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균형발전의 핵, 지방공무원에 대하여
조남식
로컬 스토리 에디터
□ 서울대생은 9급 공무원하면 안되나요?
한 서울대생이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임용됐다. 직업의 자유가 있는 국가에서 한 개인이 스스로 직업을 선택한 게 무슨 뉴스거리랴 싶지만 이 일은 당시 대한민국에 큰 화두로 떠올랐다. 국내 최고 수준 대학생,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취업시장에서 가장 유리한 그룹에 속한 이가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두고 인적자원 낭비라는 의견, 직업에 높고낮음이 어디있냐는 의견부터 채용시장 생태계 파괴라는 의견까지 서울대생 9급 공무원행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낳았다. 서울대 게시판에 글을 남긴 당사자는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해서 지방직 9급 공무원을 택했다고 했다. 2015년 10월이었다.
그런데 공무원은 정말 저녁이 있는 삶을 살까? 한편, 이런 이야기와 같이 공무원 시험에 고학력자가 몰린다는 소식에 우려하는 우리 사회를 보면 고학력자가 공직사회로 유입되는 것은 정말로 우리사회가 걱정해야할 인적낭비 현상일까?
□ 국가균형발전과 지방공무원의 관계
국가균형발전을 얘기하려 할 때에는 지방공무원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오늘 날 국가균형발전은 각 지역이 독창적인 정책을 내세워 자생하기보다는 정부가 주도하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행정 최일선을 담당하여 정책을 실현해내는 것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공무원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후 지속적으로 지방분권이 강조되는 요즘 같은 추세라면 향후 지방행정부, 즉 지방공무원의 역량은 지방정책과 행정서비스 품질 전반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정부부처와 지방정부 간 우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뇌에서 아무리 손으로 무언가를 집으라고 신호를 보내도 움직일 손이 없다면 난감할 것이다. 이 경우 뇌가 중앙정부, 손이 지방정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방공무원이란 어떤 이들일까? 행정안전부가 제공하는 정부조직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에 공무원은 1,131,796명이다.(이 통계는 2020년 12월 31일 기준이며 군인, 군무원, 국가정보원 직원과 선출직은 제외됐다.) 우리나라에 공무원이 이렇게나 많다니?! 그런데도 내 민원처리는 왜 이렇게 느린가?!
그런데 이 숫자 전부가 지방공무원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삼권분립이 된 나라다. 크게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중 정책을 집행하는 행정부 공무원은 1,106,522명이다. 그런데 그 중 무려 735,909명은 국가직으로 이들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질병관리청 같은 40여개 정부부처에서 일하는 직원이다. 이 숫자를 제외하면 지방직은 370,643명이다. 그런데 여기서 교육자치 71,370명을 또 뺀다. 그리고 교원 690명, 경찰 151명을 다시 제외한다. 그러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지방공무원(시청이나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공무원)은 298,432명이다.
국민 대 공무원 비율을 보면 우리나라 행정서비스 질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2019년 인구수가 5,171만명이라한다. 그렇다면 지방공무원 1명이 담당하는 개략적인 국민은 173.5명이다. 법정근무시간 8시간(480분)동안 173.5명을 상대한다고 가정하면 하루 동안 국민 한 사람당 제공되는 행정서비스 시간은 2.7분이다. 3분여만에 처리할 수 있는 업무가 과연 있을까? 혹 여러 업무를 추진하는 중 각각 업무마다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이 3분씩만 주어진다면 그 3분 동안 우리는 행정서비스 품질을 얼만큼 끌어올릴 수 있을까?
물론 173명이 매일 민원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고 민원마다 처리시간도 제각각이다. 그리고 모든 공무원이 민원업무만 처리하는 것도 아니다. 민원서류를 발급하는 공무원, 보조사업을 담당하는 공무원, 공사나 개발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 시설을 관리하는 공무원 등등 그 업무는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이렇듯 개인차는 있겠지만 모든 공무원 업무는 그저 단순하고 편한 것 뿐이어서 저녁이 있는 삶을 살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다.
이번엔 지방공무원 이 숫자를 지자체 숫자로 나눠보자. 서울이나 부산처럼 인구가 백만단위 지역도 있고 몇만단위인 곳도 있지만 일단 나눠보자. 우리나라는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같은 특?광역시가 8개, 충청북도, 경기도 같은 도가 9개, 시가 75개, 군 82개, 구 69개가 있어서 전국에는 총 243개 지자체가 있다.
앞서 살펴본 지방직공무원 전체 숫자를 지자체 숫자로 나누면 한 지자체 당 평균 공무원 숫자는 1,228명이다. 실제로는 서울특별시, 경기도청처럼 직원숫자가 만명 단위인 기관도 있지만 작은 지자체는 몇백명 단위인 곳도 있다.(서울시 본청에는 약 17,500여명, 경기도에는 14,700여명이 근무하며 특광역시 평균 7,600여명, 도 평균 6,400여명이 근무한다고 알려져있다.)
그런데 대부분 지자체가 하는 업무는 비슷하다. 인구에 따라 행정수요가 많고 적음은 있지만 업무 종류는 대부분 유사한 점을 감안하면 공무원 숫자가 적다는 것은 공무원 한 사람이 담당한 업무종류가 그만큼 다양하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이러한 정황들을 살펴보면 매번 공무원을 많이 뽑는다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공무원 숫자가 그리 많다하기엔 어려울 듯 하다. 공무원이 많다고 능사는 아니지만 그 숫자가 적다면 새로운 일을 시도하거나 업무추진하는데 세밀함은 분명 떨어질 수밖에 없다.
□ 사람들은 왜 공무원을 미워할까?
앞서 살펴본 사정에 따르면 공무원 근무여건이 썩 좋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오히려 봄, 가을처럼 산에 가기 가장 좋은 시기에는 산불근무를 해야한다. 눈,비,바람으로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가족을 집에 남겨두고 현장으로 나가 대응해야하고 각종 선거, 행사마다 빠짐없이 동원된다. 하물며 최근 코로나19와 같은 비상시에는 공무원(특히 지방공무원)은 무시로 투입된다. 이쯤 되면 저녁이 있는 삶을 찾아 떠난 서울대생이 지금쯤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을지도 걱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공무원에 대해 갖는 여론은 동정론보다는 부정론에 가깝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는 아침 9시가 임박하자 시청 광장으로 똑같은 까만 옷을 입은 무리가 쏟아진다. 거기엔 더 일찍 오는 사람도 없고 옷을 튀게 입은 사람도 없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면 공무원은 민원인에게 공감하지 않고 대충 시간을 떼우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영화 <나는 공무원이다.>에서 공무원은 매사에 무기력하고 퇴근시간만 바라보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물론 극적 재미를 위해 과장되거나 현실에 맞지 않는 것도 있고 때로는 공무원으로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제법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짠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공무원하면 떠올리며 공감할 수 있는 정서는 공무원은 그저 소극적이고 무사안일하다는 것만 같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와 <나는 공무원이다>. 모두 공무원을 소재로 한 영화다.
공직사회에는 ‘열심히 일한 공무원이 감사 받는다.’는 속담이 있다. 일을 잘해줘서 고맙다는 감사가 아니라 안되는 일도 되게끔 열심히 했더니 일반적이지 않게 일처리를 했다며 감사를 받고 징계를 받더란 말이다. 반면 민원인을 위해 익숙지 않은 방법을 찾는 불편과 위험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 하거나 성과를 내도 그에 따르는 보상은 전무하다. 이런 사례를 주변에서 목격하고 반복되다 보면 아마 웬만해서는 융통성 있고 의욕적인 일처리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법령을 기계적으로 답습하고 판에 박힌 행정을 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그렇게 자리 잡은 조직문화는 새로운 것, 변화를 거부한다.
이런 행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행정서비스를 누릴 시민들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공직사회에는 ‘적극행정’이란 개념이 도입됐다. 공무원들에게 탁상공론, 기계적인 행정을 지양하고 보다 합리적이고 의욕적인 행정을 주문하는 것이다. 전자에는 소극행정이라 지칭하여 법적 책임을 묻고 후자에는 인사혜택, 경제보상 등 실질적인 혜택을 마련하여 제도화 하는 것이다. 문제는 제도가 마련돼도 그 제도를 현장에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소극·적극이라는 개념이 주관적이고 연공서열을 중시하고 튀는 것을 지양하는 공직사회 특성상 파격적인 특별승진이나 경제보상이 조직정서에 부딪히는 까닭이다. 이처럼 조직에 적극행정 풍토를 정착시키는 일은 마치 알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 논의하는 것처럼 제도 혹은 조직문화, 개인 혹은 조직, 무엇부터 움직일지 판단이 어려운 문제다.
□ 공직사회에 부는 적극행정의 바람
한편 인사혁신처에서는 적극행정 사례를 발굴·확산하기 위해 현직 공무원을 포함하여 전문강사를 양성하고 전용 사이트를 개설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제도적 움직임과 최근 공직사회에도 빠르게 밀려들어오는 MZ세대가 만나면서 시너지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앞서 대중이 우려했던 고학력, 고스펙(흔히 말하는 MZ세대 특징) 신규 공무원들은 공직사회에 합리적이고 창의적인 문화를 빠르게 들여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공직사회에 훌륭한 인재들이 유입되는 것을 낭비라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공직사회에 훌륭한 인재가 유입되는 것을 우려한다면 그때야말로 우리 행정은 늘 다른 분야보다 후순위, 저품질로 머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 앞으로 지역의 미래에 공무원이 끼칠 영향
그러나 다행스럽게도(혹 당연하게도) 적극행정이란 말이 생기기 전부터 일찍이 모진 풍파에 맞서며 남다른 노력으로 남다른 성과를 낸 공무원들이 있다. 다행히 그들 중 몇몇은 이야기는 책이나 언론보도와 같은 자료로 남아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공무원 덕림씨> 저자이자 주인공인 최덕림씨는 2017년 공직을 퇴직했다. 그는 현직에 있으면서 순천만 생태공원 조성, 국제정원박람회 추진에 앞장섰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에는 지방행정의 달인에 선정됐고 공무원 최초로 TED에 강연을 나서기도 했다.
일찍이 순천만은 그냥 습지였다. 그러나 최덕림씨는 전문적인 식견과 자기지역에 대한 사랑이 만나 오늘 날과 같은 결실을 맺었다. 지금은 누구나 순천하면 순천만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어쩌면 한국하면 순천이 떠오르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이런 공무원이 공직을 떠났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다행히 최덕림씨는 요즘도 적극행정을 알리는 전문강사로 현장을 뛰고 있다.
▲순천만 정원하면 떠오르는 최덕림 국장님과 그의 저서 <공무원 덕림씨>
톡톡 튀는 홍보로 공공기관 SNS 시대를 연 부산경찰 권효진 경장도 빠질 수 없다. 2009년 부산지방경찰청에서 경찰생활을 시작한 권효진 경장은 2013년경 홍보부서에 근무하면서 SNS를 통해 조곤조곤하면서도 엉뚱한 어조로 경찰소식을 대중에게 알렸다. 공공기관이 형식적이고 권위적인 공지사항을 올리던 것에 비하면 일기를 쓰듯 줄글로 전하는 경찰소식은 공공기관이 소셜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보여줬다. 권효진 경장은 자리를 옮겨서도 사이버수사대에서 근무하며 형제가 함께 국내 최대 웹툰 불법유통 해외사이트인 밤토끼를 잡는 등등 가는 자리마다 자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부산 경찰 최효진 경장과 그의 형(사진. 부산경찰 제공)
윤기혁씨가 쓴 <젊은 공무원에게 묻다>를 보면 7명의 젊은 공무원과 2명의 선배공무원 이야
기가 나온다. 각각 현장에서 자기 업무를 열심히 추진하는 공무원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걔중에는 어디선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해진 이야기도 있고, 세계를 무대로 누비는 공무원도 있다. 책에 나오는 너무나도 다양한 공무원 모습은(책에는 국가직 공무원도 포함되어 있다.) 그동안 대중이 생각했던 공무원에 대한 편견을 날려준다. 심지어 이 책을 쓴 저자도 공무원이다. 이렇듯 공무원 적극행정은 길고 긴 여정끝에 결국 집에서 찾는 파랑새처럼 늘 우리 곁에 있는 게 아닐까.
▲ 윤기혁 주무관이 쓴 <젊은 공무원에게 묻다> 중 발췌(사진출처. 남해의 봄날 홈페이지)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에 비춰볼 때 나는 앞으로 균형발전에 각 지역, 로컬이 갖는 자생력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리고 공공부문의 경우 그것이 행정 자체 혁신이든, 혹은 새롭게 성장하는 다른 어떤 분야를 지원하기 위해서든 지방 공공부문의 역량은 대단히 중요하다 생각한다. 어떤 분야, 정책기획은 물론 단순 행정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다.
앞서 소개된 몇몇 사례처럼 공공부문 업무가 주목받고 멋진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공부문 업무 대부분은 가시화하고 계량화하기 어려워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한 겨울 개마고원에서 혼자 눈을 치우는 것처럼 막연하고 막막한 일이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공부문에 재밌는 일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그런 자율성과 재미가 공무원 개인 일상은 물론 조직, 나아가 지역에도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윤기혁 『젊은 공무원에게 묻다』, 남해의 봄날, 2020
최덕림 『공무원 덕림씨』, 컬쳐코드, 2017
남해의 봄날 홈페이지(https://blog.naver.com/namhaebomnal/22205004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