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시의 ‘나릿골’ 감성마을 도시재생
이기태
로컬 스토리 에디터
삼척시 삼척항에서 북쪽을 향해 쳐다보면 오렌지색 지붕들이 보이는 산 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은 2016년부터 삼척시에서 도시재생을 하면서 새롭게 감성마을로 불리 우는 '나릿골 마을'이다.이곳 마을 일대는 오래전부터 정라진(汀羅津),정라항으로 불리 우는 곳으로서 정라라는 지명은 '비단같이 아름다운 물가'라는 뜻이다.
나릿골은 거주민의 30%가 어업에 종사하고 있으며,60~70년대 생활 정취가 남아있는 계단과 골목길,담장 등을 간직하고 있는 전형적인 항구 문화가 남아있는 어촌 산마을이다. 250여 채의 지붕들이 서로 다닥다닥 맞댄 나릿골 산 마을에서 내려다보면 손에 잡힐 듯 바라보이는 곳이 삼척항이다.
항구 옆 도로에서 마을 진입로에 들어서 자 먼저 보이는 건 광장 겸 주차장이다. 광장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자그마한 건물이 하나 있는데,나릿골안내센터이다. 작은 부지에 최대한 디자인을 고려한 건물이 아닌가 싶다.색감으로 만 치면 산토리니의 어느 골목길이다.안을 들여다보니 사람은 없고 마을 안내지도가 외부에 비치되어 있었다.안내 지도를 들고 돌아서니 그 옆 정자에 동네 할머니들인 듯 싶은데 ,한낮 여름 폭염을 피해 낮잠을 즐기고 들 계셨다.시골 마을의 정겨운풍경에 푸근함이 절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다시 광장으로 내려오자 마을 진입로에 ' 나릿골 말랑이 슈퍼마켓 '이라는 상호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픽하고 터진다.
다름 아니라 필자의 막내 처제 이름이 지금이야 개명을 했지만 전에 말랑이란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처갓집은 내리 딸만 낳자 막내 처제 이름을 낳기도 전에 사내아이를 바라는 마음을 실어 한자로 끝말 자에 사내랑을 넣어 이름을 미리 지어버렸다고 한다.이마을에도 그런 비슷한 내력이 보이는 상호가 보여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음식으로 만나는 어촌의 역사
광장에서 진입로에 들어서자 나릿골감성마을 공동체 식당 할머니의 부엌이 보였다. 오전 11시 부터 오후 3시까지 문을 여는 할머니의 부엌 메뉴를 살피다가 눈에 띄는 이색 메뉴로 꽁치 국수가 보였다. 이곳 영동지방에서는 지금이야 파는 곳이 없지만 겨울철에 도루묵,양미리 축제가 열리면 맛볼 수 있는 음식으로 도루묵 장칼국수,양미리장칼국수가 있다.
어촌마을의 음식에는 배고프던 시절의 내력이 담겨 있다. 겨울철에 바다 고기가 안 잡히면 어촌에서는 겨울철 동해안에서 흔하게 잡히던 도루묵과 양미리가 장칼국수와 보태져 별미가 되었다. 겨울이면 집집마다 양미리를 걸어두고 말리는데 이곳 사람들의 중요한 한겨울 양식이 되었다. 나릿골 할머니의 부엌은 음식 하나로 지나온 어촌 마을의 역사를 말하는 곳인 셈이다.
이곳 나릿골에는 희망길,추억길,바람길,바다길 이렇게 4개의 길이 있다. 아마도 감성마을로 알려지면서 외부 관광객을 위한 길인 듯싶다.먼저 가까운 할머니의 부엌 앞에 있는 희망길을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빈집으로 만든 전시관,미술관
골목 입구 담벼락에 그려진 물고기 모양의 안내 표지판을 따라 비탈길 골목길에 들어서니 보행자 안전을 위한 야트막한 하얀 담장과 벽에 그려 진 등대 그림이 정겹게 다가온다 마을 지명 앞에 왜 감성마을이라 붙였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희망길을 올라가서 처음 마주한 곳은 나릿골 달 포토존이다. 정라항 항구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항구와 어우러진 시원한 동해바다 풍경은 여행객의 피로를 단숨에 가시게 해 주었다.
희망길을 걷다 보면 빈집으로 만든 작은 전시관을 마주하게 된다. 코로나19로 폐쇄되어 있었지만,다행히 유리문이라 내부 일부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이곳에는 나릿골 사람들의 희.노.애락이 사진과 글로 전시되어 있는 곳이었다. 어민들의 애환이 담긴 몇 장의 사진과 글만 읽었을 뿐인데,돌아서면서 나 자신이 마을과 아주 가까워진 기분마저 들었다.
무인카페 쉼터
향기원_
희망길을 빠져나와 언덕을 향해 얼마쯤 걷다 보니 느티나무와 벤치가 놓여 진 마을 향기원과 무인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향기원은 사계절 꽃이 피는 힐링공간으로 농촌마을 어귀의 인심과 정이 넘치는 공간인 느티나무 정자를 연상하게 만든다.비록 자판기만 비치된 무인 카페이지만 시원한 아이스커피는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객의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하였다.
무인카페에서 잠시 쉬다 보니 택시 한 대가 지나갔다. 시내에서 장을 보아서 오는지 할머니 한 분이 내리셨다. 밭일을 하던 마을 주민에 의하면 마을 꼭대기까지 택시가 들어온 건 몇 해 안된다며 일러주었다.도시재생으로 가장 크게 덕 본 혜택 중 하나라고 하였다.
좁은 비탈길을 지나서 마을 뒤편 바다 전망대가 가까워지는 곳에 의외로 주차장 시설이 잘되어 있어서 이후 부터는 자동차로 이동하였다. 이곳도 마을 뒤편 산 정상에 바다 전망대가 마을 지도에 표시되어 있어서 멋있는 풍경을 기대하며 가보았다. 보통 항구 옆 등대 마을에 가 보면 소방차 진입도 어려운 곳이 많은데 이곳은 넓은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어 보행약자들도 충분히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바다 전망대에 서자 지금까지 지나온 곳이 모두 한눈에 들어왔다.바다 전망대 자작나무 숲 벤치에 앉아서 동해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어 보았다.감성마을 나릿골 마을길은 정상으로 가면서 시시각각 서로 다른 풍경으로 시야에 들어와서 마을 둘러보기가 흥미롭기까지 한 곳이다.
빈집을 이용한 작은 미술관
산 정상 부근에는 빈집을 이용한 작은 미술관인 ‘정라항 그리go 작은 미술관’과 작가의 집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이곳 역시 코로나19로 휴관중 이었다.
산비탈 마을 골목길로 들어서니 다닥 다닥 붙어있는 집들 사이로 미로 같이 얽힌 골목길이 이어진다.아무생각없이 걷다 보면 제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재미있는 미로길이다.감성4길 바닷길로 이어지는 솔향기 전망대에 서면 백일홍 꽃밭 끝에 정라항과 마을 풍경이 배경으로 시야에 들어온다.가을이면 좋을 핑크뮬리 정원도 포토존으로 꾸며져 있는 곳이다.
산등성이 어촌마을인 나릿골마을이 감성 마을로 변모하기까지 어떠한 노력들이 있었는지 궁금하여 3대째 이곳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정라진협동조합’의 김장용이사장을 만나 보았다.
빈집 철거후 생긴 마을안 주차장
김장용 이사장과 만난 곳은 조합에서 운영하는 북카페인‘나릿골 담장카페’이었다. 2층으로 된 담장 카페는 감성 마을 길을 찾는 여행자들을 위한 쉼터로 정라진협동조합에서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마을 광장에서 진입로를 따라 얼마쯤 안 가서 보이는 곳이다.카페안에 들어서자 아름다운 정라항구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카페앞은 계단식 테크로 꾸며져 마을의 작은 행사도 이루어지는 곳이다.
나릿골 지명으로 본 마을의 역사
본격적인 인터뷰가 있기 전 먼저 김장용 이사장에게 마을을 둘러보는 동안 궁금하게 여겼던 나릿골마을의 재미난 지명 유래에 대해서 먼저 물어보았다.
나릿골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 가장 유력한 설로는 나루가 있는 마을이라는 나룻골이 변형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김장용 이사장은 이곳 정라진은 일제강점기때 정어리가 많이 잡히면서 정어리가공 공장인 유지공장이 생겼다고 한다.유지공장에서 정어리 기름으로 비누와,양초를 만들면서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하였으며, 심지어 마을 이름도 유지리로 지어졌다고 하였다.
이후 1980년대까지 명태와 노가리 ,오징어가 많이 잡히면서 나릿골 산마루 전체는 오징어와 명태 건조장이 되었다.이곳이 아니면 삼척 경제가 돌아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돈이 넘치면서 사람들도 많이 몰려들었다. 그렇지만 어항으로서의 좋은 시절은 수온 변화와 어획고 감소가 이어지면서 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또 다른 지명 유래는 나리꽃이 많이 피어서 나릿골이 되었다는 설이다. 나릿골은 완만한 언덕이 이어지는 산동네로서 골이 얕지만 물은 풍부했다고 한다. 습기가 많고 햇살이 잘 비치는 남향인 마을에는 나리꽃이 지천이었다고 한다.7~8월에 피는 나리꽃은 수수하면서도 화려한 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배고픈 시절에 마을 주민의 양식이 되었다고 한다. 참나리의 어린순과 알뿌리는 배고픈 춘궁기에 구황식물이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유래는 아마 일제강점기 때 삼척항이 개발되기 이전인 듯 싶다.
세 번째 나릿골의 유래는 난리골이다. 이지명 유래에서도 나릿골 마을의 웃픈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오징어와 명태가 많이 잡히면서 그 당시는 냉동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넘치는 어획물은 건조를 하여야만 했다. 산동네에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 있는데다,측량을 통한 소유권 등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더 건조장을 만들기 위해서 말목을 박다 보면 매일 이웃간에 난리가 났다고 해서 사람들이 난리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외에도 외지 배가 많이 들어오면서 기상이 악화가 되면 배가 못나가면서 며칠 씩 어선들이 정박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선원들이 돈이 떨어지면 굶어야 할 판이니 뭐라도 끓여 먹으려면 고추장이나 된장이 필요하게 되는데, 밤에 동네 민가에 와서 장독을 훔쳐가기도 하였다고 한다.그렇게 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밤에 몽둥이를 들고 보초를 서다 밤에 동네 입구만 들어서면 아주 혼을 내어서 쫓아내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뱃사람들이 그 난리골에 가면 난리가 나니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그러면서 동네 이름인 나릿골이 되었다는 유래이다.
나릿골 명칭에 대한 유래를 듣다 보니 나릿골마을의 흥망성쇠가 한눈에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김장용이사장
나릿골 감성마을 ‘정라진협동조합’김장용이사장 인터뷰
이사장님 나릿골이 감성마을로 거듭나기까지 협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배경과 그동안 해온 마을 사업들에 대해서 애기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가 정라진협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건 원활한 소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희 마을은 고령 마을에 어업의 쇠퇴로 빈집이 늘면서 주거 환경은 한마디로 귀신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들로 삼척시와 주민 간에 협의가 이루어지면서 마을 사업들을 진행하여야 하는데, 2016년 그 당시 마을 평균 연령이 74세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행정에서도 마을사업의 원만한 진행을 위해서 주민들로 구성된 마을 기구의 필요성을 느꼈고 그래서 저희 나릿골이 속한 정하동 4개 통의 마을 사람들이 만든 기구가 정라진 협동조합입니다.
조합이 결성된 후에도 마을 할머니들을 설득하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조용히 살고 싶다며 마을환경개선에 선뜻 손들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을회관에서 할머니들을 모시고 한집 건너 한집이 금방 다 쓰러져 귀신이 나올 정도인데 주거환경이라도 바뀌어야 자식들이라도 찾지 않겠냐며 설득을 하였습니다.지붕개량부터 시작하자 나중에는 서로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빈집이 하나 둘 늘면서 생긴 공간은 전망대,마을 주차장,마을 전시관,작은 미술관,쉼터 등으로 탈바꿈하고 마을길도 보수하고 넓혔습니다.그러면서 사람들이 찾지 않던 나릿골에 관광객들이 찾아오면서 마을에 게스트하우스도 만들고 나릿골 북 카페인 ‘나릿골 담장카페’를 비롯하여 할머니의 부엌도 협동조합에서 마을 공공사업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감성마을 나릿골이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라도 있는지요.
“마을이 깨끗해지고 정주 환경이 좋아지면서 땅값도 올라가면서 살러 오겠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필요한 건 젊은 사람들이 유입될 수 있는 일자리 창출이 문제입니다.산꼭대기 전망대 꽃밭 일대가 시유지인데요 그곳에 예를 들어 관광 전망타워라도 세워지면 부대시설로 카페나 지역 특산음식점 등이 생기면서 타워를 중심으로 관리 인력도 필요하고, 그곳에서 동네주민들은 지역 특산물인 건어물도 판매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일자리 창출을 통해서 고령화 된 이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유입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그리고 개인적으로 저가 마을에서 직책을 맡으면서 대외적으로 할 일이 많은데,유급 사무장이 없다 보니 세무 관계 등 행정적인 일도 저 혼자 해야하는 “ 어려움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을자랑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더니 김장용 이사장은 “저희 마을은 힘들게 살아온 만큼 정이 넘치는 마을입니다.4개통의 마을 주민들이 서로 얼굴을 다 알 정도로 한 가족처럼 지내는 정이 넘치는 마을 ”이라며 소박한 자랑을 해주셨다.
취재를 마치며
삼척시 나릿골 감성마을의 시작은 2013년 9월 삼척시가 관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시정 아이디어를 모집한 결과 ‘정라진 나릿골을 감성마을로’라는 제안이 우수 제안으로 채택되면서부터이다.
이후 2016년 사업비 40억 원(국도비 23억 시비 17억)으로 나릿골 감성마을 사업이 추진되었다.
삼척을 대표하는 항구 정라항은 볼거리나 관광 자원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도로 등 기반 시설이나 마을 상태가 1960~1970년대 상태에 머무르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삼척시에서는 나릿골에 스며 있는 우리 어촌의 생활상과 정취를 관광 자원화하고, 정라항의 관광 자원과 결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하여 사업을 시작하였었다.
나릿골 감성마을 사업은 계속 사업으로 아직도 진행 중에 있다.2020년 3월 삼척시의회는 정라동 나릿골과 벽너머 일원을 문화관광 마을로 조성하여 주민 주도형 마을 공동체 활성화를 지원하고 각종 시설의 운영 관리를 통해 일자리 창출과 지역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하는 조례도 제정하였다.
국가 단위 도시재생뉴딜 사업이나 새뜰마을 사업 등의 예산이 아닌 삼척시 자체 도시재생 사업으로 시작한 나릿골 감성마을은 이제까지의 도시재생과는 다른 면모도 보여주고 있다.나릿골도 도시재생이 이루어지면서 집값이 올라가자 사업 공간 마련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사업초기 미리 부지 매입을 못해서 도시 재생이 흐지부지된 다른 도시재생 지역의 사례와 달리 감성마을에는 곳곳에 주차장이 마련되었다. 매입이 어려운 공간은 임대 형식으로라도 해결을 하였다고 한다.
김장용 정라진 협동조합 이사장은 마을 사업이 다른 이웃 마을보다 늦게 시작했으면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바로 지역주민들의 의견이 중심이 되어 사업이 진행되었다는 점을 꼽았다.
마을주민들은 나릿골 감성마을이 자리 잡으면서 이제는 마을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줄 젊은 사람들의 유입과 일자리 창출에 고민을 하고 있다.
지자체 주도로 시작한 ‘나릿골 감성마을’ 도시재생 사업이 성공하여,인구 고령화,저출산,어획량 감소로 인한 어촌지역의 쇠퇴에 활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자료
삼척시 보도자료
도움 받은 곳
삼척시 정라협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