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
균형발전 기사 큐레이터
처음 그대로의 불변함과 보존성이 중요 가치로 인정받는 유형 문화재와는 달리 생성과 소멸, 계승과 변화로 일상에 스며들어 그 존재가치를 이어나가는 무형 문화는 유기 생명체와도 같다. 살아 있는 ‘문화’를 정의 내릴 수 있을까?
법정 문화도시 추진 사업은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재생사업에서 더 나아가 문화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문화적 도시 재생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 고유의 특성이 담긴 문화를 통해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참으로 매력적인 지역 균형 발전의 한 방법인 것이다. 올해까지 전국 약 30여 개의 지자체에서 사업이 추진 중이며 담양은 4차 예비 문화도시로 선정, 올 연말 최종 심사를 앞두고 지역민들과 함께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문화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문화가 되어 뿌리내리고 있는 담양의 문화도시 조성 사업의 현장을 취재해 본다.
■ 대나무처럼 자라나기 위한 준비 기간
모소 대나무는 4년 동안 4cm밖에 자라지 않는다. 그리고 5년이 되는 해에 마법처럼 매일 30cm씩 성장해 6주 만에 12m가 자라 울창한 숲을 이룬다고 한다. 이 엄청난 성장력은 4년간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깊고, 넓게 뿌리내리는 준비 시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로 얽히면서 견고함을 쌓으며 위로 솟아날 때까지 아래로, 아래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도시 추진단과 지역민이 앞으로의 성장을 위해 다 함께 뿌리내리고 있는 예비사업 추진의 한 해, 2022년. 실천의 주체로서 지역의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 지역 사회 문제를 문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과정 자체가 담양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보도자료 - 법정문화도시사업(2018))
(출처: 담양문화도시추진단-문화도시조성계획)
■ 생각 공유와 실천, 생태감각의 회복
<사진1> 인터뷰 현장
<사진2> 인문학 가옥 내부
2022년 6월 15일. 인문학 가옥에서 담양 문화도시 추진단의 임선이 단장님과 정은아 선임연구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표현만 다를 뿐 우리는 함께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문화에서 시작되는 지역 균형 발전은 사람에서 시작되어 사람으로 이어지게 되나 보다.
Q1. 상향식으로 진행되는 문화도시 추진의 특성상 사업 초기 방향성을 어떻게 잡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1. 지역민 개개인들의 이야기와 의견들이 문화도시 사업의 방향성을 잡는 과정에 담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바퀴 달린 문화도시 담양이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도시의 구심점이 되는‘읍’에서부터 필히 구석구석 연결되어야 할 12개 ‘면’까지 거침없는 날 것의 이야기를 현장에서 직접 청취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지요. 그 이후에 라운딩 테이블, 포럼, 토론회을 여러 차례 거치면서 취합된 의견들을 정제하고 다듬으면서 비전을 구상했습니다. 그 결과가 너랑 나랑 엮어가는 연관 문화도시, 담양이 된 것이지요.
Q2. 담양군 문화도시 조성에 대한 기초 의견 설문조사가 진행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과 그 데이터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A2. 담양군이 잘하고 있는 것 1순위로 쾌적한 생태 도시 조성이 압도적으로 많았어요. 저는 문화도시 추진 활동에 있어서‘생태 감각의 회복’이라는 개념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데요. 단순한 자연의 개념을 넘어선 지역공동체의 생태 감각을 회복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있는 것이죠. 주변 환경부터 그 안의 작은 일상들까지도 함께 엮어갈 수 있는 우리 지역만의 원동력이랄까요? 또 다른 설문 결과를 보면 수치화된 데이터로 나타났을 뿐이지 “구석구석으로 문화 향유의 기회들이 확장되었으면 좋겠다.”,“주체가 될 수 있는 기회들이 생겼으면 좋겠다.”처럼 현장에서 들어왔던 목소리와 같았거든요. 그런 보편적인 바람들을 끄집어내서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답변할 수 있겠습니다!
(출처: 담양군 문화도시 조성에 대한 기초의견 설문조사)
Q3. 작년부터 올해까지 함께해 주신 대표 지역 활동가분들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A3. 예비 도시 선정까지 함께해 주신 문화 실천 위원회 14분이 계세요. 특히 박선화 선생님과 신일식 이장님께서는 고향이 담양이시지만 외지에서 사시다가 다시 돌아오시면서 지역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고 계시는데요. 아마 저희만큼 문화도시 사업에 대해 가장 많이 아시는 분들이지 않을까 싶어요. 항상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재미난 생각을 해 주시고, 실천해 주시는 든든한 조력자이십니다.
“내 지역에, 내 지역의 사람에게 애정과 관심을 갖는 것 또한 문화도시의 중요한 지점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 신일식 이장님 -
Q4. 사업을 진행하면서 아주 방대한 자료들이 축적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기록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콘텐츠화 시키나요?
A4. 현장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터져 나올 수 있게끔 다가갔고, 담양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개개인의 일상과 개개인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이 마이크 잡기까지 30년 걸렸소.”라는 한 마디가 주는 울림을 기록하고 알리기 위해 아카이브 전시를 열었고, 실천하는 주체들의 기록을 담은 매거진 연관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미지, 영상, 텍스트처럼 형태는 다르지만 담양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자료들을 콘텐츠화 시켜서 인스타그램이나 숏폼 콘텐츠처럼 모두에게 친숙하게 녹아들 수 있도록 정리해나가고 있습니다.
<사진 3-5> 아카이브 전시 현장
Q5. 지역 사업을 추진할 때 꼭 필요한 제1덕목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또 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장 변화한 스스로의 모습이 있다면요?
A5. 문화도시 활동가에게는 요구되는 다양한 상이 있어요. 기획자이자 활동가이고, 현장 지원가인 동시에 실무 행정가여야 해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상황에 맞는 관계들을 형성해 나가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공감과 소통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자세로 임하다 보니 지역을 보는 관점이 가장 크게 변한 것 같아요. 일터로만 바라봤던 곳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터전으로 바라보면서 애정을 갖게 되고, 나도 이곳에서 뭔가 해보고 싶다! 꿈 꿔보고싶다! 생각하게 된 것이죠. 사람을 알게 되니까 그런 것 같아요.
Q6. 사업 종료 후 그리는 담양 문화도시의 모습은 어떤가요?
A6. 문화도시 추진의 근본적인 이유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언제든 터져 나오고, 잘 들어주고, 그 사람이 문화의 주체가 될 수 있게끔 하는 것이거든요. 언제든지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상대의 이야기들을 들어줄 수 있는 열린 사회의 모습인 거죠. 주민들 스스로가 문화를 향유하는 주체가 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문화적 안전망을 이루는 문화도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12개 읍·면 구석구석을 돌며 지역 문화의 정의부터 문화도시 추진의 필요성과 방향까지 지역민과 함께 답을 찾아가는‘바퀴 달린 문화도시, 담양’ 프로젝트.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아래로부터 시작되는 진정한 문화자치를 통해 협력과 협업의 경험치를 다져가고 있다.
(출처: 문화도시 담양 매거진-연관(2021))
“여러분의 삶 자체가 바로 담양의 문화입니다.”
“지금 하시는 그게 문화에요, 어르신.”
■ 지역 문화 활성화의 동력과 구심점 역할이 선행되어야
부·울·경 특별지방자치단체의 출범처럼 지역 경계를 넘어서는 광역행정기능이 추진되며 전국적으로 메가시티 거버넌스 구축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메가시티가 없는 독일이나 이탈리아가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고유한 발전 가능성의 동력으로 삼은 사례를 돌아보고,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한 지역 중고거래 당근마켓이 그 영향력을 키울수록 더 작은 지역 중심, 동네 중심의 거래와 소통을 지향하는 지점을 짚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역 간의 광역 협력과 교류 이전에는 지역 내부 구성원 모두가 서로의 잠재력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밀도 있는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선행 단계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어떤 변화의 기류에 휩쓸리지 않고 지역 정체성을 지키며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핵심 동력이자 흔들리지 않는 구심점은 그 안을 켜켜이 쌓아가는 지역 문화의 힘일 것이다.
서로 어울려 의존하고 전체를 이루는 사이, 연관(聯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일상을 함께 엮어가는 주민들의 관계가 밀도 높게 짜이고 있다. 하나의 작은 짜임일지라도 함께 엮어가면 그 크기와 모양이 무한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담양의 문화를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순 없지만 다 함께 정답이 아닌 해답을 써 내려가는 무한동력에 힘을 보태며, 앞으로 담양 문화도시 추진단과 주민들이 새겨 나갈 담양 문화도시만의 특별한 무늬를 기대한다!
[참고자료]
문화체육관광부 보도자료-법정문화도시사업(2018)
문화도시 담양 매거진-연관(2021)
https://issuu.com/damyang_cc/docs/2021-_opt
담양군 문화도시 조성계획안
담양군 문화도시 조성에 대한 기초의견 설문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