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ABIS 뉴스레터 2023-23호 ]
자부심이 만드는 지역균형발전
하지수
여수와 대표
목차
1. 얼떨결에 창업
2. 자부심이 만들어준 자신감
3. 지역에도 주어지는 다양한 기회
4.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이에게만 보이는 기회들
5. 영원한 나의 자부심이길

1. 얼떨결에 창업
창업 초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어쩌다 교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하신 거에요?" 였다. 질문을 듣고서야 진짜 내가 왜 창업을 했을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2018년, 나는 그동안 열심히 고3들의 입시 정보를 찾고 학생들에게 적용하던 그 일을 잠시 멈췄다. 연속되던 그 일에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직으로 여기던 그 일로 돌아가기 위해 쉬는 동안에도 미래가 필요로 하는 인재나 사회에 대해 공부를 계속했다. 휴가처럼 서울에 머물며 미래 경제에 대한 수업을 듣기도 했고, 여러 전시회 및 공모전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 한 대기업에서 지역의 문제를 창업으로 해결해 보는 지역혁신가(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이 바로 로컬크리에이터가 아닌가 싶다.)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고 복직 전 마지막 프로젝트로 생각하고 참가했던 이 대회에서 여수시장상에 이어 전국 대상을 받으며 덥석 창업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질문들을 받고 다시 고민해 보니 '수상만으로 창업을 한 게 맞을까?' 싶었다. 한동안 제자들이 '지방에서 태어나 지방에 정착하는 삶 자체에 주눅 든다'라는 말을 했었다. 자기만 뒤처지는 기분이고 자기만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기분이라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때 나의 대답은 늘 "선생님은 여수에서 태어나서 대학 졸업 후 바로 여수로 다시 왔지만, 지금도 여수가 좋아. 여기서 살아도 괜찮아. 오히려 여유 있고 좋던데?" 였다. 그러다 한 제자가 그런 말을 했다. "선생님은 선생님이잖아요." 그게 무슨 말인지 다시 생각해 보니 아이들에게 전혀 나의 그동안의 대답은 설득력이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얼굴이 후끈해졌었다. 그렇다. 나의 창업은 나의 제자들, 나의 아이들에게 지역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고, 행복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사명이 있기에 힘들지만 열심히, 어렵지만 즐겁게 오늘도 이 일을 하고 있다.
2. 자부심이 만들어준 자신감
예전에 로컬창업에 대한 인터뷰를 한 적 있는데, 기사 헤드라인이 「기승전여수를 이야기하는 하지수 대표」였다. 나도 모르게 '이래서 여수는 이렇고, 그래서 여수는 이렇다'라고 습관처럼 이야기했던 것 같다. 나는 여수가 참 좋다. 고향이라서 좋은 것도 있겠지만, 어디를 가나 어디를 보나 '여수처럼 예쁜 곳이 있을까' 싶다. 그래서 회사 이름을 '여수와'라고 했다. 원래 마지막 프로젝트 참가 때 만든 팀명이었는데, 이렇게 회사 이름이 될지는 몰랐다. 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아 '여수와' 라고 만들었던 팀명은 이제 회사명이 되었고, 어디 가서나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서 일하고 있겠구나'를 알려주는 나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우리 회사의 시작은 '여수를 제대로 여행하는 법을 알려드립니다'로 시작한 여행사였다. 모두가 찾는 그곳에도 우리만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고, 모두가 보는 그곳에서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우리만 아는 신비로움이 보이는 그런 것을 여행자들과 공유하고 싶었고, 그를 통해 여행자들이 여수를 좀 더 사랑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우리의 첫 여행은 여수의 부엌이라 할 수 있는 전통시장들을 탐방하며 여수답게 제철 음식 먹는 법을 이야기하는 미식 투어였다. 여수는 계절별로 먹어야 하는 음식을 넘어 이번 달 이맘때엔 뭐가 맛있을 때인데…라고 생각할 정도로 다양한 미식을 즐기는 고장이다.
전통시장의 제철 식재료를 기본으로 한 나의 이야기에 여행자들은 빠져들었고, 나와 함께 방문하는 여행자에게 건네지는 친절과 덤은 여행자의 재주문으로 연결되었다. 전통시장에서의 상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권할 수 있었던 시식과 구매 권유는 자연스럽게 여행자와 지역 상인들 간의 경제 선순환, 지역 상생으로 이어졌다.
이런 곳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재미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여기에 가서 이것을 시식하면 반드시 사게 될 것이라는 자신감 등 여행하는 내내 여수를 이야기하는 여행큐레이터(여수와의 로컬여행 안내자는 장소와 소재 모두 본인의 큐레이션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여행큐레이터로 불러드리고 있다)의 자신감과 여수에 대한 애정은 그 시간을 함께하는 여행자에게 깊은 공감과 교감을 만들어 낸다.
이 과정을 충분히 경험했기에, 로컬여행큐레이터 양성 교육에서는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 생겼다. 여러분의 이야기는 여러분만 할 수 있는 것이고 여러분의 자부심이 여행자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필수요소라는 말을 꼭 하고 있다.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지역에 대한 자신감을 만들고, 지역에 대한 자신감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3. 지역에도 주어지는 다양한 기회
이 자부심의 원천이 되기도 한 여수를 방문하는 연간 1,500만 명의 여행자. 이를 계기로 이제 여수에는 다양한 기회가 생겨나고 있다. 성수기가 따로 없다고 할 정도로 일년내내 여행자가 북적이고 있고, 식사 시간 유명한 음식점의 웨이팅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이로 인해 여수의 시장은 채 30만이 되지 않는 여수시민만이 아니라 1,500만의 여행자까지 포함된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다.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에 여행자를 겨냥한 상품들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리조트, 호텔 등이 공사가 끊이질 않는다.
이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새로운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다양한 성공 사례가 생기자, 지역의 단조로운 일자리 형태가 다양한 형태의 창업으로, 일자리로 변화하고 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여행기념품이 인기를 끌자, 지역 내 재배작물의 변화로 이어졌고 그와 같은 성공을 꿈꾸며 지역 내에서의 창업이 시작되었고, 외부로 나갔던 지역의 청년들이 돌아오기도 하고, 여행으로 경험한 여수에 은퇴 후 정착을 위해 이주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지역의 시장이 커지고, 그 시장이 바라는 것이 여수다움이기에 청년들은 다양한 상품에 여수를 담아 출시하고 있다. 여수를 담은 디저트, 여수를 담은 음식, 여수를 담은 굿즈 등 지금 여수의 창업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여수를 들려주고 있다. 여수다워야 판매가 되는, 여수여야 판매가 되는 상품들이 늘어나면서 지역 창업가, 지역 기획자들에게는 지역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만 하는 기회가 되었다. 여수의 이야기를, 여수의 식재료를, 여수다움을 담아야만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지역의 역사, 지역의 이야기, 지역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또 이는 우리의 또 다른 자부심의 근원이 되기 시작했다. 수많은 지역에서 이와 같은 기회를 만들어 내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나 역시 그 수많은 지역에 이 사례들의 강연을 하기 위해 다니고 있는데, 가보면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지역에서는 수도권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항상 있다. 하지만 어느 지역이든 그 동경을 이기는 지역에 대한 자랑스러움, 자부심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자부심이 무한한 가능성을, 기회를 만들어 내는 힘이라 믿는다.

4.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이에게만 보이는 기회들
지역의 이야기로 첫 여행을 만들어 낸 이후 우리는 다양한 콘텐츠와 굿즈를 연달아 만들어 내고 있다. 정관에 넣을 생각조차 못 했던 아이템이었던 주류 역시 그중 하나이다. 전통시장 투어 중 하나인 건어물 시장에서 2030은 큰 관심을 보일만한 것이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었는데(다양한 종류의 여수 멸치가 주 아이템이었으므로) 곁들여 시식을 권유한 아귀포에서 모두가 한결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거 하나 사가서 이따 숙소에서 맥주랑 같이 먹자.” 그래서 우리는 아귀포에 어울리는 맥주를 우리가 만들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 생각은 회사의 정관을, 회사의 사업자등록증을 모두 변경하게 만들었다. 다행히도 그 아이디어는 적중했고, 꾸준히 매출을 만들어 내는 효자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 후 지역의 비경 5곳을 선정, 그곳을 이미지화하고 그 이미지와 어울리는 커피를 지역의 로스터리샵과 함께 드립백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모두가 흔히 찾는 여수가 아닌 진짜 우리가 사랑하는 여수를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지역의 멋진 카페들을 소개하고 싶은 욕심을 더해 잔뜩 여수에 대한 애정을 집어넣었다. 이 드립백의 아이디어는 여기저기서 차용될 만큼 지역을 소개하는 좋은 아이템이 되었다. 이처럼 지역을 위해 고민한 제품들은 기대 이상의 좋은 결과를 가져왔고 그로 인해 우리의 제품은 여수를 이야기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결국 지역에 대한 고민과 관심이 지역을 이야기하는 상품이 된다는 것을 경험했고, 매년 우리의 상품은 지속적으로 기획, 새로운 상품이 론칭되고 있다. 어디서 무엇을 보던 이것을 어떻게 여수답게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하는 우리를 보면 꾸준히 여수와도, 여수의 창업자들도 새로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 낼 것이라 믿는다.
5. 영원한 나의 자부심이길
오늘은 지역의 대학생 창업 동아리의 창업 포럼에 연사로 다녀왔다. 지역의 아이템으로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꽤 많아서 놀랐다. 다들 여수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외부의 시선에서 보는 여수만으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외부에서 우리 지역을 보는 시선도 중요하지만, 내부의 시선을 외부에 알려주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내가 사랑하는 여수의 모습, 내가 자랑스러운 여수의 모습이 여행자에게도 강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최근 행안부의 재도전 프로젝트를 통해 여수에 지역살이를 하러 오신 수도권의 신중년들이 지역민들에게 신기한 것이 있다는 말을 하셨다. 서울에서는 느끼지 못한 지역에 대한 애정이나 자부심이 대표인 나는 물론이고 함께 일주일을 보내는 청년들 모두에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지속적으로 나의 자부심일 수 있는 나의 여수를 위해, 나는, 우리는 오늘도 여수를 고민하고 여수를 생각하고 여수를 다양하게 적용 중이다. 우리가 느끼는 자부심의 크기만큼 지역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지역에 대한 관심은 오늘보다 나은 지역의 내일을 불러온다.

하지수
여수와 대표
자신의 고향 '여수'가 단순 소비지향적인 여행지로 변모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교직을 그만두고 로컬콘텐츠 기반의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이후 여행업 뿐만 아니라 유휴공간 활용 및 로컬콘텐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