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준
균형발전 기사 큐레이터
강원도 태백은 전국에서 가장 소멸위험이 높은 지역 중 하나다. 한때 석탄산업의 성장으로 전국의 젊은이들이 향했던 도시이지만, 광물산업의 몰락과 함께 사라질 위험이 가까이 찾아온 도시가 되었다. 이렇게 모두가 떠나고 곧 사라질 도시에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는 청년이 있다.
'널티'는 아무 가치가 없어 보이는 것들(NULL)을 새롭게 우려내어(TEA) 의미를 더한다는 뜻이다. 회사명 그대로 도시에 사는 어떤 이들에게는 존재조차 생소할 지역인 강원도 태백의 하장성에서 예술과 문화, 놀이를 통해 로컬 문화를 창출시키고자 다방면으로 시도하고 있는 기업이다. 지역문화생태계사업부터 청년마을사업까지 청소년과 청년을 위해 지역을 고민하고 활동하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정주하지 않고 지역을 고민할 수 있는지, 또한 생소한 강원도 환경에서 무엇을 해내가야 할지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디지털을 통해 지역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도시와 교통의 한계를 뛰어넘어 의미 있는 시도를 이어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려 한다. |
1. 일제 강점기 이후 광물자원의 중심지로 수많은 사람이 찾아왔던 지역이 태백이었습니다. 지금은 산업기반이 바뀌면서 태백을 찾는 이들이 많지 않은데 어떤 계기로 태백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태백이 고향이에요. 부모님의 선택으로 태백에서 살게 된 거죠.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을 준비하며 타지로 나갔어요. 타지에서 기술과 자본에 집중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사람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어디에서 살지를 고민하다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학창시절에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어요. 돈 벌기가 힘들다고 부모님 반대도 있어서 꿈을 이룰겸 목포로 갔어요. 알고보니 제가 일에 약간 미쳐있는 스타일이더라고요. 그렇게 목포로 갔다가 서울에서 그림도 그리고 게임도 개발하며 8년을 살았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제가 만들고 싶었던 게임과 그림이 아니더라고요.
공부를 엄청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게임과 닿질 못했어요. 서울에서 한계를 느끼던 와중 ‘위기 청소년’이라는 대상을 만났고, 함께 청소년들과 게임을 만들어보는 워크숍을 설계했어요.
그때부터 그림을 배우는 도구, 게임을 만드는 도구보다 사람이 더 재밌다는 걸 느꼈어요. 그렇게 한창 고민하다 제주도로 갔고, 제주도에서 나 자신을 처음 만났던 것 같아요. 내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해야 할 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었죠. 공동체와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내가 가장 잘 아는 도시 태백으로 들어왔어요. 여기에서 어릴 적 그림을 그리고 싶던 나와 다시 만나고, 게임을 만들 때 만났던 위기청소년과도 활동하고, 디지털 노마드로 생활하는 분들도 초대하면서 태백 생활을 시작했어요. 위기청소년을 지킬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2. 지방도시가 가진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태백은 교통으로 인해 큰 불편을 겪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태백에서 교통으로 인해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최근에는 교통이 많이 단절되었다고 느끼진 않아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죠. 그래도 서울에 비하면 여러 어려움이 있어요. 서울에서 창업을 하고 내려왔는데 그때 했던 비즈니스가 도서관에 가서 아이들하고 게임을 하는 방식이었어요. 전국에서 와달라고 했는데 서울에선 어디든 쉽게 갈 수 있었지만, 태백은 불가능했어요.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아쉬움이죠. 지역으로 내려온 이후 어려움보다는 기회가 사라지며 느끼는 아쉬움이 컸어요. 지금도 출장 나가면 서울에서 당일로 오갈 거리를 최소 1박 2일 길게는 2박 3일을 잡고 나가기도 해요.
건강에 대한 부분도 크죠. 태백에서 병원을 쉽게 가기가 어려워요. 팀원 중에는 암투병하다가 내려오신 분도 계시고, 몸에 염증이 많아서 건강이 좋지 않은 친구도 있는데 위급 상황에대한 우려 때문에 불안함은 늘 있죠.
저 역시 당장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몸이 나쁘지도 않아서 괜찮은데 다른 동료들은 항상 불안함을 가지고 있어요. 지역에선 암치료가 흔하지 않으니 서울로 갈 수 밖에 없고, 그나마 대형병원은 모두 원주나 강릉 쪽으로 이동해야 하고요. 의료 서비스를 제때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크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태백을 떠난 이후 14년만에 돌아왔는데 거의 모든 것이 동일했어요. 분위기나 하드웨어나 모든 것이요.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건 몇 백억 단위로 투입된 돈이 아니라 지역을 바꾸려고 하는 활동가들이 생기면서 사람들의 분위기와 마을의 분위기, 의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3. 처음 태백에 정착해서 무엇부터 시도하셨나요? 태백을 새롭게 찾아오는 청년들과 함께 했던 시도와, 태백에 남아 있던 청년들과 했던 시도가 구별이 될까요? 어떤 프로그램들이었는지요?
운이 좋았어요. 태백에 내려오려고 처음엔 1년 동안 준비했어요. 그리고 타이밍이 적절하게 맞아 떨어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지원하는 폐공간 운영 사업에 참여했어요. 처음엔 작업실만 만들고 바로 운영하려고 했는데 덕분에 코워킹 스페이스로 확장할 수 있었죠.
그걸 통해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태백으로 모을 수 있는 역할을 부여받았어요. 공간이 있으니 같이 쉴 수 있었고, 놀 수 있었죠. 그리고 제가 제주도에서 삶이 많이 바뀌었는데 그 계기가 걷기였어요. 태백에서도 사람들이 그 변화를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산에서 바다로 걸어가는 작업을 했어요. 무려 2박 3일 동안 걸었어요. 제 주변에 친했던 분들이 모두 말렸거든요. 대체 누가 태백까지 와서 걸어가겠느냐라고요. 그런데 20명이 넘게 신청해서 모두 함께 10월 3주부터 태백 산에서 바다까지 걸어갔다 왔어요.
이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제가 길을 먼저 걸었는데 만약 내가 걷다가 죽거나 돌아오지 못하면 이 프로그램은 없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무사히 돌아왔고, 끝까지 해내게 되었어요. 이런 작업을 통해 카메라 렌즈를 다시 나의 내면으로 돌릴 수 있었어요. 저도 저를 바라볼 수 있었고, 그걸 통해서 뭘 얻었냐면. 다시 또 카메라를 저한테 들이 미는 거. 제가 저를 바라 보는 거. 같이 작업하셨던 분들도. 스스로가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 이게 첫해년도 1년에 많이 했던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사진출처: '느린시간_걷는생각' (주)널티)
외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은 함께 초대하고, 프로그램에 초대하기가 쉬웠어요. 새로운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하면 다들 능동적이었고요. 그런데 지역 주민은 또 다른 방식의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역에서 해커톤을 했는데 어려웠어요. 인근에 거주한다고 해서, 지리적으로 가깝다고 해서 적극성이 표현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의 연결보다는 지속적인 연결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능동적으로 연결되었던 사람은 딱히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계속 연결되더라고요. 이후에 태백에서 펼쳐지는 청년마을 사업이나 기타 사업에서도 연결이 지속되었어요. 외부 방문자와 내부 주민이 엮이는 그 자체의 연결감으로 시너지가 나는 것도 확인했어요. 그 시너지의 결과가 많은 청년들이 준비한 태백 청년마을 프로젝트였고요.
(사진출처: '로컬 노드디자인 해커톤' (주)널티)
4. 태백시는 짧은 역사 안에 지역 기반 산업이 달라졌습니다. 도시 인구가 축소되면서 발생하는 문제가 있지만, 보다 주목하고 싶은 건 그 변화에 적응하는 방식입니다. 도시 곳곳에 비어있는 공간, 빈 집, 빈 터가 늘어날텐데 그곳을 활용한 시도가 있을까요?
아시다시피 태백은 광산사업을 하던 도시였어요. 그런데 2019년 제가 조사했을 때 광부분들이 70-80명 있다고 했으니까 곧 닫힌다고 봐야겠죠. 광산 이후 태백에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지역에서 제가 만나는 청년들은 대부분 공무원이나 중간조직에서 일하는 청년이 많으니까요. 자영업자라고 하여도 부모님의 가업을 이어받은 서비스업 계통의 소상공인이고 아니면 강원랜드, 공무원, 교사가 많아요. 공간만 비어있진 않아요. 청년 삶의 다양성을 위해서 여러 시도를 했어요. 그동안에 했던 작업이 ‘막장책방’, ‘놀며 일하는 공간 무브노드’가 있어요. 무브노드를 처음 열었고 같은 건물에 막장책방을 열었어요. 태백시에 ‘꽃으로도때리지말라’는 공부방이 있었는데 나중에 제가 공부방을 미술관으로 만들어서 운영했어요. 지금도 새로운 유휴공간을 찾고 있어요. 청년마을 하면서 이주하려는 청년들을 만났거든요. 이 친구들이 지역에 살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유휴공간을 찾고 있고, 공간을 통해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사진출처: '놀며일하는공간-무브노드' (주)널티)
5. 태백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은 스스로를 ‘태백 주민’으로 의식하는지 궁금합니다. 태백 주민으로 의식한다면 그 이유와 배경은 무엇일지도 궁금해요.
2018년도에 공간을 처음 오픈하면서 계속 지역을 오갔던 친구가 2020년 태백으로 이주를 했어요. 이주해온 이후에 이야기를 하다 한번씩 제가 ‘너는 서울 사람’이라고 말하면 아니라며 ‘나도 태백사람’이라고 말할 때가 있어요. 그런 자연스러운 대화 속에서 그 친구가 이제 태백 주민이라는걸 느껴요. 지역 주민이 되어서 그 나름의 텃세를 부릴 때에요. 단순히 행정적으로 주소 이전 한다고 주민이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지역을 관광객으로 접했던 친구들은 알게 된 새로운 정보를 열심히 설명하며 포워딩하는데 진짜 주민이 되면 그렇지 않더라고요. 본인의 공간이라고 느껴서일까요? 경험하려고 하지 소개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 차이가 재밌다고 느꼈어요.
6.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할수록 새로운 책임감과 역할, 그리고 지역사회의 기대가 커질 것 같아요. 이 모든 시선이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역에서의 정착을 계속 모색하시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도 다른 지역에 대한 갈망이 늘 있죠. 처음 무브노드란 공간을 운영할 때도 5년만 하고 나가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올해가 딱 5년차이죠. 그런데 돌아보니 아무거도 제대로 이뤄낸 게 없는 거예요. 바뀐 것도 없고, 변한 건 나 하나 뿐이더라고요.
다른 지역 동료분들이 제게 8년 차가 되니까 조금씩 떠났던 아이들이 돌아온다고 말해줬어요. 생애주기를 따라서 28-29세가 되면 도시의 맛을 보고나서 자연스럽게 돌아온다고요. 그래서 이제 겨우 5년 했다고 결과를 바랄 수 있을까 싶고, 45세까지 쭉 확장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만약 태백에서 내가 없어도 운영되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그 이후에 자유로운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만약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걸어서 유럽까지 가볼 거예요. 그렇게 늘 떠나고 싶지만, 언제나 다시 돌아올 곳은 태백이라고 생각해요.
(사진출처: '태백청년마을 광광 스토리지' (주)널티)
7. 균형발전의 모토는 어떤 지역에서나 공정한 기회를 누리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지역이기에, 특히 태백이기에 수도권에 비해 상실하는 기회는 무엇인가요? (지역살이에서 오는 격차를 이야기해주셔도 좋겠습니다!)
최근의 저에겐 지역격차가 많이 와닿지는 않아요. 이제 저는 지역에 무언가를 제공하는 공급자니까요. 서울보다 지역이 좋은 건 공급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저와 제 동료들도 이제는 무언갈 스스로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단계니까요. 성인은 자유로운 선택지와 권한이 있으니 지금 자신이 놓여있는 환경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성인보다는 청소년 아이들에 주목하고 싶어요. 중학생, 고등학생 청소년들은 자유로운 선택지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지역이라서 발생하는 격차가 오롯이 전해진다고 생각해요. 청소년이 느끼는 격차는 어른들의 잘못이에요. 제가 정말 속상한 건 아이들에게 게임을 가르쳐 준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그 이후에 게임으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이 없다는 거예요. 결국 게임을 만들려면 지역을 떠내야만 하죠. 실력 있는 개발자 청년이 지역에 들어온다고 해결될 수 있을까요? 그건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요.
8. 마지막으로 대표님은 태백에서 무엇을 해결하고 싶은 건가요? 태백에서 머물고 활동하는 동안 앞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으신가요?
저는 여기 태백에 계신 분들이, 또 태백에 찾아오시는 분들이 모두 자유로워지셨으면 좋겠어요. 지역은 워낙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서로를 철창에 가둔 것처럼 행동해요. 누가 지켜보기 때문에 새롭게 시도하지 못하고, 시도도 다양하지 못하죠. 사람도 지역의 크기도 한정되어 있으니 늘 서로를 바라보고 평가하게 돼요.
지역은 특히나 답이 정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외부 청년들이 찾아오면서 태백 내부의 청년들도 자유롭게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그들과 함께 판단받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거죠. 저는 이 변화가 확장되면 지역의 표현력이 더 커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역이 건강해질거라고 생각하고요. 저는 이런 자유로움을 시스템으로 만들어서 저도 자유로워지고, 태백도 자유로워지는 걸 목표로 활동하고 있어요.
지역이기 때문에 마주하는 분명한 격차가 있다. 이는 자본의 격차이면서, 교육의 격차이자, 교통-의료 인프라의 격차로 인한 안전의 격차일수도 있다. 하지만 태백에서 발견한 건 '다양성의 격차'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앞으로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지에 대한 선택지가 부족한 '기회의 격차'다.
수많은 사람이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던 지역의 대표사업이 저물자 텅 비어버린 골목을 채운 건 화려했던 영광의 시절에 대한 여운 뿐이다. 빛나는 과거에 대한 여운이 짙을수록 새로움이 들어올 여지는 줄어들 것이다. 규격화된 삶의 모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선택의 다양성'이 어쩌면 수도권과 지역을 나누는 가장 큰 격차라는 점을 명심하자.
변화를 위해선 지역 내부의 주민과 외부의 관광객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태백을 광산산업의 중심지로만 바라보지 않는 외부의 시선, 그리고 태백에서도 충분히 다양한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내부의 공동체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
보다 자유로운 지역을 위해 2022년 청년마을 사업과 공간 사업을 운영하며 새로움을 초대하는 널티의 김신애 대표를 만나보았다. 이제 내게 태백은 사람이란 자원 안에 숨은 가능성을 탐색하는 지역으로 기억될 것이다.
<참고자료>
(주)널티