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전국의 잘생기고 빼어난 바위들이 금강산에 한데 모여 누가 최고인지 겨루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울산의 한 바위가 설악산까지 왔다가 수려한 풍경에 그만 금강산인 줄 알고 그대로 머물렀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 지어진 바위가 강원도 고성의 울산바위다. 설악산이 금강산과 비견될 만큼 절경이란 의미이기도 하지만 금강산이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설악산과 금강산 사이에 자리 잡은 고성은 우리나라 최 동북 접경지역이다. 나라가 둘로 나뉜 상황에서 군마저 둘로 갈려 고성군의 위쪽 절반은 휴전선 너머에 있다. 전체적으로 험준한 산악지형인데다가 면적의 63.5%가 군사지역으로 묶여 있는 고성은 여러모로 제약이 많고 발전하기가 어려운 환경이다. 그 대신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우수한 자연경관과 접경지역이라는 문화적 특이점을 살려 관광과 휴양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청정해역의 풍족한 수산물은 지역 경제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고성은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무분별한 포획으로 인한 수산 자원의 고갈은 지역 경제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인구 노령화와 일자리 감소 등 우리나라 농어촌이 겪는 고질적인 문제까지 더해졌다. 더욱이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지역을 찾던 외지인의 발길까지 뚝 끊겼다. 지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절실한 상황. 고성군은 과거 고성명태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에 돌입했다. 또한 신기술 고품질의 톱밥표고버섯으로 농가소득을 높이고 귀농 인구를 유입한다는 계획도 수립했다. 이러한 고성군의 경제 살리기 정책에 믿음직한 지원군이 있었으니, 바로 동해의 청정수역에서 뽑아 올린 해양심층수다.
고성 해양심층수의 대활약
해양심층수는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미래 수자원이다. 햇빛이 닿지 않는 수심 200m 아래 깊숙한 바다에 존재하는 심층수는 수온이 2℃ 이하로 일정하게 유지되어 유기물이나 병원균이 번식하지 않는다. 대신 미네랄과 질소·인·규소와 같은 무기 영양염류가 풍부하고 바닷물이 순환하며 끊임없이 재생되므로 고갈될 염려가 없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30~40년 전부터 해양심층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식품, 음료, 화장품 등 다방면에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1년부터 해양심층수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동해안의 여러 후보지 가운데 고성군 앞바다가 최적지로 선정되었고, 2005년 고성군 죽왕면 오호리에 국내 최초의 해양심층수연구센터가 건립되었다. 해양심층수 개발의 연구기반을 마련한 고성군은 2006년 민·관 공동투자로 ㈜강원심층수를 설립, 6km 길이의 취수관을 통해 1일 3,000톤의 해양심층수를 생산하고 있다.
해양심층수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해양심층수 먹는 물 ‘천년동안’은 일반 샘물에 비해 미네랄을 최고 16배 이상 함유하고 있다. 특히 마그네슘, 칼슘, 칼륨 등 무기 미네랄이 풍부해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노폐물 배출, 대사활성 등의 효능도 뛰어나다. 또한 해양심층수는 누룩곰팡이나 효모의 활성도를 높여 각종 장류와 김치 등을 담그기에도 좋다. 부영양성과 청정성, 저온성이 탁월해 양식장의 용수로도 주목받고 있다. 피부콜라겐의 생성을 촉진하고 아토피성 피부염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어 기능성 화장품이나 바닷물로 심신을 치료하는 해양요법, 타라소테라피(Thalassotherapy)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고성군은 해양심층수를 다방면의 산업과 접목하기 위해 전문 시설을 갖추어나가고 있다. 지난 해 해양심층수 전용농공단지를 완공함으로써 해양심층수 식·음료 제조업의 생산기반을 마련했으며 앞으로 해양심층수 과학관, 해양심층수 R&DB 센터 그리고 타라소테라피 시설을 갖춘 리조트 건립을 적극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해양심층수를 활용한 산업은 이제 걸음마 단계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군과 지역민이 거는 기대가 크다. 특히 각종 지역 농수산물을 고품질의 특산물로 재탄생시키는 데 해양심층수의 활약이 눈부시다. 최근 고성명태 가공과 톱밥표고버섯 재배에 해양심층수가 활용되면서 이러한 사실이 다시금 입증되었다.
고성명태의 부흥을 꾀하다
“예전에는 고성 앞바다에서 명태가 정말 많이 잡혔습니다. 이 명태를 해풍에 잘 말린 다음 끓여 먹었던 게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진짜 해장국이에요. 요즘에야 인제 황태에 밀린 감이 좀 있지만 원래 명태의 본고장은 여기 고성이었습니다.”
고성군 접경개발기획단의 이성수 단장은 화려했던 고성명태의 명성이 퇴색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고성 앞바다에선 연간 1만 톤 이상의 명태가 잡혔다. 명태 잡이 어선은 만선의 깃발을 힘차게 휘날리며 귀항하곤 했다. 그러나 명태새끼인 노가리까지 무차별로 잡아들이고, 지구온난화로 수온이 명태의 서식에 알맞은 3~4℃를 웃돌자 동해 앞바다에서 명태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1990년대 절반 가까이 줄더니 2000년대에는 1000톤에도 미치지 못했고 2010년에는 1톤 남짓 어획되는 상황에 처했다. 더 이상 동해에서는 명태가 잡히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지역 내 명태 가공 산업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1990년대 56개소 672명에 달하던 명태 관련 사업체와 종사자들은 설 자리를 잃어 갔다.
그러던 2010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고성군의 자매결연을 계기로 양질의 러시아산 냉동명태를 직수입하게 되면서 명태 가공 산업의 꺼져 가던 불씨를 살릴 수 있게 되었다. 이미 국내 명태 가공시장을 코다리와 황태가 양분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방식이 아닌, 차별화 전략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고성군의 해양심층수를 접목한 새로운 고성명태가 개발되었다. 해양심층수에 담갔다가 바닷바람에 자연 건조한 고성명태는 수돗물을 이용한 일반 북어보다 마그네슘·인 등 미네랄 함량이 우수하고, 특히 숙취해소 및 독소를 배출하는 함황 아미노산을 5배 이상 함유하고 있다. 해양심층수를 이용한 고성명태는 제조기술에 대한 특허인증도 받았다.
고성명태 가공 산업의 재도약을 위해 노후화된 기존 재래식 설비의 정비와 확충도 필요했다. 고성군에서는 사업 초기부터 지역 내 6개 단체 71명으로 구성된 (사)강원고성명태생산자협회(회장 원순철)를 결성하여 민·관이 함께 사업을 추진하도록 했다. 지역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함은 물론, 세부적인 계획에 있어 지역 내 전문가들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함이다. 군비만으로는 사업 추진이 어려워 다방면으로 방법을 모색하던 중, 접경지역이라는 특수성을 활용해 특수상황지역개발사업으로 국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원료를 보관할 수 있는 3,286㎡ 면적의 냉동냉장창고 건립에 65억 원(국비 37억8,000만원, 군비 27억2,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되었고, 12개소 5,220㎡(580틀) 면적의 해풍 비가림 수산물 자연건조장 조성에는 총 13억2,500만원(국비 5억 원, 군비 8억2,500만원)이 소요되었다. 특히 냉동냉장창고 건립으로 수입 냉동명태가 부산항을 통해 들여와야 했던 번거로움과 물류비용이 해소되었다. 지금은 가까운 속초항을 이용하고 있다. 연계협력사업으로 수산물가공시설의 HACCP 지원을 위해 5개소 40억 원이 지원되는 데, 2012년에는 고성명태 수산물가공시설에 8억3,000만원이 투입되어 위생적인 설비라인이 갖추어졌다.
고성명태 가공 산업과 관련하여 지역 내 새로운 일자리도 생겼다. 냉동냉장창고에 16명의 상시 고용이 이루어졌으며 명태 해풍건조장에 160명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또한 수산물가공처리장에 121명, HACCP 가공공장에 30명이 채용되어 지역 경제가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지난 3년간 846톤의 고성명태가 가공·생산되어 21억 9,700만원의 주민 소득을 올렸다. 사업 초기 수익성이나 지속성, 발전 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주민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3년간 고성군의 지속적인 사업 추진과 ‘강원고성명태’의 지리적 표시제 등록, 한국 관광산업 상품 브랜드 인증서(Q마크) 획득 등 여러 가지 성과로 이제는 주민 모두가 참여하고 싶은 지역 사업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톱밥표고버섯으로 되살아난 농가
표고버섯은 전통적으로 원목재배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원목가격 상승으로 농가 소득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면서 톱밥재배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표고버섯 주산지인 중국과 일본에서는 현재 90% 이상이 원목 대신 톱밥재배로 전환한 상태다. 톱밥재배 표고버섯은 원목재배에 비해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3배 많고 출하 가격도 30% 고가에 판매되는 등 생산성 면에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농가의 80% 이상이 원목재배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성군에서는 적극적으로 지역 농가에 톱밥재배를 권장하고 나섰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고성군 간성읍·토성면 5개 마을에 22동의 3중 자동화 재배시설과 톱밥 배지 330.2톤이 투입되었다. 총 사업비는 9억3000만원(국비 5억8000만원, 군비 1억4500만원, 자부담 2억500만원), 고성명태와 마찬가지로 특수상황지역개발사업으로 진행되었다.
원목재배에서 탈피한 고성 톱밥표고버섯에는 특별한 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해양심층수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톱밥배지에 수돗물 대신 해양심층수 처리를 했다. 여러 배합비를 연구한 결과 0.9%의 해양심층수 처리 시 가장 좋은 표고버섯이 생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확량이 20% 더 증가했으며 중풍 및 치매 예방, 고혈압 예방, 집중력 강화 등에 효과적인 GABA(Gamma-Amino Butyric Acid) 성분도 65.3%나 향상되었다. 또한 타 지역의 2중 재배시설과 달리 단열기능을 추가한 3중 재배시설을 설치해 여름철과 겨울철에도 수확량이 많고 고품질의 표고버섯을 생산하고 있다. 톱밥과 심층수를 활용한 고성군만의 독창적인 표고버섯 재배기술은 고성믿음표고영농조합법인 문종복 대표와 고성군 농업기술센터 조병주 연구사의 합작품이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표고버섯 농장을 경영한 현장 전문가와 신기술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는 연구가가 지역 발전에 뜻을 모은 것이다. 그 결과 지역 소득이 크게 증가했다. 2011년 톱밥표고버섯 62.5톤 생산에 매출액이 5억 6,250만원, 2012년에는 82.5톤에 7억 6,250만원을 기록했다. 고성군 톱밥표고버섯의 뛰어난 품질 덕에 kg당 평균 판매단가 역시 9,000원에서 1만원으로 올랐다.
톱밥표고버섯 재배와 관련된 지역 내 일자리도 조성되었다. 톱밥재배사를 설치하고 관리하는 상시 인력으로 14명, 톱밥 하차 및 배지 입상 인력으로 33명이 채용되었다. 고성군 톱밥표고버섯의 고품질과 수익성이 알려지면서 귀농인구를 늘리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귀농인구는 현재 13가구 50여 명, 평균연령이 40대이다. 오로지 톱밥표고버섯을 재배하기 위해 도시를 떠나 귀농을 택한 이들이기에 열정과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60~70대가 대부분인 지역 어르신들은 “얼마만의 젊은이들이냐.”며 반가움을 감추지 않는다. 청·장년층의 유입은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침체되어 있던 고성 농가에 활력을 주고 있다.
청정자연 웰빙 특산물로 승부하라
고성군은 고성명태와 톱밥표고버섯을 주력 특산물로 내세워 발전 시켜나간다는 방침이다. 명태 가공 산업 클러스터 조성을 위하여 냉동냉장시설 인근 농수산물가공처리장 11동의 시설개선사업을 20억 원의 예산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2014년부터는 명태거리, 오토캠핑장 등으로 이루어진 고성명태웰빙타운 조성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고성명태의 브랜드를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 명태 홍보전시관을 설치했으며, 1999년부터 매년 10월 개최해 온 고성명태축제를 한층 풍성한 내용으로 꾸민다는 계획이다.
톱밥표고버섯은 해양심층수 배지처리 기술을 중점적으로 보급해 지역 내 재배면적을 더욱 늘려나갈 예정이다. 다만, 전국적으로 톱밥표고버섯 재배가 증가하면서 중국산뿐 아니라 국내산 배지 역시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이에 고성군에서는 톱밥 배지를 농가에서 자체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톱밥배지를 구입하지 않고 자체 제작하면 40% 가량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고성군이 지역 농수산물 특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해양심층수라는 고유의 천연자원을 현명하게 활용한 덕분이다. 여기에 군의 적극적인 지원이 덧붙여졌다. 시설을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민간에만 위탁·관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 산업 일선에 참여하여 생산 농가를 지원하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지역을 대표할 만한 웰빙 농산물을 하나 둘 개발시키고 있는 고성군. 산과 바다, 호수가 어우러진 고성군의 수려한 풍광을 찾아 가는 즐거움과 함께 이제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먹을거리에 대한 기쁨이 하나 더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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