 저장하여 공처럼 둥글게 변형된 부분을 말한다. 구근 내에 양분이 충분하기 때문에 물만 잘 줘도 꽃이 예쁘게 피어 관상용으로 적합하다. 특별한 관리가 필요 없는 대신 토질에는 신경 써야 한다. 구근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부드럽고 배수가 잘 되는 사질토양이 좋다. 배수가 잘 되지 않으면 뿌리가 썩기 때문이다. 모래땅으로 이루어진 임자도는 튤립이 잘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임자도 여자는 모래 서 말은 먹어야 시집을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임자도는 모래가 많은 섬이다. 임자도의 토질과 튤립의 생육조건이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우연히 임자도로 귀농한 김정원(현 한국화훼구근생산 영농조합법인 대표) 씨가 알게 되었다. 김정원 씨는 대를 이어 임자도에서 대파 농사를 짓고 있었다. 구근식물인 대파 역시 모래땅에서 잘 자랐다. 문제는 대파의 시장가격 변동 폭이 너무 크다는 점이었다. 잘 될 때는 그야 말로 ‘대박’이 나지만 공급 물량이 많아 값이 폭락하면 ‘쪽박’을 차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안정적이지 못한 수익 구조는 그대로 농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김정원 씨는 목포대 최고경영자 과정을 다니며 임자도에 적합하면서도 안정적인 농작물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2년 목포대 해외연수로 간 네덜란드에서 우연히 임자도의 토질과 네덜란드의 토질이 매우 유사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거다 싶었다. 튤립 구근을 생산해 판매하면 경쟁력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안군 농업기술센터, 원예학회 회장인 목포대 김병운 교수 등과 함께 튤립 재배에 나섰다. 조금씩 재배면적을 늘려가는 동시에 주민들에게 튤립 구근 생산에 대해 홍보했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주민들도 튤립 구근이 의외의 소득을 올리는 것을 보자 하나둘 심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10만㎡에 이르는 면적에 튤립을 재배하게 되었다. 전국 최대 규모다. 전 해 가을에 심은 튤립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매년 4~5월 알록달록 섬을 뒤덮은 튤립은 장관을 이루었다.
      이 모습을 본 군에서는 임자도만의 특색 있는 축제로 제격이라 판단했다. 대광해수욕장 외에는 임자도에 이렇다 할 관광자원이 없던 터였다. 튤립을 관광자원으로 재창조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튤립 농가가 밀집해 있는 임자면 대기리 회산마을 일대를 네덜란드의 상징인 풍차와 대형 전망대를 두고 파라솔을 설치하는 등 축제장으로 꾸몄다. 튤립 농가에는 구근 저장 창고를 지원해주고 입장료 일부를 돌려주는 것으로 민·관이 상생할 수 있는 방책이 마련되었다. 2008년 임자도 튤립축제 첫 회에 10일간 5만 여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섬 축제로는 이례적인 성공이었다.
      신안군 대표 축제가 되다
      여객선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해가 갈수록 임자도 튤립축제를 찾는 관광객들은 늘어나기만 했다. 2010년엔 10만 명을 넘어서더니 2012년엔 12만 명으로 증가했다. 축제를 다녀간 사람들은 전국 어디서도 볼 수 없던 튤립의 향연에 감탄을 연발했다. 빨간, 노랑, 보라, 파랑, 흰색 등 원색의 화사한 튤립 사이를 타박타박 거니는 기분은 이곳 임자도 튤립축제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호사다. 이중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검은색 튤립, ‘퀸 오브 나이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빛깔의 튤립에 사람들은 저마다 사진기를 꺼내들기 바쁘다. 40여 종에서 시작해 최근엔 72종까지 튤립 품종을 늘렸다. 꽃길 끝에 놓인 이국적인 풍차를 보고 있노라면 지구 반대편 네덜란드에 온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축제의 즐거움이 이게 다가 아니다. 색소폰 연주, 튤립 화분 만들기, 튤립 따기 체험, 꽃마차 타기, 꽃 조형물 등 다양한 볼거리·체험거리를 선보이고 있다. 대광해수욕장에서 즐기는 승마체험도 튤립축제의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다. 대광해수욕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넓고 깨끗한 백사장을 자랑한다. 백사장의 길이는 12km나 되고 폭이 300m가 넘는다. 해수욕장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려면 걸어서 1시간 20분, 자전거로도 30분이나 걸리는 광활한 면적이다. 대광해수욕장은 이미 승마동호인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 말을 타고 백사장을 마음껏 내달릴 수 있는 전국에서 거의 유일한 곳인 까닭이다. 대광해수욕장 인근에 민간인이 운영하는 승마체험장이 들어서면서 승마동호인들은 물론 축제를 찾은 관광객에게 색다른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튤립축제로 인해 지역 특산물의 판매량도 급증했다. 임자도 전장포에서 생산되는 새우젓은 전국의 60%나 차지할 정도로 유명하다. 모래갯벌에서 자란 민어 어획량도 전국 50%에 달한다. 축제장 한쪽에 마련된 특산물 코너에선 새우젓을 비롯해 민어·천일염·함초·김·낙지 등 바다 특산물과 대파·양파 등 농산물이 판매되어 임자도 농어민들의 수익 증대를 가져왔다.
      축제 개최 초창기 편의시설이 미비하고 섬으로 들어오는 배편이 부족해 불편사항이 많았다. 이에 지역 주민들이 나서서 숙박시설, 식당, 판매시설 등을 하나둘 조성해나갔다. 축제기간에는 배 운항횟수도 늘렸다. 예전에는 배를 타기 위해 족히 1~2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운항횟수가 늘어나면서 선착장에서 줄을 길게 서야 하는 번거로움이 많이 해소되었다. 배에서 내리면 바로 축제장까지 올 수 있도록 무료 셔틀버스도 수시로 운행하고 있다.

      민·관 릴레이식 추진체계
      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끈 데에는 지역 주민의 역할이 컸다. 임자도 튤립축제는 사전 기획단계에서부터 주민으로 이루어진 축제위원회가 참여하고 있다. 튤립농가, 마을 이장, 청년회장, 노인회장, 상가번영회장 등 30여명이 주축이 되어 축제 기간, 프로그램, 주요시설물, 교통 대책 등에 대해 논의한다. 단순히 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1억 3000만원(2013년 기준)에 달하는 행사 예산을 직접 집행하기도 한다. 축제위원회가 보다 주도적이고 자율적으로 축제를 운영할 수 있도록 군에서 예산집행권을 부여한 것이다. 2011년에는 ‘신안군 축제위원회 설치 및 운영 조례’를 제정해 축제위원회의 자율적인 예산 집행을 공식적으로 공표하기도 했다. 또한 임자면 노인회와 부녀회에서 축제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축제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지역 주민의 주인 의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임자도 튤립축제의 성공적인 개최는 군을 대표할 만한 축제가 마땅치 않았던 신안군의 입장에선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임자도의 대표 관광지인 대광해수욕장과 연계하여 축제의 편의시설을 확대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튤립공원 조성이 추진되었다. 2008년 도서종합개발사업 10개년 계획에 임자도 튤립공원 조성사업이 포함되어 국비 29억7400만원, 지방비 12억 7500만원, 총 42억 49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2010년 3월부터 전체 면적 12만㎡의 튤립공원 조성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중 튤립 재배면적은 6만 8000㎡에 이른다. 신안군에서는 튤립공원 조성 전담 부서를 따로 두기보다 전문성을 갖춘 여러 부서가 협의·분업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튤립공원에 식재될 튤립 재배와 관련해서는 특별히 전문지식이 중요한 만큼 농업기술센터에서 직원을 파견해 직접 관리하게끔 했다. 수변 정원, 토피어리 정원, 해변유채꽃길 등 조경 사업은 환경공원과에서, 각종 분재를 감상할 수 있는 유리온실 건축은 대광개발사업소에서 전담했다. 그리고 화장실, 조형물 등 기타 편의시설은 도서개발과에서 추진했다. 긴밀한 협력을 통해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 해결해나갔다. 대표적인 경우가 해풍막 설치다. 튤립공원이 바닷가에 인접하다보니 겨울이나 봄철 강한 모래바람으로 조경수가 자꾸 쓰러지고 고사했다. 각 과에서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냈는데, 그중 대나무를 발처럼 엮어서 설치하자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일반적인 가림막에 비해 비용은 적게 들면서 효과적으로 바닷바람도 막고, 더불어 튤립공원의 자연친화적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는 대나무 해풍막이 완성되었다. 튤립공원이 조성되면서 축제기간이 아닌 상시에도 공원 관리 인력이 필요해졌다. 공원 안내 요원과 주변 환경정비에 임자도에 거주하는 60세 이상 노인 20여 명을 고용해 지역 내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농가 소득원에서 시작된 관광자원을 신안군이 발전시키고 이를 다시 민간에서 협력·관리해나가는 릴레이식 추진 체계가 축제 성공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축제 초창기 튤립농가에서 진행되던 축제는 튤립공원 조성을 계기로 이원화되었다. 즉, 구근 생산은 튤립농가에서 전담하고 축제는 튤립공원에서 진행하게 된 것이다. 이는 구근 생산을 위한 튤립과 축제용 튤립의 재배 및 관리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근 생산을 위해선 꽃이 피면 바로 줄기를 잘라내야 한다. 그러면 20일 후 알맞은 크기의 구근이 생산되고 이를 판매 전까지 창고에 저온 저장해둔다. 반면, 탐스럽게 활짝 핀 꽃을 보기 위한 축제에선 만개할 때까지 그대로 둔다. 또한 내년 축제를 위해 구근 역시 그대로 두어야 한다. 축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선 농가와 축제의 이원화는 자연스런 수순이다. 다만 2009년 대파 값이 뛰자 일부 튤립농가가 다시 대파재배로 선회하는 일이 발생한데다, 수확기·구근 선별기 도입 등 튤립농가가 직면한 과제로 튤립 구근 산업이 다소 위축된 감이 있다. 신안군에서는 튤립농가 육성을 위한 다방면의 지원책을 고심 중이다.

      사계절 찾아오는 섬으로
      임자도의 관광산업은 튤립축제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에는 여름철 대광해수욕장 피서 인파가 전부였다. 그러다 튤립축제 개최로 꽃이 만개한 4~5월에 엄청난 관광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이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가을과 겨울 등 축제 비수기에도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튤립공원은 임자도가 사계절 즐길 수 있는 섬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튤립공원 내 유리온실에는 분재와 함께 열대기후의 진귀한 식물을 전시하고 한쪽엔 사진 전시장도 마련할 예정이다. 대광해수욕장에서 6월 열리는 20~40km의 말마라톤 대회를 기념하기 위해 백사장을 달리는 역동적인 말 동상을 설치하고 포토 존도 마련하였다. 또한 나무를 새, 동물 모양 등으로 깎아 장식하는 토피어리 전시장을 더욱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이런 계획에 청신호가 커졌다. 관광객 증가로 사업 타당성 조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1,700여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지도~임자 간 총 연장 4.99km의 연도교 가설공사가 확정된 것이다. 실제 슬로시티로 유명한 신안군 증도의 경우, 연도교 설치 전에 25만 명이던 관광객이 가설 이후 80만 명으로 늘었으며 이젠 100만 관광객을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지도~임자 간 연도교가 완공되면 여객선을 타고 이동하는 불편함이 완전히 해소되어 더욱 많은 관광객들이 임자도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임자도의 관광산업은 아직까지 튤립축제를 통한 볼거리 중심의 일차원적 접근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향후 튤립을 활용한 각종 기념품과 가공품 등이 개발되고, 튤립 농가를 중심으로 한 구근 산업이 함께 육성된다면 신안군 대표 축제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꽃 축제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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