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근
균형발전 기사 큐레이터
목차
1. 노잼 도시, 대전
2. 빵집이 대전 여행의 콘텐츠가 되기까지
3. 성심당, 그리고 동네 빵집들
4.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위하여
1. 노잼 도시, 대전
어떤 도시를 떠올릴 때마다 그 도시가 가지는 이미지란 것이 있다. 도시 브랜딩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 도시가 가진 콘텐츠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대전이란 도시의 이미지는 어떠할까? 제주도 하면 천혜의 자연경관, 부산하면 해양도시, 경주하면 역사 유적의 도시 등 뚜렷한 문화 관광자원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도시들과 비교해 보면 대전은 과거 엑스포를 개최하고 과학기술 단지가 많이 입주한 도시라는 정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교통의 요충지로서 많은 공공기관과 연구 단지를 보유한 대전이지만 문화 관광 측면에서는 ‘노잼 도시’라는 오명을 들을 정도로 별다른 특징을 보이지 못했다.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대전관광공사는 대전이 가진 관광자원으로서 새로운 관점의 해석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졌고, 성심당을 비롯해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빵집이 많이 있는 대전이란 도시에서 빵의 도시라는 콘셉트를 잡고, 이러한 콘텐츠를 빵 축제로 연계시켜 대전의 콘텐츠를 강화해나가고 있다. 특히나 최근의 여행 트렌드가 한 가지 테마나 취향을 깊이 있고 탐색하는 경향이라는 점에 착안했을 때 이러한 시도는 참신한 관점이라 볼 수 있고, 내방객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보이면서 지역 관광 콘텐츠와 축제 콘텐츠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2. 빵집이 대전 여행의 콘텐츠가 되기까지
88올림픽 이후, 한국의 경제적 문화적 수준이 올라가고 생활 전반에서 대기업들의 프랜차이즈 사업이 시작되면서 동네 가게들의 지형도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빵집 역시 SPC의 파리바게트, CJ푸드빌의 뚜레쥬르 등 대형 베이커리 체인점들이 나타나면서 역설적으로 동네 빵집을 찾기 어려워진 시대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동일한 맛과 품질의 빵보다는 개인 가게 별로 취향을 반영하여 운영하는 동네 빵집이 여행객들에게는 새로운 관광 콘텐츠가 될 수 있었고, 과거 한국전쟁 이후 원조 받은 밀을 전국으로 보낼 보관소와 제분소가 밀집해서 밀가루 유통이 원활했던 대전에는 밀가루를 활용한 빵집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는 기반이 되었다. 현재도 대전 시민들의 자랑인 성심당을 비롯하여 다양한 개성의 동네 빵집이 몰려있는 기반은 대전이란 도시여행의 콘텐츠로서 빵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해준다.
▲ 한국전쟁 이후, 밀가루 제분소가 많이 위치했던 대전 (출처: MBC)
이러한 빵집 인프라를 기반으로 대전 빵 축제를 시작한 건 코로나가 한창인 2021년부터였다. 장기화된 코로나로 지역 경제 침제 및 국내 관광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지만, 대전의 특색을 살려 진행한 빵 축제 ‘빵 모았당’은 취향 위주의 이색적인 경험을 누리려고 하는 여행객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고, 2022년 5월에 개최된 두 번째 축제에서는 빵 시식도 가능한 형태로 해서 음악공연, 이벤트 등 보다 더 풍성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만들어서 약 10만 명이 넘는 방문객들이 다녀갔다. ‘빵 모았당’이라는 원초적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대전 지역의 주요한 개인 빵집들을 불러 모아, 다양한 빵을 선보이고 즐길 수 있는 축제였기에 기존의 축제 프로그램과 대비해서 차별점을 내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기존 노잼 도시‘라는 명칭을 오히려 유희적인 요소로 활용하여 노잼, 꿀잼, 유잼, 핵잼이란 명칭의 쨈 상품을 구성하는 등 대전이란 도시가 여행객들에게 소비되는 이미지를 오락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편하게 즐기고 공유할 수 있게 했다는 배경에서 좀 더 여행객들에게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점이 됐다고 볼 수 있다.
▲ 대전 빵축제 포스터 (출처: 대전시)
3. 성심당, 그리고 동네 빵집들
성심당은 대전의 빵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1956년에 대전역 근처에서 조그마한 노점상으로 시작하여 2021년 기준 연 매출액이 628억 원에 달하는 지역의 대표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외형적인 성장만 이룬 것이 아니라, 창업 초기부터 나눔에 철학에 기반하여 판매하고 남은 빵들을 주변의 사회복지시설과 노숙자들 등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는 방식을 유지해왔고, 매장에 빵 시식에 있어서도 시식 빵만 먹어도 요기가 될 정도의 푸짐한 인심을 보이는 등 ‘성심당다움’이라는 철학을 유지하며 발전해 왔다.
▲ 성심당 로고 (출처: 성심당)
그러나 2016년, 창업 60주년을 기해 출간한 도서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을 보면 성심당이 줄곧 승승장구만 해왔던 건 아니었다. 창업주 故 임길순 때에 이어 아들인 현재 임영진 대표에 이르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아무리 선한 의식을 가진 기업이라도 기업의 특성상 매출이 일어나고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기에 제빵 트렌드의 변화, 프랜차이즈의 공습, 대전 외 지점 개설 이슈 등 다양한 이슈들 속에서 성심담이 가진 핵심 역량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했고, 결국 결론은 대기업 프랜차이즈에서 하는 화려하고 세련된 이미지보다는 진정성 있게 만든 양질의 빵을 성심성의껏 판매한다는 성심당의 본질적 가치에 집중한 측면이 강했다. 이는 이후, 성심당의 브랜드를 강력하게 만들어줬고 백화점 입점, 대전역 매장 입점 등으로 더욱 많은 고객들의 관심을 끌면서 성심당의 가치를 증명하게 해줬다.
▲ 코로나 시기 유명 지역 빵집 실적 (출처: 한경 경제)
또한, 내부 고객인 직원들 관리와 조직문화에 있어서도 제빵 전문가를 만드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매년 사내에서 제과제빵 경연 대회를 열어 실력자를 겨루는 행사를 열어 포상하고, 직원들이 자기 계발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적극 조성하면서 양질의 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우수인력들을 계속 교육해 나간 측면이 많다. 이로 인해 성심당에서 근무를 하다가 개인 빵집을 차진 사람들 역시 성심당에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제빵 상품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개인 빵집들 사이에서 성심당 출신이라는 말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성심당은 끝까지 대전지역 내에서만 매장을 윤영하는 방식을 취했기에 성심당에서 제빵과 관련해서 깊이 있는 실무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퇴사 후, 자신만의 빵집을 대전에서 차릴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 성심당 튀김 소보루 (출처: Topclass)
그렇게 보면 대전의 빵집 생태계가 커지고 품질을 높이는데, 성심당이 앵커 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대전 빵 축제에 참여하는 동네 빵집들도 이러한 대전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 서로서로 더 차별화되고 개성 있는 고품질의 빵을 만들어가는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 인프라라고 하는 것이 향후 또 새로운 창업가 아이디어를 가진 새로운 창업가들에게 동기 부여를 함으로써 대기업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쉽게 넘보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2022년 올해 빵 축제에는 21년에 비해 두 배 이상 참여 빵집이 늘어나 약 50개의 빵집이 참여를 했다. 빵지순례라고 하는 특이한 콘셉트 덕에 축제 전부터 SNS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났었고, 실제 축제 기간에도 긴 줄을 감내해야 먹고 싶은 빵을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이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각가의 빵집들이 바게트, 쿠키, 비건 빵, 페스츄리 등 각각 개성을 가진 다양한 빵들을 선보였기에 축제 참여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였고, 빵을 구매한 영수증을 지참하며 이벤트 룰렛을 통해 상품을 제공하고, 다양한 문화공연을 곁들인 덕에 좀 더 풍성한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 뚠뚠제과 (출처: 뚠뚠제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